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요가의 고전 <하타요가 프라디피카>는 첫 장에서 먼저 요기가 살기에 적합한 곳을 이야기한다. 번영하고, 평화로운 곳. 그러한 곳에서 모든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살며, 자신의 구루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요가에 정진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요기로서 해서는 안되는 여섯가지를 언급했다. 과식, 지나친 노력, 수다, 불필요한 금욕, 사교성이 많은 (socializing) 생활, 지나친 활동 (restlessness). 게으르고, 미국에서 경계인으로 사는 사교성이 없는 난, 해서는 안되는 그 여섯가지는 대부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내가 사는 곳은 요가를 하기에 괜찮은 곳일까?
난 소도시에 산다. 미국 지도를 보면, 수도 워싱턴이 동부에 위치해 있다. 워싱턴에는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 흐른다. 서울의 한강처럼. 포토맥강은 남쪽으로 흘러 체사픽만 (Chesapeake Bay)을 거쳐 대서양으로 나간다. 포토맥강의 동쪽에는 매릴랜드 (Maryland) 주가 위치하고 있고, 서쪽에는 버지니아 (Virginia) 주가 위치하고 있다. 버지니아 주의 영역은 커다란 산의 형태를 띄고 있다. 남쪽의 일직선의 주 경계선은 노스 캐롤리나 (North Carolina) 주와 테네시 (Tennessee)주와 맞닿아 있다. 동쪽은 대서양에 맞닿아 있고, 가파른 산의 형태인 서쪽의 주 경계선은 웨스트 버지니아 (West Virginia) 주와 켄터키 (Kentucky) 주와 맞닿아 있다.
버지니아 주의 지리적 중심부에서 약간 북쪽에 샬롯스빌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내가 2005년부터 살고 있는 곳이다. 수도 워싱턴에서 대략 190 킬로미터 떨어진 위치다. 서울에서 내 고향 익산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미국의 땅이 너무 넓어, 이 정도의 거리는 지척이다. 하루 단일치기로 차를 운전하여 워싱턴에 나들이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리다. 동쪽으로 차를 몰고 2-3시간 운전하면 대서양을 마주하게 된다. 서쪽으로 차를 30분 몰면 블루리지 산맥 (Blue Ridge Mountains)이 나온다. 북쪽 캐나다에서부터 내려와 펜실베니아 (Pennsylvania) 주, 버지니아 주, 그리고 남쪽 테네시 주를 거쳐 알라바마 (Alabama) 주 북부까지 길게 이어진 아팔라치안 산맥 (Appalachian Mountains)의 일부인 산맥이다. 이 산맥이 북극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를 막아준다. 서울보다 약간 더 따뜻하다.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는 산에 걸려 비가 되어 내린다. 그래서 물이 많다. 땅은 비옥하다.
샬롯스빌의 위도는 38도다. 우리의 모국이 분단된 경계선과 같은 위도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서쪽으로 1만1천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같은 민족인 남한과 북한의 청년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다.
사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마을에 가깝다. 미국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대통령 임기 후 1819년에 설립한 버지니아대학을 중심으로 이 도시는 돌아간다. 제퍼슨의 생가인 몬티첼로(Monticello)는 대학 교정에서 남동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자그만 언덕위에 세워져 있다. 몬티첼로는 이탈리안(Italian)으로 '작은 산'을 뜻한다. 그 생가의 마당에서 대학 교정이 보인다.
제퍼슨은 무신론자였다. 17-18세기에 기독교인들이 동부에 세운 명문사립대학들은 신학이 대학 커리큘럼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에 반하여, 제퍼슨은 교회의 영향력이 전무한 공립대학을 설립하였다. 그 대학이 바로 버지니아 대학이다. 1819년 설립 당시의 대학 커리큘럼에는 신학이 없었다. 의학, 법학, 수학, 화학, 고대언어학, 자연철학, 도덕철학이 커리큘럼의 전부였다. '이 대학에는 신학 교수직이 설자리가 없다'라고 제퍼슨은 말했다. 200년이 지난 현재,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학에는 규모가 제법 큰 종교학과가 있다. 이 사실을 알면, 제퍼슨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샬롯스빌은 미국 전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로 뽑힌 적이 있다. 부유한 미국인들이 은퇴후에 이주해 사는 도시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사계절이 있고, 아름다운 블루리지 산맥이 가깝고 날씨는 온화하다. 산들은 완만하고 넉넉하다. 주변엔 비옥한 농장이 널려있다. 매주 토요일 시내에는 주위의 농부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져와 파는 장이 선다. 꽤 괜찮은 와이너리 (winery)가 주위의 언덕에 여러개 널려있다. 토마스 제퍼슨에서 비롯된 역사적 전통으로 관광업과 버지니아대학이 제공하는 경제적 안정 그리고 자유주의적 문화환경이 제법 매력적이다. 이글을 다운타운에 나와 쓰고 있다. 나이가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마른 백인남자가 등까지 내려오는 은발의 머리를 하고, 검은 옷과 구두에 빨간 양말을 하고 지나간다. 자유롭다.
2020년에 샬롯스빌의 인구는 4만7천명 정도였다. 백인 66퍼센트, 흑인 18퍼센트, 아시아인 7.2퍼센트, 히스패닉/라틴계 5.8퍼센트로 이루어졌다. 나머지는 두 인종간의 혼혈이다. 나의 아이들처럼. 미국 전체 인구중에 백인은 60퍼센트다. 샬롯스빌에는 미국 평균보다 좀더 많은 백인이 사는 셈이다. 난 경계인이다.
샬롯스빌에는 아주 작은 오래된 시내(downtown)가 있다. 다운타운에는 여러개의 맛집 레스토랑과 술집, 헌 책방, 그리고 까페들이 섞여 있다. 밴드들이 매일 이곳 저곳에서 연주를 한다. 거리에서도 홀로 혹은 몇 아마추어들이 연주를 하기도 한다. 몇년후엔 나도 거리에서 트럼펫을 불러제낄 수도 있겠다. 백발에 검은 옷, 구두를 신고, 빨간 양말을 하고서.
나의 집은 교정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있다. 학교 연구실 건물에서 2.7 킬로미터 떨어진 주택가다. 처음 이 대학으로 직장을 옮겼을때는 이 도시 외곽에 살았었다. 그런데, 매일 출퇴근 길에 교통체증이 있었다. 그 전에 살던 워싱턴 외곽이나 서울에서의 교통체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귀찮아져, 8여년 전에 학교주위로 이사를 왔다. 난, 게으름이 심하다. 귀차니즘의 화신이다. 그리고 도시인이다. 캠핑보다는 까페에 앉아 멍때리는 걸 더 좋아한다. 귀차니즘과 도시인이 조화롭게 공존하려면, 소도시의 중심부에 사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그러면, 게으름을 떨면서도 도시가 주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영위할 수 있다. 대도시의 번잡함이 없이. 집에서 자주 가는 커피숍은 2.7 킬로미터, 다운타운까지는 3.2 킬로미터. 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이 모든 곳을 어슬렁거리며 하루를 지낼 수 있다.
샬롯스빌은 진보적이다. 지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85.5퍼센트, 트럼프가 12.8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니까, 샬롯스빌은 나같은 경계인이 살면서 요가에 집중할 수 있는 도시의 덕목을 다 갖춘 듯하다. 경계인이니 만날 사람도 별로 없고, 꼭 가야하는 사적, 공적 행사도 별로 없다. 하루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에는 학생들과 교직원 그리고 일반인 상대의 요가 프로그램들이 개설되어 있다. 내가 학교근처로 이사를 온 후에, 요가에 입문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과연 우연과 필연의 차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