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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우진 Jun 24. 2021

현대요가, 크리쉬나마차리야, 스티브 잡스, 요가난다

현대요가의 다양성

현대요가의 종류는 다양하다. 요가의 궁극적 목적은 마음의 해탈이다. 해탈의 상태, 사마디, 그리고 사마디를 얻기 위한 과정이 요가다. 그 과정은 여러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바거바드 기타>에서 크리쉬나는 올바른 삶속에서의 요가를 이야기했다. 파탄잘리는 8단계를 제시하며, 육체적 요가인 아사나는 그중에 세번째 단계로 소개하였고, 호흡과 명상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하타요가는 4단계를 제시하며, 아사나와 다이어트를 중요한 첫단계로 제시하였다. 어떤 과정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현대요가의 여러 종류가 생겨났다.


15세기에 쓰여진 <하타요가 프라디피카 (Hatha Yoga Pradipika)>에서 인도의 신 시바가 전수해주었다고 언급된 아사나의 수는 84개다. 그중에서 선택된 15개의 아사나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되어있었다. 그후 하타요가가 발전하면서, 아사나의 숫자가 늘어났다. 18세기말에는 100개가 넘는 아사나들이 가르쳐졌다. 1966년에 요가 구루 아이엥가 (B.K.S. Iyenga)가 <Light on Yoga>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책에는 200개의 아사나가 아이엥가 자신이 취한 포즈의 사진과 함께 기술되어있다. 내가 수련하는 아쉬탕가 요가에도 200여개의 아사나들이 다섯가지 시리즈로 나뉘어져 있다; 초급시리즈, 중급시리즈, 고급시리즈 A, B, C.


아이엥가요가와 아쉬탕가요가에서 가르치는 아사나들은 사실 똑같다. 아이엥가와 아쉬탕가 요가를 창시한 파타비 조이스 (K. Pattttabhi Jois)가 같은 선생 밑의 문하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생은 바로 현대요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티루말라이 크리쉬나마차리야 (Tirumalai Krishnamacharya, 1888-1989)다. 크리쉬나마차리야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요가는 그전의 요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아사나의 동작을 호흡에 맞추었다. 숨을 들이 쉼과 내쉼이 아사나의 동작을 이끌게 하였다. 둘째는 아사나와 다음 아사나 사이에 빈야사라는 동작을 도입하여 아사나들이 물이 흐르는 듯이 연결되게 하였다. 빈야사는 다운독 (downward dog), 업독 (upward dog), 그리고 점프백 (jump back)과 점프스루 (jump through)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호흡이 이끄는 아사나 그리고 흐르듯이 연결된 아사나의 시퀀스. 이 특성을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요가가 아쉬탕가요가다. 아이엥가요가는 빈야사를 통한 흐르는 듯한 연결보다는 각 아사나에서의 올바른 정렬 (alignment)에 더 중점을 두었다. 두 요가의 또하나 다른 점은, 아쉬탕가요가는 위에 언급하였듯이 5단계의 시리즈로 시스템화 되었어서, 단계에 따라 수련하는 아사나 시퀀스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이엥가요가는 정해진 시퀀스가 없다. 그때 그때마다 다른 조합의 아사나를 수련한다. 그러나, 이 두 요가 모두, 아사나와 호흡을 조화롭게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크리쉬나마차리야가 가르친 요가는 육체적 아사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의 제자들이 설립한 요가들이 다른 요가들에 비해서 육체적으로 힘든 요가임은 우연이 아니다. 어찌보면,  <하타요가 프라디피카 (Hatha Yoga Pradipika)>에서 기술된 4가지 단계의 요가 중에서 첫 단계인 아사나에 중점을 두고 있는 요가방식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현대요가가 발전하면서 아사나의 숫자가 그전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현상에는, 20세기 초에 인도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가르쳐진 체조(gymnastics)의 영향을 부인할 수가 없다. 스웨덴에서 19세기에 퍼 헨릭 링 (Per Henrik Ling)에 의해 발달된 체조는 근육운동을 통한 몸 내부의 변화를 추구했다. 인도에서 유행한 체조방식에는 그전까지의 요가책에는 없었던 다리를 벌리고 서서하는 자세들과 앉아서 균형을 잡는 자세등이 있었다. 이 자세들은 곧 요가에서 프라사리타 파도타나사나 (Prasarita padottanasana)와 나바사나 (navasana)등으로 차용되었다. 크리쉬나마차리야가 채택한 아사나들을 흐르는 듯이 시퀸스로 연결한 방식 또한 체조방식과 유사하다.


