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28화
세탁실 너머 아카시아꽃이 화려하게 만개하고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 동안 손발을 얼리고 방안에서도 입김을 만들어내던 추위는 언제였냐는 듯 하루가 다르게 더위가 감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출소를 앞두고, 구매로 산 내복과 뜯지 않은 속옷을 봉자에게 주고 마지막 물품 구매를 했다.
방 식구들에 맞게 필요물품을 구매하고 나니 왠지 이젠 정말 이들과 이별이구나 이곳에서 해방이구나 싶어서 시원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 순자야 너 이번에 구입한 이불 누구 줄 거야 ? "
경자언니가 물어본다.
" 글쎄요 누구 필요한 사람 있어요 ? 아니면 그냥 반품신청 하려고 했어요 "
" 아니 괜찮으면 나 주고 가라고 "
" 언니 이불도 새것인데 왜 굳이요 "
" 엉 내것은 봉자 주고 순자가 쓰던 이불은 내가 쓰려고 "
" 그래요 알았어요 대기방에는 그냥 여기 담요 한 장만 갖고 갈게요 "
" 봉자야 책 반납신청 하고 몇 권은 너 주고 갈 거니까 틈틈이 읽어 책 읽기는 습관이야 그리고 출소하면 검정고시 도전해보자 "
사실 봉자는 중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입학을 못하고 공장 생활하다 결혼을 하고 식당일을 했다고 한다.
봉자 나이에 무슨 공부싶기도 한데 내 마음엔 봉자가 출소후에는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살기를 바랬기에 함께 하는 내내 검정고시 이야기를 꾸준히 했었다.
" 응 언니 꼭 편지해 접견은 오지 마 다신 이쪽 쳐다보지도 말고 알았지 ? 나 출소하면 언니한테 연락해도 괜찮지 ? "
" 언니가 자주 편지할게 책도 넣어줄거니까 게을리 하지 말고 봉자 너 또 무시당하면서 살기 싫잖아 "
" 웅 언니 나 언니덕분에 마음이 많이 바뀌었어 이제 책 읽는것도 너무 좋아 "
" 그래 책도 공부도 좋아야 하는거야 억지로 하는건 아무 의미가 없어 "
" 알았어 언니 언니말은 다 믿어 "
봉자가 제일 마음 쓰였다. 또 예전처럼 설거지 빨래나 해주면서 살까봐 일부러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더 챙겨주는 모습을 보인것도 사실이다.
" 오늘 저녁에 우리 파티한다면서 ? "
분위기를 깨고 살리는 미자의 말에 또 방에 웃음이 맴돌았다.
" 그래 그래 오늘 우리 순자 출소기념 파티를 해보자 "
그날 저녁 초코파이 위에 방장언니가 그린 촛불 그림을 꽂았고, 땅콩과 우유 빵 과자 게토레이를 차려놓고 조촐한 출소파티를 했다. 끝내 막걸리 제조는 실패를 했기 때문에 게토레이가 술 인양 건배를 했다.
나가면 다신 들어오지 말라는 당부도 거듭거듭 들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교도관이 가끔 창문으로 우리 방을 보면서 이 방은 이제 조용하고 다들 잘 지내니 보기 좋아요 라고 웃음 품은 칭찬도 해주어서 그런지 다들 오랜만에 긴장도 풀고 화기애애했다.
영자언니와 방장언니도 그날만큼은 아무 충돌 없이 진심으로 나의 출소를 축하해 주었고, 홍자도 아직은 어색했지만 방 식구들과 어울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고, 밖이었으면 꽤나 괜찮은 관계가 될 수도 있었겠다 싶어서 한편으로는 어디서 만나 인연을 맺는가 그 또한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징역살이를 함께 한 사람들 그리고 나는 나가지만 그녀들은 또 남은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묵직하게 명치를 누르고 있었다.
" 오늘 밤이 이 방에서 마지막 밤이네 좋겠다 언니 "
" 영화 대사 같은데 우리 오늘 마지막 밤이네요 "
경자언니의 말에 또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 미자야 너도 출소하면 절대 마약 근처도 가지 말고 "
" 그건 언니 약속 못해 "
" 너 미자 진짜 안돼 여기가 지겹다면서 "
" 알았어 알았어 농담이야 이제 나 뽕끼 다 빠졌어 안 해 진짜 "
" 다들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두 달이 금방 지나간 것 같아요 "
" 순자가 빼끔 들어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네 "
" 맞아 맞아 순자언니 이 방 들어올 때 진짜 선생님처럼 생겨서 고리타분할까 봐 걱정했었어 "
" 내가 그렇게 고지식하게 생겼어 ? "
" 그냥 느낌에 이런 곳에 올 사람 같지 않았다는 거지 "
" 감방의 시계도 같은 방향으로 돌기는 하나 봐 "
" 미자야 그러면 깜빵의 시계는 반대로 도는 줄 알았냐 ? "
경자언니의 깜빵이란 억양이 웃기다고 느껴졌다.
정말 시간은 흘러갔고 출소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싶어서 나 역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룻밤을 더 자고 나면 대기방에서 하루 반을 보내고 출소날 새벽 5시 정각에 교도소를 나가겠지 생각하니 구치소에서 목을 놓아 울던 순간도 미결사동에서 재판을 받고 낯선이들과 부딪히며 살고자 바둥거렸던 순간도 그리고 이곳 3.4동에서의 순간들이 꿈인 것 같았다.
방식구들에게 쓴 편지를 곱게 접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보니 꼭 오래된 언니 동생 친구 같고 저들이 무사무탈하게 남은 시간을 잘 견뎠으면 싶었다.
낮보다는 밤바람이 선선했고, 태양이 익어가듯이 달도 익어가는지 밤하늘에 휘영청 붉은빛이 쇠창살을 뚫고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정말 그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밖의 모습과 교도소의 모습이 겹쳐서 구분되지 않았고, 눈을 뜨면 감방의 높은 천장이 더 높게 느껴졌다.
방 식구들의 코골음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고, 낮보다는 흐리지만 훤하게 켜진 형광등 불빛도 내가 오래전부터 이런 곳에 살아던 것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환한곳에서 잠을 못자던 나도 이제 환해야 잠을 청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29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