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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Nov 24. 2023

[아직도 가야 할 길] 2/3

함께 책 읽기 ⑥ -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2부. 사랑

 훈육이란 인간의 정신적 발달을 위한 수단이다. ... 무엇이 이 훈육에 관심을 갖게 하며 또한 훈육할 원동력을 주는지 ... 나는 그 힘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나는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한다. 


 욕망이 반드시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지는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욕망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첫째,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특별히 성과 관련된 욕망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 우리는 오직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성적으로 자극되었을 때만 사랑에 빠진다. 둘째,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예외없이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바로 이러한 도피를 일시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 사랑에 빠지는 현상의 본질은 자아 경계의 일부를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자신의 자아와 다른 사람의 자아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 이러한 자아 경계의 붕괴에 따른 고독감의 중단은 우리 대부분이 무아지경으로 경험하는 것들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하나가 된다! 고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 쌍의 연인이 이 사랑에서 빠져나올 때 그제야 비로소 참사랑이 시작된다는 말은, 참사랑은 사랑의 느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의지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영적 발전을 지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랑에 빠질 때 ... 이제 더 이상 아무런 발전도 필요없다고 느끼고 전적으로 자신이 있는 곳에 만족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 짐작컨대, 그것은 짝을 구하고자 하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성적 본능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한다. 


 참사랑의 경험은 ... 자아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 밖에 있는 대상에 끌려야 하고 자신을 투자하고 완전히 헌신해야만 한다.


 성행위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 사랑하는 상대가 아닌 어떤 상대라도 오르가슴과 더불어 일어나는 자아 경계의 붕괴는 똑같다.


 자아 경계는 부드러워지기 전에 먼저 굳어져야 한다. 그리고 자아를 초월하기 전에 자아가 확립되어야 한다. 


 "...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그에게 기생충과 다름없습니다. 당신의 관계에는 선택의 자유도 없습니다. 그것을 사랑이기보다 오히려 필요의 문제입니다.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천입니다. 서로가 없어도 잘살 수 있지만 함께 살기로 선택할 때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나는 의존성이란, 상대방이 자신을 열심히 보살펴준다는 확신이 없으면 적절한 역할을 못하거나 완전함을 경험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 아무리 나이를 먹고 성숙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자신을 충족시켜주는 어머니상이나 아버지상을 찾고 또한 그런 사람을 갖고 싶어 한다.


 특별히 의존 욕구가 삶을 지배하고 좌우할 때, 그 사람은 의학적 용어로 '수동성 의존적 성격 장애'라고 칭하는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헤어져서 슬펐는데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되자 다시 금방 기뻐하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는 바로 수동적 의존성을 지닌 사람들의 특징이다. 의지할 사람이 있기만 하면 누가 됐든지 상관없어 보인다. 정체성을 줄 사람만 있으면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없는 것이다.


 '수동적'이라는 말은 '의존적'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것이 목적이면 그걸 성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삶의 첫 번째 목적이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것이라면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심의 대가는 구속이며 그러한 결혼은 결국 서로의 성장을 지연시키거나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 "건전한 결혼은 오직 강하고 독립적인 두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인 의존은 사랑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수동적 의존성이 있는 사람들이 겪는 내적 공허감은 유년기에 필요로 했던 애정 및 관심과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결과이다. 


 "...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면 끊임없이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 그것은 부모님의 사랑이 결핍된 데서 시작해서 영원히 사랑에 실패하게 만든다. 그리고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추구하게 하며 성장하기 보다는 어린 아이로의 퇴행을 부추긴다. 자신과 타인을 자유로운 해방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뜨리고 압박한다. 


 의존성의 특징은 영적 성장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부와 영향력이 확장된다고 해서 이러한 작업과 축적이 자신을 확대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 그런 사람에게 부와 권세는 영적 성장을 위한 수단보다는 오히려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유일한 참된 목적은 영적 성장이나 인간의 발전인 것이다.

