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언니
유모차
셋째 언니는 정말 돈 냄새를 잘 맡았다.
고추 파는 날
콩 파는 날
담배 수매하는 날
전화도 없고 편지를 부치면 왕복 2주가 넘게 걸리던 시절
부고나 집안에 큰일이 생겼을 때 전보를 치던 시절에 셋째 언니는 코끼리코를 가져서 먼 곳의 돈 냄새도 다 맡을 수 있는 건지 나는 항상 궁금했다.
엄마 아버지가 고생고생해서 겨우 돈을 만지는 날 셋째 언니는 꼭 집에 왔다.
그날도 고추를 파는 날이었는데,
' 엄마 아버지 저 왔어요 ' 하면서 셋째 언니가 들어왔다.
나보다 네 살 어린 여자조카 그리고 여섯 살 어린 남자조카와 함께 왔다.
형부는 사우디 갔다 하고 쿠웨이트 갔다 하고 월남전에도 갔다 왔다고 했는데 셋째 언니는 서울에서 화장품 외판원을 하면서 근근이 생활한다고 했다.
어린 나는 시집갔으면 남편한테 돈을 타야지 왜 툭하면 집에 와서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셋째 언니가 오는 게 싫었다.
그날은 셋째 언니가 이상하게 생긴 차를 갖고 왔는데 거기에 조카가 앉아있었다.
바퀴가 달려서 뒤에서 밀면 그 차가 굴러갔다.
나는 너무 신기한 그 차를 타고 싶어서 언니가 밭에 엄마를 찾으러 간 사이 그 위에 앉았다.
좁았지만 몸을 구겨 넣으니 들어가기는 했고, 상심이 한테 밀어달라고 해서 마당에서 차를 탔는데, 내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차바퀴가 주저앉았다.
집에는 나와 상심이뿐이었고, 그 길로 상심이는 집으로 도망가고 나도 줄행랑을 쳤다.
뒷동산에 앉아서 우리 집 마당을 계속 쳐다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셋째 언니는 고장 난 차를 보면서 ' 누가 이래놨어 이년 들어오기만 해 가만두나 보자 ' 라는 소리가 뒷동산까지 들렸다.
대낮의 해는 제 할 일을 다하고 서산에 몸을 뉘이러 가는데 아버지는 어느 밭에 계신지 알 길이 없고, 뒷산에 부엉이가 금방이라도 내 눈을 파먹으러 내려올 듯 울어대는데, 겁이 나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 이상하게 생기 차는 괜히 갖고 와서 ' 중얼거리다가
'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내가 그런 거 아니라고 하지 뭐 ' 하면서 입술을 오므리고 대문에 들어섰는데 셋째 언니의 커다란 눈에서 괴물같이 빨갛게 불이 나왔다.
' 야 너 니가 이랬지 니가 유모차 고장 냈지 ' 다짜고짜 내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조카들은 유모차가 고장 나서 우는 건지 엄마의 목소리가 무서워서 우는 건지 동시에 ' 우아앙 우아앙 앙앙 ' 울어대기 시작했고, 엄마는 자초지종이나 들어보자며 언니를 말리는데 셋째 언니는 ' 엄마 이게 얼마짜린지 알기나 해 이거 현주아빠가 사준 건데 알면 나는 맞아 죽어 ' 라면서 악을 써댔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오셨고, 일단 언니손에 잡힌 나는 풀려났지만, 잡혔던 머리가 한 움큼 빠지고 놀란 내가 토하기 시작했다.
마루에 나를 눕히고 아버지는
' 그깟게 을맨지는 몰러두 니 동생보다 그 물건이 더 중한겨 왜 연락두 없이 와서는 애를 잡어 잡기를 ' 하시면서 아버지가 셋째 언니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셋째 언니는 일단 돈을 뺏어가야 하니 한숨 쉬면서 ' 그게 아니고 아버지 저게 유모차를 망가트려서 그런 거예요 '
' 그러게 그 물건이 막내보담 중요한겨 어린 게 몰러서 그런 걸 갖고 왜 애를 잡어 잡기를 '
그날 유모차 때문에 나는 병이 났고, 아버지는 유모차값이라면서 셋째 언니에게 돈 봉투를 쥐어 보냈다.
엄마는 ' 그러게 그걸 왜 건드려서 이 난리를 치는겨 지집년이 조신허질 못하고 ' 하면서 또 야단을 쳤다.
' 애가 머리채를 잡혀있는데 말리지는 않고 그건 또 무슨 말이여 어린 게 그럴 수도 있지 ' 아버지는 언니보다 엄마가 더 나쁘다고 화를 내셨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또 셋째 언니가 오는 걸 보고 나는 대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뒷문으로 도망쳐서 아버지가 계실 만한 밭을 다 가봐도 아버지가 안 계셔서 셋째 언니가 서울 가고 나면 집에 가려고 미정이네 집으로 갔다.
' 미정아 나 오늘 니네 집에서 자고 가도 돼 '
' 왜 니네 집 안 가고 '
' 응 셋째 언니가 와서 집에 가기 싫어 '
그날 밤에 아버지가 미정이네 집으로 나를 데리러 오셨고,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가는데 ' 아부지 죽으면 우리 막내 불쌍혀서 큰일이여 ' 하셨다.
' 아부지 죽지 마 나 아부지 죽으면 같이 죽을겨 ' 했다.
' 그려 그려 오래오래 살 거여 아부지는 안 죽어 ' 하셔서 나는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 등에 업혀서 집으로 가는 길에
둥그렇게 뜬 달이 앞서 걸었는데 아버지 그림자가 어서 가자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림자는 왜 까만색일까 아버지 그림자도 까맣고 길가에 나무그림자도 까맸다.
아버지등에서 구수한 땀 냄새가 났고, 등에 기대 나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