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마실 16화

딱지

잘못

by 서윤

딱지


딱지를 접으려고 공책을 찢고 책도 찢고 지나가지 않은 달력을 다 찢어서 딱지를 접었는데 며칠 동안 계속 딱지를 잃고 나니 더 찢을 종이가 없어서 시큰둥 기운 없이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막내언니가 학교 갔다 와서 책가방을 마루에 휙 던지고 나갔다.


언니 가방을 방에 두려고 들었는데 가방이 엄청 무거워서 가방에 먹을게 들었나 들여다봤는데 커다란 책이 그것도 컬러였다.

그 순간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앞뒤 생각도 안 하고 언니 책을 다 찢어서 딱지를 접었는데 그 책은 종이도 매끄럽고 두꺼워서 딱지를 접어 놓으니 아주 근사했다.


딱지를 들고 동네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달려가서 ' 야 다 덤벼봐 내가 엄청 빡신 딱지 갖고 왔어 '

' 쟤는 맨날 엄청 빡씬 딱지래 또 잃을 거면서 '

' 야 진짜 빡씬 딱지거든 덤비기나 해 '


그날 나는 딱지를 50개도 더 땄다.


' 너 그 딱지 뭘로 접은겨 '

영섭이가 씩씩거리고 영수도 ' 너 그거 어디서 난겨 ' 했다.

' 울 언니 책이여 왜 뭐 '

' 니네 언니 책 쓰는 거 아녀 ? '

' 울 언니 공부 못해 책 안 본다 뭐 그리고 맨날 꼴찌 하는데 어때서 '

' 너 이제 큰일 났어 니 엄마 엄청 무섭잖어 '

' 아무도 안 봐서 몰러 걱정 말어라 '


나한테 딱지를 다 잃은 아이들이 집으로 가고 나도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진짜로 그날은 언니가 책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났는데 마루에서 언니가 울고불고 엄마한테 막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엄마 내 채애액 내 책 없어졌어 '

' 니가 책을 잘 둬야지 엄마 보고 어쩌라는 거야 책을 어따두고 아침부터 지랄이여 '

' 어제 학교에서 새로 받아 온 책인데 가방에 없다구 그거 오늘 갖고 가야 한다구 ~~~ 내 사회과부도 채애액 찾아줘 ~~~ '

' 아이구 내가 못 살어 그 사횐지 뭔지 책을 어따두고 저 난리랴 이따 찾아줄 테니께 어여 핵교나 가 늦거써 '

' 나 학교 안 가 그거 안 갖고 가면 나 맞는단 말이여 '


그때 부스스 눈도 안 떠져서 멍하니 서 있던 언니가 나를 봤다.


' 너 어제 마루에서 내 가방 봤지? '

' 엉 그거 내가 방에 들여다 놨는데 왜 ? '

' 너 거기서 커다란 책 봤어 못 봤어 ? '

' 난 못 봤어 '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마당에서 물을 마시면서 속으로는 겁이 났다.


막내언니는 한번 떼를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 오늘따라 왜 책에 난리인지 언제부터 지가 공부했다고 책 타령인지 괜히 딱지를 접었나 후회가 되었다.

나는 빨리 언니가 학교에 갔으면 좋겠는데 계속 그 책을 찾으니까 불안해서

' 엄마 나 배고파 ' 했다. 이야기를 돌리고 싶었는데 엄마는

' 지금 니 언니가 저 꼴인데 밥이 넘어가 '

하면서 또 소리 지르고 언니는 방을 다 뒤지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때 영섭이가 딱지치기하자고 우리 집 대문에 들어섰다.

철렁 나는 너무 놀라서 영섭이가 제발 아무 말도 안 하기만 바랬는데. ' 야 서윤아 딱지치기 하자 아 안녕하셔유 할무니 ' 뒤늦게 우리 엄마를 보고 넙죽 인사를 했다.

나는 재빨리 ' 그래 가자 딱지치자 ' 하면서 영섭이를 끌고 나가려는데 ' 너 어제 그 딱지로 칠 거여 ? ' 했다.

' 아녀 아녀 그냥 딱지로 칠겨 그니까 빨리 가자 '


막내언니는 눈치가 빠르고 여우 같아서 그 순간 나를 확 노려보면서 ' 너 딱지 다 갖고 와 봐 ' 했다.

' 왜 언니가 내 딱지를 달래 '

' 달라는 게 아니고 본다고 다 갖고 와 빨리 '

' 싫어 안 해 없어 딱지 다 잃어서 없어 '

' 너 아무래도 수상해 니가 언니 책 갖고 가서 딱지 접은 게 맞지 말해 어서 '

' 아녀 아니라니깐 난 그런 거 못 봤어 '


결국 그날 언니는 학교도 안 가고 집안을 다 뒤져서 내 딱지를 찾아냈다.

엄마는 몹쓸 년이 언니 책 까졍 다 딱지를 접었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언니는 여우눈을 해서는 곧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어서 밥도 못 먹고, 엄마랑 언니가 한눈파는 사이 집을 나왔다.

영섭이는 고소하다면서 쫓아다니며 놀려대고 구슬도 딱지도 못 갖고 나와서 애들하고 놀지도 못했다.


고갯말 수리산자락에 빨간 해가 걸리고 저 멀리 보련산을 넘어오는 달빛이 조금씩 빛을 키우고 있었지만, 내 발걸음은 쉽게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나는 그 일 이후로 언니의 종노릇을 해야 했다.

' 니가 방 닦아 '

' 응 ' '

설거지도 '

' 알았어 '

언니는 날 부려먹는 게 즐거워서 신이 났고

난 싫어도 꼼짝없이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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