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29화

by 서윤

29화


대기실로 옮겨가는 날 아침 낡은 담요 한 장에 필사한 노트 몇 권 책 두 권과 간단한 세면도구 그리고 속옷 한벌이 들어있는 교도소의 초록색 가방을 들고 방 식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각각 편지를 나눠주었고 진짜 마지막 인사를 했다.


" 갈게요 "


6개월을 살았는데, 내 손에 들린 건 너무 가벼웠다. 달랑 가방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대기방은 10명이 쓰던 방 크기와 같았고,

그곳에 나 혼자 남겨졌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봐도 된다 하고, 씻는 것도 자유라 하고 누워있었도 된다고 했다.

말 그대로 대기방은 교도소의 또 다른 특별공간이었다.


누워도 된다 하니 잠이 안 왔고,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껏 씻어도 된다 하니 귀찮았다.

아침 점심 저녁이 나오는데, 혼자 먹으려니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물에 말아 국물만 마셨고, 대충 양치만 하고 책을 보려고 책장을 넘겨봐야 하루 종일 같은 페이지였다.


창살을 잡고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같은 옷을 입고 걷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 앉아서 바람을 느끼는 사람들, 비타민 D를 흡수하느라 일부러 햇볕에 앉아 있는 사람들 나는 하루 종일 그녀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어제까지도 나 역시 저들 속에 한 사람으로 있었는데 오늘은 홀로 서서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내 모습이 이상하게 외톨이 같고 이방인 같았다.


첫날은 하루 종일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거나 방 안을 왔다 갔다 서성거렸다.

운동을 마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축하해요 출소하네요 하면서 마른 인사인지 진심의 인사인지를 건네면 괜히 미안하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소를 앞둔 밤 12시 !

순찰을 돌던 교도관이 지나가면서


" 잠 안 오죠 ? " 한다.


" 그러게요 "


" 4시쯤 나갈 거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


" 5시가 아니라 4시요 ? "


" 아 4시에 나와서 짐 확인하고 옷 탈의하고 신분조사 한 후에 나가요 "


" 아 네 알겠습니다 "


그리고 드디어 새벽 4시 교도관을 따라서 복도를 한참 걸었고, 건물밖에서도 한참을 걸어서 사무실로 들어가니 언니가 맡겨놓았다는 쇼핑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감방에서 챙겨 나온 가방 속 짐 검사를 하고 신분확인을 하고 난 후에야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재판 때에도 수의차림으로 법원에 갔었으니까 정말 6개월 만에 입는 사복이 좋으면서도 낯설었다.

좋은 길만 걸으라고 새로 산 운동화는 어색했고, 운동복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얇은 점퍼를 걸쳤는데 내 모습이 다른 사람 같았다. 남의 옷을 입은 듯 그 옷의 무게가 참 무겁게 느껴졌다.


"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커피 한잔할까요 "


" 네 고맙습니다 "


" 생활하기 힘들었죠 ? 가족분들은 벌써부터 오셔서 기다리고 계세요 이제 나가면 다신 이런 곳 생각도 하지 마시고요 "


" 네 그래야죠 "


그날 당직 교도관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했다. 난들 다시 오고 싶겠나.

그리고 오고 싶어 왔을까

삶이 내 마음대로만 살아지는 것일까

또 앞으로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나 자신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출소시간 교도관의 뒤를 따라 걷다 보니 정문이었다.


언니가 두 팔을 벌리고 서서 나오는 나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준비한 적 없는 눈물이 또 쏟아졌다.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서러워서도 아니었다.

그 눈물은 다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무게였다.


6개월 전 나는 법정구속이 될 거라고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2심도 결국 내 뜻과 내 의지를 벗어났기에 형기를 다 마치고 만기출소를 했다.

단, 5천만 원 때문에 나는 전과자가 되었고,

죄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모조리 구속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대통령은 내가 출소하고 3년 뒤 국정농단으로 탄핵이 되고 파면이 되면서 구속되었다.


자괴감이 든다는 말에 정치를 모르던 나는 그냥 웃음이 났다.

촛불도 몇 번 들었다.

정치와 무관하게 그저 소심한 복수였다.

그분이 그곳에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이 어쩌면 나보다 수천 배 수만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다.

나는 출소 후에 웬만한 일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내가 흘리는 눈물도 사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 흘릴 시간에 더 자신을 담금질하고 더 깊이 성찰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인생에서 6개월은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 6개월은 단순한 6개월이 아니었다.

그동안 살아온 50년을 송두리째 갈아엎고 다시 50년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후회하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이젠 답할 수 있다.

후회는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라고 말이다.


회사에 복귀하고 1년을 근무하면서 호기심의 눈빛과 안타까움의 얼굴 그곳은 어떤 곳이냐 궁금함의 눈길을 수없이 느꼈다.

듣고 싶겠지 알고 싶겠지 그럴 때마다 6개월의 시간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또렷하게 기억되었다.


1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삶을 차분히 준비했고, 20년 이상을 근무한 회사에 사표를 냈다. 진작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전과가 있어도 더구나 6개월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다시 근무하라는 부장님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표를 내고 인권변호사 사무실 옆에 작은 상담소를 개업했다.

남아 있는 삶은 조금이나마 의미를 두면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ㅡ 끝 ㅡ



( 에필로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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