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들 (1)

by 온실라

노아와 함께 사건현장 및 화랑관 이곳저곳을 둘러본 정민은 답답한 마음에 소리 없이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어제 강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화랑관에 돌아와서 직접 살펴보면 뭐라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히 감도 못 잡고 있는 실정이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범인이 어떻게 CCTV를 다 피하고 도훈을 살해할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여겼던 옥상조차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화랑관의 구조상 범인이 다닐 수 있었던 길은 한정돼 있었고, 그마저도 대부분 CCTV의 감시 아래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증언을 좀 들어보면 사건의 진상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정민은 거기에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김준호 관장보다는 더 터놓고 아는 바를 얘기해주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노아와 정민은 경찰이 아닌 기자들이었다. 증언을 강제할 수 없었다. 더욱이 범인이든 아니든 살인사건과 관계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언론에 노출되는 일은 특히 피하고 싶을 것이다. 정민은 사람들을 만나 증언을 듣는 과정도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정민의 예상은 처음부터 비껴갔다. 노아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주환과 수민이었다. 두 사람은 죽은 도훈을 최초로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중 수민은 어젯밤 유일하게 도훈의 사망추정시간 때 서관 2층에서 1층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CCTV에 찍힌 사람이기도 했다.


노아와 정민은 두 사람을 동관 1층의 라운지에서 만났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네 사람밖에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불행한 사건 때문인지 넓은 공간이 오히려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주환과 수민은 둘 다 안색이 창백했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특히 수민은 아픈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마 시체를 처음 발견할 때 큰 충격을 받았겠지. 그런데 그 와중에 경찰 조사까지 받았을 테니. 정민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취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심각한 분위기를 눈치챈 노아도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은연중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듯한 목소리였다. 노아의 다정한 어투가 효과가 있었는지 주환과 수민은 조금 표정을 풀었다. 두 사람도 노아가 살인사건과 관련해 만나자고 요청했기 때문에 내심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닙니다.”


주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별로 바쁘진 않습니다. 어제…… 아니, 그제 밤에 일어난 일이죠. 어쨌든 그 사건 때문에 전시 오프닝이 무기한 미뤄져서요.”


주환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인 후 말을 이었다.


“저나 수민 씨나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화랑관에 나오기는 했지만 보시다시피 딱히 할 일이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경찰 조사가 끝나야 전시회도 재개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노아 기사님이 나서주신다고 하니 든든한 마음이 드네요.”


정민은 새삼 주환을 바라보았다. 노아를 바라보는 주환의 눈빛에 어떤 신뢰감 같은 게 느껴졌다. 단순히 노아의 명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반응은 아닌 것 같았다.


“저야말로 제 요청에 이렇게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아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경찰의 수사를 보조하는 정도지요. 두 분 모두 이미 경찰에게 아시는 모든 사실을 말씀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고스럽지만 제 질문에도 답변해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경찰이 물은 것과 별 차이 없겠지만요.”


“물론입니다. 무엇이든 물어봐주세요.”


주환은 적극적이었다. 노아가 질문을 던져주기를 거의 기대하는 것 같았다. 수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환과 마찬가지로 결연한 눈빛으로 노아를 보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협조적인 두 사람의 태도에 정민은 적잖이 놀랐다.


“감사합니다.”


노아가 거듭 감사를 표했다.


“두 분이 피해자를 최초로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싫은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주환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저와 수민 씨가 도훈 작가님을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다. 어제 오전 10시쯤이었을 겁니다. 서관 1층, 비상계단 입구 안쪽에서요.”


“그때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시회 준비를 위해 저와 수민 씨는 아침부터 화랑관을 찾았습니다.”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서인지 주환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곧 더듬더듬 다시 말을 이었다.


“전 8시 50분쯤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수민 씨는…….”


“전 8시 반에 이미 도착해있었습니다.”


수민이 조용히 말을 보탰다.


“오자마자 사무실에 가서 전시회와 관련해 부관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환 작가님이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안내 데스크에 받고 로비로 내려왔죠.”


“아. 그럼 어제 아침 8시 30분쯤에 정우현 씨는 이미 출근을 하셨던 모양이네요?”


노아가 이번엔 수민에게 물었다. 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관장님 외에도 직원들은 다 출근한 후였습니다. 제가 알기로 화랑관은 8시까지 출근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출근하지 않은 직원이 있었나요?”


“관장님은 안 계셨어요. 보통 9시 반이나 10시 사이에 오신다고 들었어요.”


그렇군요. 노아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수민과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눈치 챈 것인지 눈빛이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럼 두 분이 대충 9시쯤 만나신 건가요? 이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간단하게 이야기를 좀 하고 서관 1층 작품들을 한 번 쭉 둘러보았습니다.”


주환이 설명을 이어갔다.


“작품 하나 하나 일일이 확인하고 의견을 교환하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서관 1층 점검을 끝내고 난 다음,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원래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어제 제가 아침을 좀 많이 먹고 온 상태여서 배가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냥 운동 겸 걸어서 올라가는 건 어떠냐고 했고, 수민 씨도 동의했죠. 그래서 엘리베이터 옆 비상계단 문을 열었더니…….”


