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ingle pure activity
우리가 살아가면서 깊은 만족감과 충족감을 갖게 될 때는 창조적 삶을 영위할 때다. 사전적 의미의 창조적 삶이란 자신의 삶의 본질 혹은 의미를 초자연적 신이나 지상의 어떤 권위에서 찾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찾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가끔 삶의 공허함을 호소하는데, 그 원인은 아마 삶이 창조적이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그러면, 과연 현대의 과학기술시대에서 창조적 삶이 가능한가? 제럴드가 광산에 구축한 완벽한 메커니즘에는 최신식의 물리적 기계 뿐아니라 광부들과 관리자인 제럴드까지 하나의 부품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동일한 동작의 "무한대로의 생산적 반복"[1]으로 규정되는 일상, 주어진 동작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되면 제럴드 광산회사에서의 늙은 광부처럼 직업을 잃게 되는 현실, 그리고 기계적 동작을 요구하는 직종 뿐아니라 전문직들 마저 인공지능으로 무장된 기계들에 의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는 현대과학기술시대에 과연 어떠한 창조적 삶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로런스의 대답 중의 하나는 제럴드와 루펄트가 사랑에 대해 대화를 나눌때 루펄트가 말한 "하나의 순수한 행위 (One single pure activity)"가 아닐까. 다시 루펄드의 말을 되새겨보자.
"I find that one needs one single pure activity. I would call love a single pure activity. (난 사람은 단 하나의 순수한 행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사랑이 바로 그 하나의 순수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봐.)"
소설에서 작가 로런스의 생각을 대변하는 인물은 바로 루펄트다. 위에서 언급한 루펄트의 말에서 우리는 로런스가 생각했던 순수한 행위가 사랑만이 아닌 복수의 다른 어떤 행위들일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여기에선 일단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루펄트가 바라는 사랑은 단순한 "성적 결합"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어떤 연결"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기 자신의 존재를 갖는 두개의 순수한 존재로서, 각기 상대방의 자유를 이룩하며 서로가 마치 한 힘의 양극처럼, 두명의 천사처럼, 아니면 두개의 정령처럼 균형을 이루는 그런 관계를" 의미한다.[2]
루펄트와 사랑에 대한 대화를 처음 나눌때 제럴드는 여자와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은 광산을 현대화하는 자신의 일이라고 고백한다. 여자와의 관계는 그저 욕정을 채우기 위한 무분별한 관계들만 가지고 있던 제럴드였다. 그러나 제럴드의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구드런의 등장도 있지만, 크라이치 집안에 불행이 연이어 일어난다.
크라이치 집안이 벌인 대규모의 피크닉에서 제럴드의 여동생 로라 (소설에서는 다른 여동생 디아나)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 익사한다. 그 충격으로 제럴드의 아버지 톰은 병을 얻어 병석에 눕는다. 이러한 불행의 연속에 제럴드의 공허함과 심리적 불안감은 심해지고, 그 상황에서 구드런과의 사랑을 돌파구로 삼는다. 어느 늦은 밤, 제럴드는 구드런을 배웅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어두운 터널 속에서 둘은 드디어 키스를 한다.
얼마 후 톰 크라이치는 그만 세상을 뜬다. 아버지 톰의 장례식을 치른 날 밤, 제럴드는 집을 나와 정처없이 걷다가, 브랑그웬 집안의 집 앞에 도착한다. 현관문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돌리자 문이 열린다. 구드런의 아버지는 일층 거실에서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다. 제럴드는 숨죽이며 계단으로 올라가 구드런의 방으로 보이는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엔 구드런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인기척에 눈을 뜬다. 그리고...
(to be continued)
[1]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21쪽.
[2]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32쪽에 번역된 동명소설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