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27화
5월의 봄은 또다시 여름을 부르느라 분주해지고 일요일이라 출력도 없는 날이라 교도소에서도 대청소를 실시한다고 복도에 물청소를 하고 방 식구들도 벽에 먼지를 닦아내고 창틀을 닦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겨우내 사용하던 담요에 먼지를 턴다고 몇 명은 건조대로 갔고 남은 사람들은 방 구석구석 먼지 청소에 열중하고 있을 때 또 영자언니는 방장의 종이들을 갖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 아니 언제 또 이렇게 많이 모아 놓은 거야 도대체 종이를 왜 모으는 거야 편지를 쓰는 것도 아니던데 쓸데없이 종이를 왜 쌓아두는 거야 ? "
" 그냥 둬요 다 필요하니까 모으죠 "
" 알아서 빨리 버려요 또 보고하기 전에 "
" 내가 정리할 거니까 일단 그냥 둬요 "
방장언니와 영자언니의 종이 쟁탈전이 그나마 조용히 마무리되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담요를 털어와서 다시 영자언니가 자로 잰 듯 개켜서 산처럼 쌓아 놓는 동안
난 화장실 청소를 하러 들어가는데 홍자가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 아니야 홍자 씨 오늘은 내가 할게 나가기 전에 화장실 청소라도 해야지 "
씨익 웃는 나를 보면서 홍자가
" 아니야 나 손에 낀 기름때도 없앨 겸 내가 할게 순자씨는 사물함 정리해 "
못 이기는 척 화장실 청소를 홍자에게 맡기고 나는 사물함 정리를 했다.
6개월 동안 나와 함께 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반납할 책 목록을 적어서 제출하고 나니 이제 진짜 여길 나가는구나 싶은 게 홀가분하면서도 이상하게 아쉽다는 마음도 들었다.
울다 지쳐 잠들던 밤들
싸우는 소리에 휴지로 귀를 틀어막던 순간들 어쩌다 웃음이 쏟아지면 내가 웃을 자격이나 있나 싶었던 모든 날들이 지나가고 다시 자유를 찾아가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게 현실 같지 않기도 했다.
거의 반나절을 대청소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고
[ 배식 ~~ 배 ~~ 식 3.4동 배식 준비하세요 ~~ ]
사소의 배식을 울리는 소리가 쩌렁쩌렁 복도를 울린다.
일요일 점심은 잔치국수였다.
내가 국수를 좋아한다고 경자언니가 덜어주고 봉자도 덜어주고 결국 곱빼기의 국수를 먹고 나니 봄 햇살에 몸이 나른해지는 게 잠이 쏟아져서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았나 보다.
처음에 끌려왔을 땐 조는 것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어느새 풀어져서 잠을 잤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 779번 접견, 접견 갑시다 "
언제 왔는지 교도관이 문을 열면서 접견이라고 했다.
" 779번 4일 남았네요 "
" 네 "
" 고생 많았어요 나가면 다시는 들어오지 마세요 "
" 그래야죠 뭐 좋다고 또 오겠어요 "
교도관 하고 접견장으로 가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는데 봄 햇살을 받은 풀들과 나뭇잎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는 재소자들을 보니 새롭게 보이고, 구름 없는 맑은 하늘이 참 맑고 깨끗했다.
감옥에서 바라보는 해와 달 구름은 언제나 무채색 같았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모든 색이 너무나 선명했다.
바람도 적당히 옷깃을 스쳐주고 화단에 핀 꽃 이름은 모르지만 참 예쁘게 보였다.
" 779번 접견하고 오세요 "
" 네 알겠습니다 "
다른 때 같으면 접견실 입구까지 교도관이 동행을 하는데 그날은 혼자 갔다 오라고 했다. 순간 말년병장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접견실로 들어서자 언니와 후배가 와 있었다.
" 잘 지냈어 ?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얼마나 고생했니 ? "
" 응 언니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
" 그래그래 애썼다. 오늘 옷하고 신발 갖고 오라고 해서 맡겨놨어 그리고 여기 있던 책하고 짐은 오늘 언니가 갖고 갈게 "
" 알았어 출소하는 날 너무 일찍 오지 말고 새벽 5시까지 정문으로 오면 돼 "
" 언니 나는 그날 못 오고 여기 큰 언니하고 철이 오빠가 올 거야 "
" 웅 그래 넌 애들 학교 보내야지 그 시간에 어떻게 오니 오지 말고 밖에서 보자 "
" 언니 남은 시간 잘 보내고 우리 이제 밖에서 보자 "
후배의 눈이 글썽글썽 해지고 나 역시 목이 메어왔다. 언니는 애써 웃는데 언니 눈도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 언니 새벽에 혹시 추울까 봐 얇은 점퍼도 넣어놨어
큰언니가 신발 새거 샀어 이제 앞으로는 절대 이런 곳으로 걷지 말라면서 "
" 언니는 신발 많은데 왜 또 신발을 사고 그랬어 "
" 옷도 새로 사려다가 신발만 샀어 앞으로 좋은 길만 걸어가라고 다시는 이런데 들어오지 말라고 "
순간 언니의 마음이 읽혀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 고마워 언니 그동안 고생 많았어 겨울에 여기 온다고 힘들었던 거 나가면 내가 다 갚아줄게 "
" 쓸데없는 생각 말고 다시는 이런데 오지 말고 몸 챙기면서 다시 살 궁리나 해 "
" 언니 회사는 아직 퇴사처리 안 했고, 언니 나오면 언니 의견 듣고 결정한대 언니 그냥 회사 계속 다니자 별 문제 안 삼을 것도 같아 부장님도 크게 신경 쓰는 눈치 아니었어 그러니까 다른 일 알아보면서 그냥 회사 다니자 "
" 그래 회사는 일단 고민해 보자 지금은 사실 그런 생각하는 것도 내 욕심이지 "
" 언니 출소날 올 때 조심해서 와 괜히 일찍 와서 힘들게 기다리지 말고 시간 맞춰서 와 "
" 그래 그래 염려 말고 그날은 철이 동생 차로 올 거야
윤이가 너 준다고 갈비랑 반찬 국 다 해놓고 기다릴 거야 며칠 더 고생해 "
" 너무 많이 하지 말아 다 먹지도 못해 언니도 조심히 가고 이제 밖에서 만나 "
접견을 마치고 방으로 오는 길에 지나간 6개월이 꼭 꿈인 것 같았다.
교도관이 내 등을 살며시 쓰다듬어 주는데 그 마음이 읽혀져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앞으로 다시 펼쳐질 내 운명을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아는 건 이제 살아가는 날들은 지금까지의 삶과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우선시하면서 욕망으로 이글거리던 지난 삶들이 결코 바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죄인이 되어 갇혀 사는 동안 뱀이 허물을 벗 듯
나 역시 보이지 않는 허물을 벗어 가는 과정이었고 이제껏 살아온 이기적 삶이 아닌 감사를 아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서산의 저녁노을이 방안에선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 2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