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19화

by 서윤

19화


" 지금 방장 나한테 반말한 거지 "


" 내가 언니야 반말이 어때서 "


" 하 언니 민증 까봐 "


" 여기 민증이 어딨어 ? 나 62살이야 "


" 그걸 어떻게 믿어 다 비밀투성이 주제에 "


" 교도관한테 확인해 봐 그러면 "


60살이 넘어서 싸우는데 꼭 유치원생들이 반장 하고 싶어서 투정 부리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감옥이라지만, 저렇게 살고 싶나 싶은 게 인간이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차분하고 인내력을 보여주던 방장도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조금씩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 둘 다 그만해요 아무리 갇혀 산다고 해도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살면 안돼요 "


" 순자씨나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살아 참견 말고 가방끈 좀 길고 배웠다고 잘난 척하고 싶으면 나가서나 해 "


"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여기서 가방끈은 왜 나와요 갇혀사는 건 다 같은데 조금씩 이해하자는 게 잘못이에요 "


" 순자씨는 방장 편들고 싶은 거잖아 "


" 여기서 누구 편이 어딨고 내가 방장 편 들 이유도 없어요 애들도 아니고 이틀이 멀게 이불 개키는 걸로 다투고 밥 차리는 걸로 싸우고 씻는 걸로 싸우고 환기하는 걸로 싸우고 그런 것들이 싸울 일은 아니잖아요 "


" 그렇게 잘난 척하고 싶으면 나가서 해 혼자서 고고한 척하지 말고 죄짓고 온건 다 마찬가지면서 "


" 그래요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네요 나는 그냥 조금씩 이해하자는 것인데 내가 오지랖이었네요 "


나는 삐딱한 어투의 영자언니가 한심하기만 했다. 죄는 죄고 사람은 사람인데 조금은 알아들을 줄 알았더니 영자언니처럼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랑 실랑이한다는 자체가 체력낭비 같았다.


그때 교도관이 나를 불렀다.


" 779번 책이 이번에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일단 10권 갖고 왔고 다 읽으면 반납신청 후에 나머지 달라고 하세요 "


" 네 주임님 감사합니다 "


책을 갖고 온 교도관은 미결사동에 있다가 얼마 전 기결사동으로 옮겨왔는데, 나한테 굉장히 잘해주는 편이었다.


" 책이 엄청 많이 들어오는데 다 읽는 거예요 ? "


" 네 할 일도 없으니 책이라도 봐야죠 "


" 그래요 이곳에 있는 동안 책 많이 읽고 인생에서 잠깐 자신에게 휴식을 준다 생각하면서 지내요 "


" 네 휴식 그러네요 어떻게 보면 휴식이네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주인님 "


교도소의 교도관의 계급은 사회의 계급과 반대였다.

부장이 가장 낮은 계급이고 주임이 더 높은 계급이었다.

처음엔 그게 신기해서 왜 교도소는 계급이 반대일까 했는데, 혼자 생각하기에 교도소는 일반사회가 아니니까 라고 결론을 냈다.


나에게 인터넷 편지는 아침마다 주는 희망이었고, 편지뿐만이 아니라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새로운 책을 넣어주는 오라버니 덕분에 답답함을 이겨갔고, 날 위해서 매일 웃음거리를 모아서 단, 두줄이라도 웃기는 이야기를 써서 보내오는 오라버니를 생각하면 힘이 나고 살아갈 용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인생에서 어느 시점엔 진지한 이야기보다 내일을 향할 어떤 고민을 강요하기보단 단순하게 웃을 수 있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걸 배워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나 역시 생각이 후퇴하고 있었고 편협으로 변해가고 있었는데, 편지에 쓰인 웃음과 책은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간다면 어떻게 살자라는 쪽으로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더 고마운 건 선자도 봉자도 나와 같이 책을 읽고 읽은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고, 봉자는 나날이 진지한 사람으로 변해갔고, 이 사람 저 사람 대신 당번을 해주던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선자와 내가 번갈아가면서 봉자가 필요한 물품을 사줬고, 봉자에게 조금이나마 새로운 삶에 대해서 희망이란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건 봉자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삶의 의미를 만들고 싶다는 내 의지이기도 했다.


이곳은 정말 인생에서 잠시 주어지는 휴식일까

앞만 보고 달려오던 길에 옆도 뒤도 보면서 가라는 뜻이었나

나 역시 사회에서 욕심으로 가득하고 명예 권력 부 그 모든 걸 갖겠다고 너무 치열하게 살았었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다른 삶을 살아보라는 뜻인가

책을 읽어갈수록 나 스스로를 다시 더듬고 있었다.


감옥의 햇살을 가리는 쇠창살은 어쩌면 삶에 있어 누구나 마음속에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9만 원을 훔친 사람, 월급을 못 받아 홧김에 폭력을 해야 하는 사람, 수백억 횡령을 조직적으로 했을 건데 일개 직원이 감옥행을 받아들였을 사람, 벌금도 필요 없으니 무조건 처넣으라는 대통령, 우리를 가둔 자들은 과연 얼마나 바르고 떳떳한가.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 우리는 그 속에서 다시 마음의 자유를 박탈당하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 20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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