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H. 로런스 <Women in Love> 4-3

구드런 & 제럴드 2

by 요기남호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에 구드런은 잠에서 깬다. 언니 어슐라인 줄 짐작하고, '어슐라?'하고 말한다. 제럴드가 '아니, 나 제럴드야.'답하자, 구드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침대와 방문 사이에 멍하니 서있는 제럴드를 본 구드런은 침대 옆 조명을 켜고 황급히 방문으로 가 문을 잠근다. 그리곤 진흙이 잔뜩 묻은 제럴드를 보며 침대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 앉는다. 그리곤 묻는다.

구드런 (이하 구): 'What do you want from me.' (나에게서 무얼 원해요?)

제럴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선채로 답한다.

제럴드 (이하 제): 'I came because I must. Why do you ask?' (올 수 밖에 없어서 왔어요. 왜 그 질문을 해요?)

구: 'I must ask' (난 물어봐야하잖아요.)

제: 'There is no answer.'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어요.)

그러자, 구드런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갑자기 입고 있던 원피스 잠옷을 벗어제낀다. 그녀의 벌거벗은 몸이 드러난다. 그리고, 말없이 조명을 끈다. 그러자 제럴드는 침대의 다른편 방구석에 놓여있는 의자를 보고 그곳에 천천히 걸어가 앉는다. 구드런에게 눈을 떼지 않은채 구두끈을 풀고 구두를 벗고,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가 나체가 되어 자신의 앞에 와 무릎을 꿇을때까지 구드런은 말없이 그를 빤히 바라본다. 제럴드는 양팔을 들어 양손으로 구드런의 머리를 감싸고 천천히 손을 내리기 시작한다. 양볼을 거쳐 구드런의 풍만한 유방에 양손이 닿자, 그는 얼굴을 그 사이에 파묻는다. 구드런은 눈을 서서히 감고, 그의 머리를 감싸안고 그의 머리에 입술을 가져간다. 그렇게 구드런과 제럴드는 열정적으로 육체적 합일을 이룬다.


제럴드와 구드런이 가진 열정적 섹스가 이 두사람에겐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섹스장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두사람의 모습에서 짐작케한다. 하얀 이불이 하반신을 가린채 제럴드는 구드런의 나체 위에 포개진 상태로 잠에 골아떨어져 있다. 구드런은 밑에서 두눈을 멀뚱멀뚱 뜬채 밤을 꼬박 지샌다. 먼동이 튼다. 카메라는 상념에 잠긴 구드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구드런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양, 두눈을 질끈 감고 다시 뜬 후, 제럴드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부드럽게 흔들며 그를 깨운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섹스 후, 곤한 잠을 자는 제럴드의 모습은 그가 마음의 평온을 얻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공허함과 불안감에 시달렸던 어두운 터널 속을 다 벗어난 듯한 마음의 상태. 구드런과의 사랑으로 삶의 충만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상태. 이에반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구드런의 모습은 그녀는 고민에 휩싸여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사실, 구드런이 먼저 제럴드에게 매력을 느껴 강한 사랑의 감정을 가졌었다. 자유롭고 흥미로운 보헤미안들과 어울렸던 런던생활을 뒤로 하고 고향인 탄광촌에 돌아온 구드런. 고향에 완전히 정착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언제든 기회만 되면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재미없는 고향생활에 따분해진 구드런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잘생긴 제럴드에게서 흥미와 매력을 느꼈고 그후 여러번 만날 기회를 통해 그녀의 감정은 점차 강렬해져갔다. 제럴드는 구드런에게서 자신이 그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여성들과는 전혀 다른 면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소시민계급 출신임에도 창조적 일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당당함과 아름다운 자태를 모두 지닌 구드런에게 제럴드는 매료되었다. 그날밤의 섹스는 제럴드에게 그의 구드런과의 본격적 시작을 의미한다. 자신이 처한 공허한 삶에서 도피할 수 있는 도피처로서의 구드런과의 사랑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구드런에겐 그 섹스는 한 경험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동경과 호기심으로 다가왔던 상류계층의 한 남자 제럴드를 획득하게 되는 경험 말이다. 자본주의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자본가 제럴드를 정복한 구드런은 그 정복에 만족하며 안주할 수 있을까.


조각가로서 창조적 삶을 살아가려는 구드런에게 한 남자와의 사랑이 지속되려면 그 남자가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그 감수성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남자가 아니라면, 구드런은 한 남자에게 안주할 수 없는 운명의 소유자는 아닐까. 과연 제럴드는 그런 능력을 소유하고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