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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포터 Apr 10. 2021

계획의 80%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20%라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성공한 계획이다.

자고로 계획이란 목표치의 80%는 성공하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다 
20%라도 성공한다면 그것만큼 성공한 계획이란 없다.


 2개월 동안 프론트~백~서버까지, 하나의 기능을 만들어보는 학원에 다닐 때의 이야기다. 


 나를 포함한 8명의 학생이 한 반이 되어 수업을 받았다. (멘토님을 포함하여 한 반에 있던 인원은 총 9명이었다. 이때는 5명 집합 금지가 떨어지기 이전의 시기였다.) 하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하나둘 수업을 그만두면서 결과적으로는 멘토님을 포함한 5명만이 남게 되었다.


 하루에 3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그렇게 8주. 최종적으로 남은 사람들과 말 그대로 친해졌다고는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동지애와도 같은  감정이 생기기는 충분했다. 


 이 프로그램 중 가장 난관이었던 개인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같은 어려움을 느끼며 공감대가 생겼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적 동질감이 생겼다. (프로그래밍 수업을 결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것은 아니었으나, 배움과 별개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과 배운 지식을 결합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


 그렇게 프로그램 마지막 날, 자신 개인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 리뷰를 끝으로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다. 끝까지 버텨 남은 사람들끼리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같이 점심시간을 갖기로 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나이, 직업, 현재 거주지 정도였다) 다섯 명이서의 대화는 미래지향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주제가 바로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는 가볍게 또 누군가에게는 진지하게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참여한 사람들의 개성이 뚜렷했다. 직업만 보더라도 대학생, 취준생, 예비 창업가, 컨설턴트, 디자이너 등 결이 유사한 사람은 있어도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미래의 계획을 이야기하던 그 시간에도 같은 목표는 없었다. 누군가는 대학 교재를 데이터화해놓은 사업을 꿈꾸며 창업의 성공궤도를 그렸고, 누구는 현재 운영하는 교육 컨설턴트 사업의 확장을 기대했다. 내용은 모두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미래 인생은 성공한다는 결말로 끝이 났다. 그 보장은 결코 없는데도 말이다.


 순서가 돌아 내게 순서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을 왜 세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계획이 시작도 못한고 끝나버렸거든요. 어차피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이때 내 상황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진 않았다. 일본 취업을 포기하고 뛰어든 한국 취업 전선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인턴 자리를 구했다. 실제로 이때는 인턴과 코딩 수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평일 수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편의를 봐주어서 1시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회사에 출근하는 생활을 했다.) 그러니 그때의 내 상황은 굉장히 괜찮았다고 단정적으로라도 말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갑자기 시작한 인턴조차 그 계획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3~4년 정도의 미래를 그려보았었다. 일본에 어찌 되었든 기술직으로 첫 회사를 시작해서, 1년 이내에 그 나름의 성과를 쌓고 서비스 기획직으로 이직한다. 거기서 2~3년 정도 경력을 쌓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다. 개략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어떤 기술을 배우고, 어떤 경력을 쌓고, 어느 분야로 가고. 내가 세운 계획은 생각보다 세밀했고 상세했다. 이직처를 알아보며 회사 리스트를 정리해놓은 문서가 남아있을 정도다. 회사마다 필요로 하는 인재가 달랐기에 필요 능력을 정리한 파일도 있었다.)


 꽤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이었다. 일본 회사에 가기로 한 11월부터 반년 넘게 계속 세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계획에 털끝만큼도 미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계획의 시작은 “일본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그 시작이 언제까지나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의 인생이 계획대로 술술 풀렸던 것은 아니었다. 짧다면 짧은 인생 속, 그 나름의 고뇌도 있었고 그 나름의 갈등도 있었다. 그런데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억을 파헤쳐봐도 이렇게까지 무력함을 느낀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혹은 이미 미화되었거나 묻혀져 더 이상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리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나름 탄탄하게 세웠다고 자부했던 계획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이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으며 노력을 위해 발버둥도 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계획”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거북함을 느끼기도 했다.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내적 동지들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꺼냈다.


 “원래 계획은 80%가 이뤄지지 않게 되어 있어요. 마치 인생의 순리인 것 마냥. 그러니까 그중에 20%만 성공해도 계획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 20%를 이루려고 계획을 세우는 거죠.”


 신기하게도 이 말에 나를 제외한 4명의 사람이 크게 공감했다. (같이 식사를 한 5명 중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다. 회사에서 제대로 일한 적 없는 것도 내가 유일했다.) 멘토님은 건축을 전공했다가 우여곡절이 있어 개발자의 삶으로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느 분은 해외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하다가 개발로 분야를 틀고자 저번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여기서는 이렇게 대략적으로만 서술하겠지만 그 속에 담긴 개개인의 서사는 간단하게 말해서 굴곡이 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헙’했던 순간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보니 그들과 비교했을 때 내 삶의 이 굴곡은 그렇게까지 가파르지 않은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 문장을 쓴 것은 너무 약한 소리를 한 것 같다는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다. 누군가의 힘듦을 상대 비교하며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나이로 판단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으나, 그래도 나보다 사회생활 기간이 길었던 사람들이 하는 말에 무언가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무도 지금의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게 지내다보니, 계획과는 많이 틀어졌더라도 그 나름의 보람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는 웃으며 말들에 작게 리액션하는 것에 그쳤지만 가끔 그 말을 한 번 되새겨보곤 한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되새기는 중이다.)




 나는 20%만큼의 결과를 얻었을까. 급변한 계획 속 나는 과연 잘해나가고 있는 걸까.


 앞으로 변하고 위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그런 마음을 갖고 미래를 꿈꿔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절망 속에 빠져 보아야 주변에 있던 것의 소중함이 그제야 보이는 것일까. 절망으로 그만큼 눈이 낮아졌으니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들이 괜히 “희망”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잘 포장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뜻대로 되는 법 없지만 그렇다고 죽으라는 법도 없다지 않은가! 이 말이 생겨난 경위는 이러한 걸까 싶기도 하다.)


 이뤄지지 않으니까 계획이다, 공감이 가는 한편 그 말을 입 밖으로 굴려보니 어쩐지 쓸쓸함에 입안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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