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25화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리고, 생각들은 꼬리를 문채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출소날이 다가오면서 방 식구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갇혀있는 상태에서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고민 끝에 손 편지를 쓰기로 했다.
떠나는 사람이 무슨 편지를 쓰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남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두 달의 시간이 꼭 2년의 시간인 듯 떠오르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지옥 같았던 곳, 살 수 있을까 했던 곳, 그리고 살아낸 곳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고 비록 범죄자라는 이름을 달고 재소자로 살아가는 곳에서 어쩌면 나는 배움을 얻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다음 달에 국회의원 선거래 "
" 갑자기 무슨 선거얘기야 "
" 우리는 투표 못한대 "
" 그걸 이제 알았어 우린 사회에서 죽은 사람들인데 무슨 투표를 해 "
" 와 진짜 기막히네 우리 선거권도 없는 거야 ? "
" 재소자는 선거권 없어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수의야 수의 죽은 사람이 입는 옷하고 같은 이름 수의 "
미자와 경자언니의 투표이야기에 진짜 재소자는 선거권이 없는 건가 범죄자로 감옥에 사는 사람은 투표도 못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 진짜 재소자는 투표권이 없어 ? "
" 그래 미결수는 투표권이 있는데 형이 확정돼서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은 투표권 없어 "
" 순자언니는 선거전에 출소니까 나가면 투표하겠네 "
" 투표 안 해 해서 뭐 해 "
" 그건 그래 우리가 죄를 지은건 맞지만 투표해서 뽑아놓으면 뭐 해 다들 국회의원인지 개나발인지 지들 배만 불리지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관심도 없는데 뭐 "
" 어이 우리 미자 이제 뽕끼 빠졌나 보네 바른말을 다하고 "
" 몰라 몰라 저 위 높은 것들 이야기하지 말자 아 배고파 우리 간식이나 먹읍시다 땅콩 먹자 "
" 그래 땅콩이나 먹자 "
투표를 못하는 재소자들 우리는 그날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땅콩을 실컷 먹었다.
" 779번 면담 "
면담이란 말에 또 보안과장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잘 지냈어요 ? "
보안과장은 교도소와 어울리지 않고 꼭 도덕선생님이나 국어선생님 같은 인상과 말투였다. 어쩌면 저 사람도 살기 위해 교도관이란 직업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 네 "
" 내가 지난번에 부탁드린 건 고민해 보셨어요 ? "
" 네 하긴 했는데 아직도 자신은 없습니다 "
" 그래요 출소하면 몸부터 추스르시고, 언제든 마음이 정해지면 연락 주세요 "
보안과장은 내게 명함을 주면서 연락하라고 하는데 과연 저 명함을 내가 다시 들여다볼 날이 올까 싶었다.
" 출소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다 가시고요 "
" 네 마음 써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
" 사실 요즘 소 전체가 너무 어수선하고 수용인원이 많다 보니 작은 소동이 많아요 그 방에도 살인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네요 그 재소자는 어떤가요 ? "
" 제가 보기엔 말수도 적고 잘 적응하는 듯 보입니다. 수리반으로 출력도 가고요 "
" 사실 장기수들이 수리반으로 많이 갑니다 기술을 배우는 거라 유용하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고치고 수리하고 나면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보안과장의 말에서 장기수들이 또 살아내기 위해 이 속에서도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 그래요 좋은 인연으로 또 만나기를 바랄게요 남은 기간 마무리 잘하시고요 "
"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며칠 고소인 소식에 심란하고 울적하고 바위에 눌린 듯 무거웠던 마음에 또 더 큰 바위가 얹혀진 기분이었다.
진짜 내가 재소자들을 위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사람일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해야 하나 일단은 출소 후에 밖에서 진지하게 고민하자로 결론을 냈다.
교도소는 몸도 마음도 1.7평에 나를 가두는 곳이고 그 공간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한계였으니까.
( 26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