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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우리를 구원할까 2-1

테크놀로지 vs 예술

by 요기남호

* 표지사진: 반 고흐의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1998년이었을 것이다. 내가 반 고흐 (Vincent van Gogh)와 직교감을 했다고 느꼈던 때가. 그가 그린 유화들 앞에 서서, 거침없이 휘둘러진 붓놀림의 높고 낮음을 직접 두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날은 화창한 늦가을이었던 기억이다. 주말이었다. 토요일이었는지 일요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가까운 교외에 위치한 미국표준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거의 매일 물리연구 실험에 밤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지내던 때였다. 밤을 거의 새고 새벽에 연구소를 나서는 때도 종종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당시 나는 실험기구 하나를 책임지고 있었고, 외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그 실험기구를 이용하려 방문한 물리학자들과 어떤 실험을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를 상의하고, 그 실험을 직접 집행하는 공동연구를 여러개 하고 있었다. 그 주에는 꽤 유명한, 나보다 스무살 정도 더 드신 두 물리학자들과 그당시에는 매우 '핫'했던 연구과제 하나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분이 직접 방문을 하여, 그분과 같이 실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풀네임은 콘스탄틴 스타시스 (Constantine Stassis). 줄여서 코스타 라고 불렸다. 그리스 출신 미국국적의 물리학자였던 그는 우리가 속한 중성자물리사회에서는 독특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외향적으로도 독특했다. 기다란 구렛나루의 수염을 뽐내고 있었고, 항상 셔츠의 위 3개의 버튼을 열어두어, 가슴에 있는 무성한 털숲이 삐져나왔다. 대화를 나눌때는 흥분을 잘하여, 상대방의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침을 튀기며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와는 물리연구주제 뿐아니라, 정치와 사회를 비롯한 잡다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참 재미있는 분이었다.


그당시, 난 외부에서 그러한 흥미로운 사람들이 오면, 공동실험 뿐만아니라 시간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틈틈히 문화생활도 같이 즐기는 이벤트도 마련하곤 했었다. 코스타가 공동실험을 하러 오겠다는 이메일을 받은 후, 난 주말에 같이 무엇을 하며 보낼까를 찾아보았다. 그당시 난, 주말에 시간이 나면 워싱턴에 있는 박물관들에 가곤 했었다. 백악관에서 한두 블록 떨어져있는 곳에는 'The Mall'이라 불리는 넓은 구역이 있다. 정중앙에 뾰족한 워싱턴 기념탑이 서있고, 한쪽 끝에는 링컨 기념관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직사각형의 구역이다. 링컨 기념관과 국회 의사당 사이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놓여있다. 그 잔디밭 위에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가족들이 연을 날리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여 프리즈비 (frisbee) 게임을 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 잔디밭 양변에 도로가 있고, 그 도로 건너편에 여러 박물관들이 즐비어 있다. 특이했던 점은 그 모든 박물관들은 무료였다. 그중에 내가 자주 가던 박물관은 국회의사당에 가까운 National Gallery of Art 이었다. 뛰어난 미술작품들도 볼거리였지만, 그 당시 이 갤러리에서는 동관 지하에 있는 커다란 상영관에서 주말마다 오래된 영화를 무료로 상영을 해주었다. 그곳에서 난, Francois Truffaut, Jean-Luc Godard, Costa Gavras, 등의 이차대전후 만들어진 유럽 영화들을 공짜로 보는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었다.


코스타가 체류하는 기간 중에는 그 갤러리에서 반 고흐 특별전을 한다는 소식을 갤러리 웹사이트에서 보고, 주말에 코스타를 모시고 그 특별전을 보고 갤러리 안의 까페에서 점심식사도 하며 오후를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보통은 입장료가 없지만, 그러한 특별전을 보려면 표를 구입을 해야 했는데, 난 당일날에 갤러리에 가서 표를 구입하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었다. 그날 아침 일찍 실험실에서 코스타와 만나 전날 밤에 나온 데이타를 분석하고 그날 실행해야할 실험을 계획하고 기계로 하여금 실행하도록 컴퓨터에 명령을 내린 후, 우린 급하게 연구소를 빠져 나왔다. 내차에 그를 태우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The Mall에 도착하여, 국회 의사당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길을 건너 갤러리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갤러리 주위에 줄을 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별다른 생각없이, 갤러리 정문에 갔더니, 안내원이 그 줄 끝에 가서 서라고 하였다. 그 줄의 끝을 찾아가는데, 그 갤러리가 위치한 한 블럭 전체를 삥 돌아서 다시 갤러리 앞을 조금 지나서야 줄을 설 수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 고흐가 남긴 미술작품을 보러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 11시도 안되었던 이른 시간이었는데.. 물론, 미리 표를 구입한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입장을 하고 있었다.


줄에 서서 기다리며, 코스타와 잡담을 나누었다. 화창한 가을날이었고, 따스한 햇볕에 처음엔 기다림을 즐길만 했다. 코스타는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대고 침을 튀기며 끊임없이 말을 하였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코스타가 나에게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온 건 기억한다. 난, '인간의 탐욕'이라 답했고, 그는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대략 30분 가량 기다리자, 코스타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갤러리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며, 미리 표를 샀어야하는데라는 아쉬움을 내밷기 시작했다. 우리 앞의 줄이 줄어드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우리 뒤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와 줄을 서고 있었다.


1시간 가량이 지나, 나도 포기를 할까말까하는 와중에, 문득 한 여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기억으로는 그당시 40대 쯤 되어보이는 백인 여성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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