주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아침의 그 끔찍했던 현장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 모양이었다. 노아는 재빨리 다음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를 발견하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겁이 나더군요. 경찰이나 119를 불러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기분이었어요.”


진저리를 치며 주환이 말을 계속했다.


“그러다 일단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민 씨에게 로비에 가서 직원들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전 자리를 지켰구요. 경찰에는 나중에 온 직원들이 신고했을 겁니다.”


“그렇군요.”


노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과장된 동작에는 주환과 수민이 경험했을 참담함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듯했다. 주환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하지만 솔직히 해줄 말은 많지 않았습니다.”


“경황이 없으셨겠지요. 당연한 겁니다.”


위로하듯 노아가 말했다.


“피해자와는 잘 아는 사이셨나요, 작가님?”


“잘 알긴 하지요.”


주환이 두 번째로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지만…… 전 솔직히 도훈 작가님의 작품과 예술성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취향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사실 전 도훈 작가님이 파티에 오신지도 몰랐습니다. 초대 리스트에서 보긴 했지만 전시회나 연회장에서는 얼굴을 못봐서 말입니다.”


주환이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 큰 맘을 먹은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도훈 작가님이 안 보여서 내심 안도했습니다. 만나봤자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진 않았으니까요. 특히 하윤이…… 하윤 작가까지 와있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견원지간입니다. 만날 때마다 트러블이 있지요. 도훈 작가님이 일방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이지만…….”


주환이 다시 말을 멈췄다. 아무리 그래도 고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너무 떠드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참 성격 좋은 사람이라고 정민은 생각했다. 도훈에 대한 주환의 생각은 정민도 100% 공감하는 바였다.


“그렇군요.”


노아는 이해한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다. 그런 노아를 보며 정민은 노아가 사건을 조사하는 기자라기 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사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주환은 노아에게 이야기하면 이야기할 수록 뭔가 편안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노아가 미리 경고하듯 짧게 헛기침을 해보였다.


“경찰에 의하면 피해자의 사망 추정시간은 오후 7시 47분에서 10시 사이입니다. 당시 작가님의 알리바이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주환은 즉답했지만, 다시 살짝 긴장한 것 같은 눈치였다. 실제로 주환은 매우 신중하게 말을 계속했다.


“전 오후 6시부터 계속 연회장에 있었습니다. 제 단독 전시회다 보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빴지요. 찾아와주신 분들을 계속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7시가 조금 넘어서 식사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그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지요. 수민 씨도 같이 식사했습니다.”


“그렇군요.”


별 거 없는 이야기였지만 흥미롭다는 듯 노아가 반응해주었다. 이에 자신감을 찾은 것인지 주환이 재빨리 말을 계속했다.


“그러다 7시 40분쯤에 다들 라운지로 옮겨가는 분위기여서…… 저도 옮겼습니다. 그후 파티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 계속 손님들과 이야기를 했지요. 떠나시는 분들과도 인사를 했구요.”


“맞습니다. 저희도 작가님께 인사를 드렸지요.”


“그랬죠.”


주환이 어색하게나마 미소지었다.


“그렇게 참석자분들이 모두 떠나실 때까지는 라운지에 계속 있었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신 감사한 분들이라서 모두 배웅해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럼 혹시 이재훈 사장님도 보셨나요, 작가님?”


뜬금없이 정민이 끼어들었다. 노아와 주환은 동시에 정민을 돌아보았다. 정민은 태연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경찰에 의하면 이재훈 사장님은 9시가 훨씬 넘어서 화랑관을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주환 작가님은 이재훈 사장님을 보셨나 해서요.”


“네, 봤습니다.”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환이 대답했다. 정민이 왜 재훈에 대해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도 놀랐습니다. 참석자들이 다 떠나신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계시더군요. 이재훈 사장님도 제가 끝까지 배웅했습니다. 대리기사가 올 때까지 화랑관 밖에서 같이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했죠. 라운지에 있는 방 중 하나에 있었다고 합니다. 업무 관련 계속 통화 중이라 파티가 끝난 것도 눈치 못채고 있는 것을 화랑관 직원이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이재훈 씨와는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이번엔 노아가 물었다. 주환은 잘 생각이 안 나는지 고개를 갸우뚱해보였다.


“전시회 이야기도 좀 하고……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 사장님이 중간 중간 통화를 하시기도 해서…….”


“그렇군요. 그분이 몇시에 떠났는지 기억하시나요?”


“대리기사가 오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9시 30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환이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저와 수민 씨도 그 이후에 화랑관을 떠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9시 40분쯤 됐을 겁니다. 같이 택시를 탔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먼저 수민 씨 집으로 간 다음 저희 집으로 갔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10시 30분이 거의 다 됐던 것 같구요. 그후 샤워하고 바로 잠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노아가 미소지었다. 주환을 안심시키는 듯한 미소였다. 정민은 주환이 안심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주환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그는 계속 동관 1층에 있었을 뿐 아니라 파티의 주인공인 만큼 계속해서 많은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범인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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