크리쉬나마차리야와 더불어 요가의 현대화에 기여를 한 구루들은 스와미 쿠발라야난다 (Swami Kuvalayananda, 1883-1966) 와 슈리 요젠드라 (Shri Yogendra, 1897-1989)이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선생 파라마함사 마다브다스 (Paramahamsa Madhavadas, 1798-1921) 로부터 요가를 배웠다.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첫 요가 교육은 1918년 요젠드라가 뭄바이에 인접한 소도시 산타크르즈에 세운 요가 연구소 (The Yoga Institute)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사람의 요가방식에서 육체적 요가의 중요성은 크리쉬나마차리야 방식보다는 덜했다.


수행방식에서 좀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 요가들 중에 하나는 크리야 요가 (Kriya Yoga)다. 1920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Paramahansa Yogananda, 1893-1952)라는 요기가 미국에 소개 전파한 요가다. 요가난다는 1946년에 '한 요기의 자서전 (Biography of a Yogi)' 이란 책을 펴냈다. 애플 컴퍼니를 설립한 스티브 잡스가 살아생전에 자신의 아이패드에 오직 한권의 책을 다운로드했다고 하는데, 그 책이 바로 이 자서전이다. 잡스는 죽기전에 자신의 추도식을 설계하였다. 그 추도식에서 초대된 손님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선물을 가져가게 하였는데, 그 선물이 바로 이 요가난다의 자서전이었다.   


크리야 요가의 수행법은 호흡 (pranayama)을 이용하여 마음과 생명 에너지를 안으로 향하게 하고, 요동치는 의식을 잠잠하게 하는 수행법이다. 그럼으로써 자기능력의 실현 (self-realization) 이 가능해지며, 정신적 평온과 더 나아가 영혼의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 요가난다 또한 어렸을 적에 아사나 수행을 하였고, 미국에 이주하기 전에 인도에서 가르칠 때는 아사나도 가르쳤다. 그러나 주된 수행법은 호흡이었다. 아사나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하타요가 보다는,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와 <바거바드 기타>에 나온 고전 요가 수행법에 더 근접한 요가방식이었다.


요가난다. 1927년, 워싱턴 D.C.에서 흑인들을 위한 요가센터를 세운 후 멤버들과.


요가난다는 호흡을 통한 자아실현을 설파하였을 뿐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항하며 행동하는 삶을 살았다.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인기를 얻은 요가난다는 1927년 수도 워싱턴에 와서 강연회를 열었다. 상원의원, 하원의원, 판사 등 상류층이 대거 참여하며 대성황리에 강연회가 열렸다. 심지어는 그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캘빈 쿨리지 (John Calvin Coolidge)로부터 백악관에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요가난다는 자신의 강연회에 백인들만 올 수가 있었고,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올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충격을 받은 그는 흑인사회를 방문하였고, 흑인을 위한 요가센터를 설립하였다. 미국인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10여년 전 일이다. 요가난다는 간디의 공개적이고 열렬한 지지자였다. 하버드 대학에서 간디가 그당시 인도에서 벌이고 있던 비폭력혁명에 대한 강연도 하였다. 그로인해, 그는 미국정부의 요시찰인물 리스트에 올라 감시를 당했다. 후에, 인도를 방문한 요가난다는 간디를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당시 미국에서는 다른 인종간의 결혼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요가난다는 인도인과 백인여자의 결혼에 주례를 서주기도 하였다. 유색인종의 남자들이 백인여자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며 날뛴 미국언론의 황색저널리즘에 곤욕을 치루었으며, 한동안 경제적 곤경에 처하기도 하였다.


요가난다의 죽음은 드라마틱하다. 마치, 자신이 설계한 것처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후, 인도는 외교대사를 임명하여 미국으로 보냈다. 1952년 3월 인도대사를 환영하는 만찬이 로스엔젤레스 빌트모어호텔에서 열렸다. 그곳에서 요가난다는 축사를 하였다. 자신이 사랑한 모국 인도와 미국이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에 협력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축사를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강즈강의 나무들, 히말라야의 동굴들, 그리고 신을 꿈꾸는 인간들. 나는 신성하게 되었다. 내 몸이 그 잔디에 닿았다. (Ganges woods, Himalayan caves, and men dream god. I am hallowed. My body touched that sod.)'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떴다.


요가난다가 설파한 요가와 그의 삶은, <하타요가 프라디피카>의 요가보다는 호흡과 명상 그리고 올바른 행동을 더 중요시한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와 <바거바드 기타>의 요가를 연상케 한다, '요가는 행위에 있어서의 숙련이다 (Yoga is skill in action)'. 불교에 비유하자면, <하타요가 프라디피카> 처럼 육체적 요가인 아사나를 강조하는 크리쉬나마차리아의 제자들을 소승불교의 수도승이라 한다면, 요가난다는 대승불교의 수도승이었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참고문헌

1. The Truth of Yoga, Daniel Simpson, North Point Press (2021).

2. Autobiography of a Yogi, Yogananda, New York: Philosophical Library (1946).

3. AWAKE: The Life of Yogananda, Documentary directed by Paola di Flo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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