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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여우랄라 Mar 27. 2023

외출 시 필수품은? 책

향유의 독서

  친한 언니들과 미술관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겨울이라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예술의 온기로 활짝 펴 보고 싶어서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분주했다. 평소에 입던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 말고 좀 갖춰 입고 가야 할 것 같아 코트와 미니 백을 꺼내 두었다. 준비가 끝나고 가방을 메고 나가려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미니 백 때문에 나의 외출 필수품을 챙기지 못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미니 백은 잘 매지 않는다. 미니 백 엔 책과 펜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습관을 거스를 때는 언제나 마음 한편이 찜찜하다. 결국 포켓이 좀 넉넉한 코트로 바꿔 입었다. 그리고 최대한 가볍고 작은 책을 고르고 책 사이에 펜을 꽂고 코트 포켓에 넣었다.

그리고 미술관 동행을 하기로 한 언니들을 만나러 시간 맞춰 달려갔다.

언니들과 반갑게 인사하는데,

한 언니가 포켓주머니 위로 살짝 올라와있는 책을 가리키며

“이건 뭐야?” 라고 묻는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책을 보여줬다.

언니들은 책 좋아하는 나를 알기에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어 “뭐 읽을 일은 없겠지만 그냥…”이라고 얼버무렸다. 어쩐지 함께 나선 길에 나 혼자 딴청 할 생각을 미리 하고 나온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역에서 만나 미술관까지 내내 같이 움직이는데다 미술관에 가면 미술을 봐야 할 텐데, 책 읽을 짬이 어디 있다고 굳이 책을 챙겼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살짝 책망하기도 했다. 물론, 언니들과 함께 있는데, 혼자 책을 볼 생각은 없다. 나들이를 가기로 했음 나들이에 충실해야하고 나는 그럴 줄도 아는 사람이다.

다만, 이젠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정부 지침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하나는 2년 여 쓰고 다닌 습관 때문에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편한 것처럼 책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보니 이젠 없으면 허전해서다. 또 다른 하나는 겨울철 마스크를 쓰면 감기 예방이 되거나 여전히 남아있는 바이러스를 막아줄 거란 이점이 있는 것처럼 책이 있으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쉬워진다는 이점이 있다.


우리는 곧 미술관에 도착했다.

어쩐 이유에선지 이번 전시에는 도슨트가 없었다. 그 대신 무료 오디오가이드가 준비되어 있어 우린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림을 천천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같이 보고 같이 움직였는데, 점차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머무는 시간이 달라지면서 서로 다른 위치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맞춰질 거라 생각한 나는 작품을 다 본 후 마지막 작품 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 언니들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들~ 저 출입구 벤치에 있어요. 기다릴께요.” 했더니

“헉! 벌써? 우린 아직 30번 작품인데, 어쩌지? 얼른 볼께”라고 답이 왔다.

언니들은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다. 관심이 많은 만큼 아는 것도 많으니 나와 달리 작품 하나하나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을테고 그래서 더 오래 보았을 것이다. 총 작품 수는 49점. 아직 10여점의 작품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그럼 1시간쯤은 걸릴 것이다.


‘1시간? 혼자, 벤치에?’


괜찮다. 나는.


드디어 책을 늘 들고 다니는 습관의 이점을 십분 활용할 때이니까.

나는 언니들에게 “책 보고 있을 께요. 편하게, 천천히 보고 오세요.”라고 톡을 보냈다.

책을 들고 다니는 습관을 들인 후 이런 순간마다 나는 꽤나 여유로운 사람이 된다.

약속시간에 친구가 늦게 올 때에도, 혹은 내가 생각보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할 때에도, 심지어 이런저런 이유에서 약속장소가 좀 멀리 잡혀도 나는 짜증을 잘 안 낸다. 짜증이 나는 이유는 대개 나의 시간이 허비되는 것에 대한 불만과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대안을 가지고 있다. 틈틈이 읽을 책을 늘 가지고 다니기에 그 시간을 충분히 나만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은 대체로 나를 배려해준다. 어디서 만날지, 몇 시에 만날지를 정할 때에도 그 시간을 함께 고민하며 정하였기에 배려하지 않아서 늦었거나 장소가 멀리 잡히진 않았다는 걸 안다. 다만, 다음 일정이 짜여있거나 시간을 앞다툴 만큼 긴박한 일이 있다면 그때는 다른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시간차는 내겐 오히려 여유로운 사람 흉내를 낼 수 있게 하는 시간이 되고 때론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언니들은 40분 만에 내가 있는 벤치에 나타났다.

우린 여유롭게 웃으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아픈 다리도 쉬고 책도 보았으니 다음 장소로 가는 길은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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