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26화

by 서윤

26화


11월 추웠던 날씨보다 더 추운 마음으로 구치소 계단을 오르던 마음도 어느새 흐릿해지고 슬픈 날 보다 웃는 날들이 더 많아져 가고 있었다.

사각의 개구멍으로 들어오는 밥을 먹으면서 서럽고 기막히던 것도 이젠 자연스러워지고 격자로 얽혀있는 쇠창살도 원래 그런 곳에 살던 사람처럼 익숙하고

방식구들도 오랜 지기같이 느껴지고 있었다.


의식주 입혀주고 먹여주고 집은 아니어도 집을 대신해 주는 교도소

감기로 고생할 때 마음대로 코도 풀지 못하던 곳 매일 같은 사람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던 시간

헐뜯고 시기하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하루를 보내던 시간도 결국 흘러갔고 나는 다시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려 하고 있었다.


그 이전의 평범한 사회인이 아닌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은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준비를 해야 했다.


지금쯤 담장엔 빨간 넝쿨장미가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껏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희끗하게 정수리를 채운 나의 흰머리와 손빨래에 필사를 하느라 휘어진 손가락이 눈에 들어오고 출소하면 저 뜨거운 햇살이 얼마나 눈부실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지어졌다.


창틀을 잡고 서서 인간은 어떤 환경이든 또 살게 되는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마주 보이는 미결사동에서 하얀 종이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그쪽이 미결사동이란 것도 알고 운동시간에 가끔 옥상 쪽에서 운동하는 미결수들을 얼핏 얼핏 보기도 했는데 종이가 펄럭인 적은 없었다.


이벤트를 하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큰 글씨를 내가 볼 수 있게 흔드는데 자세히 보니까

' 출소 축하해 ' 라고 쓰여 있었다.

27번 언니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이는데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고였다.

잊은 줄 알았던 27번 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나도 얼른 글씨를 크게 써서 ' 고마워 언니 ' 라고 흔들어 보였다.

27번은 여전히 재판 중이기에 아직 미결사동에 있는 것이겠지

그 순간 꼭 무죄를 받았으면 진심으로 원하고 있었다.

제발 한 명이라도 무죄로 석방되는 소식을 듣고 싶었다.


그때 미자가 말을 걸어왔다.


" 순자언니 뭐 해 거기서 "


" 응 미결 때 같이 있었던 언니가 출소 축하한다고 해서 고맙다 했어 "


" 아 맞다 언니는 미결사동에서 왔었지 "


" 응 같이 있던 언니도 너처럼 마약으로 들어왔는데 마약 중간책이라는 누명을 썼대 "


" 언니 그런 경우 많아 먼저 잡혀온 사람이 자신보다 윗선을 불면 벌금이나 집행을 받게 해 주거든 "


" 검사 새끼들 그렇게 큰 건 올리려고 혈안이 되거든 "


" 진짜 억울하게 걸려드는 사람도 많대 "


" 아 그렇구나 진짜 그런 일이 있구나 저 언니도 계속 억울하다고 주장했거든 "


" 그런데 언니 구속이 되면 또 검사들은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어떻게든 형 확정시킬 거야 기대 안 하는 게 좋아 "


미자의 말을 들으니까 좀 전에 웃으면서 종이를 흔들던 27번 언니 얼굴이 떠오르고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다.

출소하고 나면 27번 언니는 꼭 한번 접견을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 교도소 시간 죽이기는 계속되었고 어느새 출소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시퍼렇고 차갑게 느껴지던 달빛도 어느 순간부터 오렌지빛으로 보였고, 온몸을 얼릴 듯 시리고 차가운 바람은 따듯하게 스며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계절은 어느 곳에서든 바뀌는 것이었고 벽시계 없는 감방의 시간도 째깍째깍 돌고 있었다.



( 27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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