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해 봤던 적이 있으신가요?
열일곱 봄에서부터 열아홉의 겨울까지
저는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했습니다.
열일곱.
남들이 보기엔 철없는 고등학생의 생각 아냐? 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 봄은, 누구보다 간절했고 애틋했습니다.
날이 아직 풀리지 않은 쌀쌀한 아침.
누구보다 먼저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나와 거리가 조금 있는 곳에서 사는 거 같은 그녀는
항상 먼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늘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해 줬습니다.
오늘도 인사했다며 좋아하는 나를 보고 있는 순간,
”아, 내가 좋아하는구나 “ 하며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내 일상 속엔 그녀가 들어와 있었고,
또 그게 싫지 않아서,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그 친구의 웃음과 인사는 마음의 표시였고,
나는 그날로부터 그녀와 잊을 수 없는 3년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도 저도 밥을 먹든, 공부를 하든,
언제나 함께 하는 마음이 1순위였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결정하는 모든 것들을 응원했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말에 상처받고,
말 한마디에 행복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정말 정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본인을 생각하는 날보다 나를 생각해 주는 날이 더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좋아했고, 사랑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의 사랑법을 따라갈 순 없었나 봅니다.
소중했던 것들을 조금씩 잊기 시작했고,
현실의 벽 앞에 나 자신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날들이 늘어났습니다.
나는 내 힘듦과 고됨을 늘 그 친구에게 얘기했고,
그 친구는 또 그걸 묵묵히 들어주고 이해해 줬습니다.
그런 날들이 많아지며, 내가 지금 그 친구에게
”해서는 안될 짓들을 하고 있구나 “라고 느낄 때쯤
열아홉에 나로서, 가장 선택하기 힘든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찾아왔습니다.
늘 나를 먼저 생각해 주던 그 친구는 아직도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해 주지만,
그 생각이 나에겐 미안함으로 다가왔고,
너무 큰 사랑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 사랑을 올곧게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작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 친구가 나한테 사랑을 주는 만큼,
나는 이 사랑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힘든 날들을 보냈습니다.
2022년 12월 17일.
그 친구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너무 고마웠고, 사랑했다고.
아직 사랑하지만, 너에게 갚을 빚이 너무 많지만,
나는 네가 더욱 반짝이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늘 나를 반짝이게 비춰준 것처럼,
너도 너의 눈부심을
더욱 부각해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라고.
그 긴 3년의 시간 나를 비춰주고 따뜻하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너와 함께한 모든 날들이 기억에 남을 거라고.
3년간 너와 함께 한 날들은 항상 봄이었다고.
그렇게 나는 그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내가 다시 저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
하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이라는 연극 안에 그 친구와 나는
늘 주인공이었고, 훌륭한 조연이었으니까요.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해 봤던 적이 있으신가요?
그 질문에 나는 늘 “그렇습니다.“
하고 답할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