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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우진 May 11. 2021

나의 요가선생 존 벌트만의 요가여정 2, 뉴욕


존은 인도에서 돌아와 다시 지질학을 가르쳤다. 달라진 것은 그때부터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애쉬빌 교외에 있던 한 요가원에서 아쉬탕가요가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해와서 그때부터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존이 인도에 가서 아쉬탕가요가를 창시한 사람의 손자인 쉬라쓰에게 2달동안 직접 수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요가원에서 높이 사주었던 듯하다. 학교강의에도 바쁘긴 하였으나, 1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 오후에 그곳에 가서 아쉬탕가요가를 가르쳤다.


그후, 3년 동안 학교강의와 요가수련을 일상으로 삼고 지냈다. 종종 미국내 다른지역에 있는 요가선생들을 찾아가 배우기도 하였다. 아쉬탕가요가를 잘하기도 하지만 요가철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작은 도시인 애쉬빌에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도시, 심지어는 하와이까지 유명하다는 선생들을 찾아갔었다. 그중에 대도시인 뉴욕이 가장 매력적이어 자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여러 선생들에게서 1-2주 씩 배웠는데, 그리 흡족하지는 못했다. 그러던중, 어느날 뉴욕거리를 걷다가, 요가수업 선전벽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 와서 존 캠벌과 요가를 배우시라. 존 캠벌은 공인된 요가선생이며, 세 아이들의 아버지이며, 불교 전공인 종교학 교수이다.’ 그동안 찾아 헤매었던 선생이었다. 존 캠벌은 매우 부드럽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서로 마음이 통했고, 친구가 되었다. 그때가 2009년, 뉴욕에 있던 퓨어요가(Pure Yoga)라는 요가원이었다.


2010년 겨울방학때, 다시 인도에 가서 한달정도를 지냈다. 그때 존의 요가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이 두번째 방문때 쉬라쓰는 존에게 중급시리즈의 모든 아사나들을 가르쳤다. 그 겨울에 존은 중급시리즈를 마스터하고 고급시리즈를 배우기 시작했다. 2011년 여름방학 3개월을 뉴욕에서 지냈다. 그전에도 그렇게 오래 머문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오직 요가훈련만이 목적이었다. 존은 집세가 싼 브룩클린 지역에 숙소를 잡았다. 브룩클린은 맨하탄 맨 아래에서 다리를 건너 롱아이랜드에 있는 케네디공항 근처에 위치한 지역이다. 퓨어요가의 위치는 콜롬비아대학에 가까운 맨하탄의 중간지점에 있는 업퍼웨스트사이드 지역이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숙소를 나서 지하철을 1시간 반을 타고 그 요가원에 가서, 존 캠벌의 아쉬탕가 마이소어 수업을 도와주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그 경험은 요가를 가르치는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하루는, 캠벌이 존을 요가실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며. 그날의 대화가 존의 일생에 큰 전환점이 된다.


그날 그 두사람간의 대화가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하려면, 한 억만장자부부의 이야기를 잠깐 해야한다. 이 부부의 이름은 폴 존스 (Paul Tudor Jones)와 소니아 존스 (Sonia Jones)다. 폴은 버지니아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197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맨하탄의 증권가에서 일을 시작하여 나중에 자신의 헤지펀드회사를 운영하며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후, 그는 모교인 버지니아대학에 지속적으로 많은 후원금을 기부하여왔다. 소니아는 오스트렐리아 출신으로 전직 모델이다. 그녀는 1999년부터 아쉬탕가요가를 수련해왔는데, 그녀의 요가스승이 바로 쉬라쓰 조이스다. 이 부부와 존 캠벌은 뉴욕 요가사회에서 만나 알게 되었다. 세 사람은 미국대학에 요가프로그램이 생겨서, 대학생들이 요가를 배울 수 있게 해주자는데 의견이 투합되었다. 그래서 소니아는 버지니아대학에 연락을 하여 그 대학에 요가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센터를 세우는데 필요한 기부를 약속하여 허락을 받았다. 소니아는 캠벌에게 그 사실을 전하며, 그 센터장이 되어주길 부탁했다. 그 부탁을 받은 캠벌은 존 벌트만에게 이야기할게 있다며, 요가실 밖으로 같이 걸어 나왔다. 햇살이 따가웠던 날이었다.


캠벌은 존에게 같이 버지니아대학에 가서 요가프로그램을 이끌자고 제안했다. 존에겐 좀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자신은 애쉬빌에 있는 작은 대학에서 지질학을 가르치는 안정된 직업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교수직을 그만두고, 남은 평생을 요가를 가르치라고? 처음 몇년은 월급도 자신의 교수월급보다도 훨씬 작을텐데? 그래서, 바로 관심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그 이후에 캠벌은 여러번 존에게 설득하려 하였다. 존은 고민에 휩싸였다. 애쉬빌에 돌아와 한 학기를 더 강의 한후, 2012년 초에 존은 대학에 사퇴서를 제출하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인도에서 5개월을 지냈다. 첫 한달 반은 인도북부지방에서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남은 석달 반은 인도 남부 마이솔에 가 그의 스승인 쉬라쓰와 요가수련을 하며 지냈다. 어느날, 존이 쉬라쓰에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할지를 모르겠어. 나의 다르마 (Dharma, 법 혹은 올바른 삶의 방식)가 무엇인지 모르겠어.’ 쉬라쓰가 말했다, ‘다르마는 선택하는게 아니야.’ 체류 마지막 달인 8월 어느날, 쉬라쓰가 존에게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갔더니, 쉬라쓰가 존에게 아쉬탕가요가선생 공인증을 주었다. (전세계에서 이 공인증을 가진 사람은 30여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쉬라쓰는 존에게 버지니아대학에 가서 아쉬탕가요가프로그램을 존 캠벌과 같이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존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던 버지니아주 샬롯스빌이라는 소도시에 소재한 버지니아대학. 그곳에서 아쉬탕가요가 마이소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게 그의 다르마가 되었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돌아올때, 바로 샬롯스빌로 향했다.


* 미국 주요 대학들 중에서 아쉬탕가 요가 프로그램이 개설된 곳은 두 대학이다: 버지니아 대학 (University of Virginia) 과 스탠포드 대학 (Stanford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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