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24화
밤을 적시던 비는 오전이 되어서야 멈추기를 했다.
운동장 상태가 나빠서 그날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하루가 무척 길다고 느껴졌다.
비가 내린 후엔 하늘은 맑았고, 나무들도 묵은 때를 씻어내서 그런지 은빛으로 햇살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그 고요함이 이상하게 좋은 게 아니라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 779번 접견 "
교도관이 철문을 열었고 접견이란 말에 신발을 신고 나가는데 이 길로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실없는 생각을 했다.
접견장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친한 후배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 얼굴이 왜 그래 여기 있는 나보다 네가 어찌 더 죽을상을 하고 있어 ? "
" 언니 잘 지내는 거지 ? "
" 나야 뭐 늘 같아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 여긴 그냥 견디고 버티고 시간 죽이고 그러면 되니까 "
" 언니 놀라지 마 "
" 뭔데 뭐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밖에 무슨 일 있어 ? "
" 어 그게 아휴 말해도 되나 언니 마음 단단히 먹고 들어 "
" 사람 궁금하게 왜 뭔데 그래 "
" 언니 현숙이가 언니 고소한 애 그 애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대 "
" 뭐 왜 어쩌다가 무슨 일이야 ? "
난 현실 같지 않아서 후배를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 그게 교통사고가 났는데 힘들지도 모른대 사실 그 애를 엄청 미워했는데 막상 사고가 났다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
" 많이 다쳤대 힘들다면 어느 정도인데 ? 수술했어 ? "
" 자세한 건 나도 모르는데 사람들 말로는 머리를 크게 다쳤나 봐 "
" 왜 그런 일이 어떻게 해 "
" 그러게 참 사람일을 모르겠어
언니한테 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언니 얼굴도 볼 겸 왔어 언니 절대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잘 지내야 돼 "
" 그래 그래 혹시 또 일 생기면 오지 말고 인터넷으로 편지 써 여기까지 오는 거 힘드니까 알았지 ? "
무거운 이야기로 접견을 마치고 방으로 왔는데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사실 그 애를 마음으로는 수천번도 더 죽였고 원망했다가 미워했다가 이해했다가 또 죽이고 싶었다가 내 마음을 어쩌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런데 막상 그 애가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은 또 다른 감정으로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 순자언니 무슨 일 있어 ? 접견 갔다 와서 말도 없고 표정이 너무 무겁네 "
선자는 내가 걱정되는지 조심스럽게 묻는데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싶었다.
" 아니야 그냥 밖에 아는 사람이 아프대 "
" 아 밖에는 밖에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여기서 언니가 해줄 수도 없는데 너무 마음 쓰지 마 언니 "
" 그래 알았어 "
선자말대로 내가 감옥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밖에 있었다면 나는 과연 그 아이를 보러 갔을까 ? 지금처럼 생각이 복잡할까 ? 그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라고 바란 적도 없는데 내 마음은 돌을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내다보면서 인생이 뭘까 사람관계라는 게 무 자르듯 툭 베어지는 것도 아니고 미움과 안타까움이 겹쳐왔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지옥 같은 징역살이 나를 이 지옥으로 몰아넣은 건 과연 그 아이일까 ? 아니면 나 자신일까 ? 정답을 알 수 없는 삶이란 걸 또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결국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인터넷 편지를 받았다.
세탁실 너머로 보이는 아카시아 꽃이 웨딩드레스 같기도 하고 화려한 상복 같기도 했다.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끝날 것인데 우린 왜 서로 할퀴어야 했던 것일까.
나는 숨 쉬는 지옥에 앉아 있는데 너는 천국의 문을 열고 있는 거니 ?
너도 나도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니었잖아
이런 순간을 바랐던 건 아니잖아
나는 이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거니
분노로 복수 그런 걸 생각했던 나를 또 벌주는 거니
이렇게 떠날 거면서 그리 모질게 독하게 살았던 거니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먼 길을 떠났다는 그 애를 향해 수없는 질문들을 하고 있었다.
하늘은 또 나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덧 씌우고 있었다.
( 25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