23화
23화
계절은 어느새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고 세탁실 너머에서 아카시아 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방안에 스며드는 순간도 있었다.
운동시간에 두꺼운 겨울 점퍼를 벗고 나가게 되었고, 목을 감고 있던 수면양말도 수납장으로 들어가고, 낮엔 제법 따듯한 햇살이 방을 비추어주었다.
" 우리 오늘 이불 빨래 하는 날이지 ? "
" 그러네 "
개인이 구매한 이불은 세탁해 주면 직접 나가서 밖에 빨랫줄에 널기도 했는데 겨울엔 거의 담요를 사용하니까 하루에 마르지 않아서 세탁이 아니라 털어서 사용을 했었다.
봄이 되면서 얇은 이불을 구매했고 수의만 해주던 세탁을 이불까지 해주니까 햇볕에 말려서 덮을 수 있어서 쾌적하단 느낌이 좋았다.
" 운동시간 말고도 햇볕에 나갈 수 있는 게 진짜 좋아 빨래를 널 때는 꼭 밖에 사는 기분도 나고, 봄이 오니까 괜히 설레고 참 좋네 감방도 "
" 선자야 넌 식당일 안 힘들어 ? "
" 재미있어 삽으로 국을 저으니까 처음엔 너무 이상했는데 그것도 자꾸 하니까 재미나 "
" 그러면 밥은 포클레인으로 푸냐 ? "
" 하하하하 "
한바탕 웃음이 밀려왔다.
정확한 인원수는 모르지만 말로는 역대 최고 인원이라고 1,000명은 될 거라는 말도 있었다. 원래 정원은 600명대라고 하니 미어터진다는 말도 과언은 아니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식당으로 오는 야채 고기 등 물품이 끝없이 들어왔고 구매물품도 계속 들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 여기서 더 들어오면 진짜 삽이 아니라 포클레인이 식당에 들어오겠다 "
" 그러게 운동장도 아침부터 5시까지 계속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진짜 엄청 들어오나 봐 옆에 옆에 방은 12명이래 "
" 저 끝에 애기엄마들 방도 좁아서 방 하나를 더 늘려서 거기 있던 사람들을 전방시켰대 "
교도소는 임산부가 구속되면 아기를 낳아서 18개월을 같이 살다가 기간이 되면 아기만 밖으로 내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방도 만실이라 방을 늘리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정말 들어 올 사람들은 버젓이 배 내밀고 할 거 다 하면서 사는데,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받아도 되는 사람들까지 다 법무부 호송차에 실려 오고 있었다.
법무부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재소자들을 다 수용하려면 경비도 엄청날 텐데 꼭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방마다 인원이 초과상태라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는 소리에 까마귀들 군홧발 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있었다.
그때 와장창창 그릇 깨지는 소리에 다들 창살을 붙잡고
" 어디야 몇 번 방이야 ? "
" 몰라 안 보여 저 끝쪽인가 "
[ 조용히 합니다. 다 자리에 앉아요 ]
교도관들도 날마다 재소자들이 싸워대니까 신경이 있는 대로 날카로워져 갔고, 조금만 잘못해도 바로 경고입니다 경고 소리가 남발되고 있었다.
공장도 인원이 차서 더 안 받았고 어떤 방은 방에서 재소자들이 박스 접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 어머머 피나 피 크게 다쳤나 봐 "
" 들것에 실려간 거 같아 "
방에는 유리라든가 칼 날카로운 물건은 없는데 아무래도 그릇을 깨서 찌른 건지 어떤 여자가 피를 흘리면서 들것에 실려나가는 듯 보였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제법 굵은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선택한 ㅂㄱ ㅎ 대통령은 무자비하고 냉정하리만큼 메몰차게 사람들을 차디찬 지옥으로 밀어 넣고 있었고, 하늘은 왜 우는 것인지 비를 내려보내는 오후
우리도 대통령이라는 여자도 서로의 운명을 그때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싸움에서 다친 재소자도 다치게 한 재소자도 상처의 깊이는 같지 않을까
봄비가 슬퍼 보이는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밤 우리 모두는 울적했다.
봄비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우울했다.
다른 때 같으면 싸움이 나면 그 싸움을 추측하고 추리하느라 시끄러웠는데,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사동 전체가 고요했다.
봄비 소리만 마른 흙에 스며들다 끝내 고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 24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