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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포터 Apr 10. 2021

후회하고 싶지 않은데 오늘도 후회한다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년 10월 일본 회사에 내정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나는 한동안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여기서 내정 사퇴란, 회사에 합격하고 입사 전까지의 기간을 일본어로 ‘내정’이라 표현하며, 여러 이유로 ‘내정’을 포기하는 것을 ‘사퇴한다’라는 표현을 쓴다. 즉 입사를 앞두고 있던 사람이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전까지는 회사에 임시기는 해도 이름 하나 정도는 걸려있지만, 경제적인 활동은 전무한, 어떻게 보면 신기한 상태였었다. 나 스스로는 백수라 생각하기도 했으며 주변에서는 백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누구 하나 현 상황을 정의하지 못했던 생활이 약 1년 정도 지속하었다. 


 그러다 몇 개월간 나만의 고뇌를 거쳐 결국 가지 않기로 선언했다. 선언하는 것은 참 무서웠다. 나의 울타리를 제 발로 부수고 나오는 셈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일본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불확실 요소는 반드시 존재했고, 한국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였다.




 사실 한국 취업을 염두한 것은 9월부터였기에, 내정 사퇴를 선언하기 한 달 정도 전부터 나는 이미 취준을 겸하고 있었다. 10월부터는 완벽히 취준생이라는 신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결국 한국에 남기로 된 이상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나 나름대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한국어 자소서를 끄적였고 제출했고 떨어졌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서류 탈락 통보가 5곳에서 연달아 온 적도 있었다. (이때는 멘탈이 가루가 되어버려 저녁에 조용히 혼자 맥주 한 캔을 까야 했다.)




 나는 이력서와 자소서를 쓸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는데, 나는 무언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취업으로 인해 나는 졸업 날로부터 8개월 정도 공백기가 생겼다. 이 8개월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태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토익 점수가 적힌 자격증이나 프로그래머를 목표로 했으니 그에 맞는 산출물이나.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일본어 성적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것을, 왜 이것조차 따지 않았는가에 대한 좌절감도 있었다.


 처음 한국어 자소서를 쓸 때 일본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결코 성공 경험이라고 칠 수도 없으며 이 기간에 나는 무력함의 결정체였기에 스스로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소개서에서 나는 이 시기 동안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며 사람들(정확히는 면접관)을 설득시킬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8개월간 일본 취업을 해서, 코로나를 맞이해서, 입사일이 밀려서, 내정 사퇴를 해서....


무언가 변명을 늘어놓는 듯한 느낌에 거북했지만 나를 다독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것은 변명이 아니야. 나라는 인물에 대한 발자취야.’




 나의 이 선택이 옳았던 것인가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 이 부분을 인정하자고 생각하고 처음 넣었던 회사에 덜컥 면접까지 진행되었고 덜컥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지원해본 다음 승률을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터였는데, 나는 합격 통지를 받고 바로 취준을 멈추었다. 고작 한두 달 남짓한 기간에 취준에 지친 것도 있었지만, 면접을 진행하면서 회사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는 이 판단을 거스르지 않기로 지난 내가 결심했었다.


 이 판단을 거슬러 내가 얼마나 많은 후회를 거듭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회사 느낌이 좋았어도 항상 고뇌했던 이유는 회사가 보이는 이미지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규모, 직원 수, 회사의 인지도 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가지 않기로 판단했던 적이 수두룩했다. (그 끝은 항상 나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이었다.)


 지금 인턴으로 일을 하는 이 회사는 서류를 제출했을 때 나를 굉장히 좋아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회사는 서류 전형 -> 과제 전형 -> 면접 -> 합격 이런 순이었는데, 과제 전형을 전달받은 그 다음날, 면접을 볼 수 있냐는 연락이 올 정도였다. (그 때는 과제를 시작도 못한 상태였기에 이 상황을 전달했더니 추후에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화요일 과제를 전달받고 수요일 면접 볼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 목요일 면접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목요일 바로 합격 통지를 받고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다.


 이렇게 나를 좋게 봐주는 것에 사실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인재도 아니며, 이렇게 기대치가 높아서야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그 기대치를 맞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실망으로 작용하기에 더할까. 그래서 면접 당일 점심을 먹을 때, 기대치를 낮춰달라고 몇 번이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겸손을 떤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인턴 생활을 시작하고 어느덧 6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인턴 생활에는 후회가 없는가? 라 누가 묻는다면 정말 단언해서 말할 수 있다. 후회하고 있다. 


 후회는 여러 곳에서 파생되었다. 회사 자체도 그렇고, 직군 자체도 그렇고, 인간관계 자체도 그렇고.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주말인데도 회사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이 살짝 혼미하기도 한다. (물론 과장을 살짝 보탰다)


 일본 기업을 사퇴하기 전에도, 사퇴하던 당일에도, 사퇴한 후에도 묘한 후회가 감돌았다. 물론 각 시점에서 무엇에 후회했는지는 저마다 달랐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선택’이라는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가 결코 없을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다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하지 않은 후회보다 한 후회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이러나저러나 모든 것들을 괴로워했다. 내가 한 선택, 내가 행한 행동, 내가 꺼낸 말, 내가 고른 모든 것에 마냥 자유롭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괜찮더라도 5분 후의 나, 10분 후의 나, 일주일 후의 나, 한 달 후의 나, 1년 후의 내가 느끼는 것들이 달랐다. 그렇기에 주변의 시선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나만의 후회를 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또 어떤 후회가 나를 좀먹고 나를 성장시킬지. 미지의 그것은 두렵기도 하지만 묘한 설렘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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