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대신 요가

by 소자 마음


생존과 지혜를 배우는 곳


아이들과 외식을 할 때면 늘 고민이 있었다. 잘 먹지 않는 큰아이와 먹성 좋은 둘째를 고려해 3인 식사를 시켜 나눠 먹곤 했는데, 큰 아이는 느린 속도 때문에 늘 억울함을 호소했다. “민트 31 사건”, “귤 한 박스 순삭 사건” 같은 사소하지만 치사한 에피소드 속에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서러움이 겹겹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나도 아이의 필요와 욕구를 인정하면서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마음으로 “지금 못 먹는 건 네가 보관해도 된다”라고 말해줬을 때 큰 아이는 "정말 그래도 돼"라고 안심하면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자리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부모님이 일을 나가실 때 언니에게 우리 남매들의 간식비로 천 원주면 언니는 깡으로 시작되는 과자를 사서 신문지를 펼쳐놓고 봉지를 터뜨려 “시작!”이라고 외쳤다. 우리는 정말 숨도 쉬지 않고 과자를 입안에 쑤셔 넣던 그 모습은 당시에는 살벌하기도 하고 가끔은 입과 손이 작은 나도 억울해하기도 했던 그 시간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경쟁 속에서도 즐거움과 재미가 있었기에 미소가 떠오른다.



허한 마음을 채우는 한 끼


허한 마음까지도 채워주는 곳이 있다. 동네 사거리의 설렁탕집 ‘푸주옥’. 커다란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단순히 뼈를 삶는 증기가 아니라,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따뜻한 기운처럼 느껴진다. 독박육아로 힘들고 외로울 때, 사골 국물 한 그릇은 뱃속의 허기를 채우는 동시에 마음의 허기를 모아주었다. 국물은 언제나 나에게 새 힘을 불어넣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매서운 겨울 추위에는 요즘 겨울



밥상대신 요가


이제는 밥상 대신 요가 매트 위에 앉는다. 아이들이 각자의 스케줄로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저녁 밥상을 차리는 대신 퇴근 후 요가를 하러 간다. 처음엔 둘째에게 미안해 챙겨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이도 스스로 저녁을 챙긴다. 매트 위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은 흩어진 몸과 마음을 다시 채우는 나만의 밥상이다.


그래, 대충이라도 한 끼를 거르지 않는 나답게.


그냥 이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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