 ... 아무리 영적 발전에 헌신적일지라도 휴식과 운동과 기분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성자들도 잠을 자야 하고 선지자들조차 놀아야 한다. ... 그러나 취미가 목적 그 자체가 될 때에는 자기 발전을 대신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골프장에서는 오로지 게임에서 공을 몇 개 더 쳐서 넘기는 것이 생의 목적이라는 듯이 골프를 즐기는 노인들을 볼 수 있다. 골프 실력을 발전시키려는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으로서 자신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사실상 진보하기를 멈추어버린 현실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중요한 것이나 애착을 느끼는 것과의 관계를 규정할 때 그 관계의 질적 차이는 무시하고 모두 '사랑'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한다면, 현명함과 우둔함, 선과 악, 귀한 것과 천한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엄밀하게 정의를 내리면, 우리는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물과 비교해서 생각할 때 실질적인 성숙이 가능한 존재는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애완동물과 인간과의 관계의 차이를 살펴보자. 첫째로 .. 우리는 애완동물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이해의 결핍 때문에 애완동물에게 우리 생각과 느낌을 투입시켜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감정적 친근함을 느낀다. 둘째,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될 때에 한해서만 애완동물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 우리는 애완동물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의존성을 기르고자 한다. 그들이 자라 집을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 애완동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로부터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의 많은 군인들이 영어로 대화할 수도 없는 독일, 이탈리아 또는 일본의 '전쟁 신부들'과 동화같은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 신부들이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이나 느낌, 소망, 목표를 아내에게 투입시켜 애완동물에게서 느끼는 것 같은 친밀감을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 중 가장 슬픈 경우는 정말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단지 아기일 때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양육이란 단순히 먹여주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영적인 성장을 북돋워주기란 어떠한 본능적 행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다. ...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분별 있게' 주고, 마찬가지로 분별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분별 있게 칭찬하고, 분별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분별없이 주기만 하는 파괴적인 양육의 이면에는 많은 동기가 숨어 있다. ... 그것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주는 자'는 '받는 자'의 정신적인 요구와는 상관없이 자기의 욕구에 따르고 이를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를 갖고 싶기 때문이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부모라면 그것은 그러한 부모가 되기 원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 변화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자기 희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확대인 셈이다. ... 실제적인 의미에서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은 똑같이 이기적이다. ... 그 구별은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가이다. 진정한 사랑의 경우, 그 목적은 항상 영적 성장이고, 사랑이 아닌 경우에는 그 목적이 항상 다른 것에 있다. 


 사랑이 느낌이라고 믿는 오류는 애착과 사랑을 혼동하기 때문에 생긴다. 


 나는 사랑을 정의하기를,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했다.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중요한 방법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막대한 시간을 듣는 데에 보내면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간을 낭비한다. 왜냐하면 대체로 잘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들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 만약 부모가 진심으로 아이의 말을 들으려면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아야 한다. 


 왜 우리는 여섯 살짜리의 지루한 이야기에 온통 정신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이 모든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첫째로, 그렇게 노력하는 마음은 당신이 아이를 존중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가장 잘 증명할 수 있다. ... 아이는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낄 것이다. ... 둘째로 아이들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소중한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셋째로는 ... 그 재잘거림 속에서 아이가 참으로 가치있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 넷째로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다. 


 대개의 부부는 상대방의 얘기를 결코 진심으로 듣지 않는다. 그래서 부부가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치료사가 수행할 주요 과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돌보는 모든 형태의 공통점은 이야기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말이다. 관심의 질은 함께 있는 동안 얼마나 집중했는가에 비례한다. 


 사랑은 노력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음의 본질은 게으름이다. 


 용기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 즉 두려움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 미지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장과 사랑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첫째로, ... 바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이유 때문에, 내 욕구에 맞지 않는 학교와 사회적 환경에 비참히 남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 둘째로, 사랑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크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변화를 위해 모험을 감행할 용기의 초석이 된다. ... 마지막으로, 온전한 자아와 심리적 독립과 고유한 개성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도약할 때만이 사람은 자유로이 정신적 성숙을 향해 더 숭고한 길을 따라 전진하여 가장 높은 차원에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진정한 사랑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혼식 후에 갖는 책임의식이다. 그리고 아내가 임신한 후 생겨난 책임감은 우리를 생물학적 부모에서 심리학적인 부모로 전환시켰다. 


 그들의 건전한 요구에 응답해주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변화에 따른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이고자 용기를 발휘해야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부모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아이들과 함께 변하고 자라야 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십대가 되기까지는 대개의 부모가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법을 잘 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성숙하고 달라지는 아이들에 대해 부모가 태도를 바꾸고 수정할 수 없어서 전적으로 무능해진다. ... 변화하고 성장하는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고, 성장하는 아이들에게서 배울 의사가 없는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노쇠의 길을 택한 것이다. ...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의미 있는 노년을 준비하는 데 가장 좋은 기회다. 슬프게도 대부분은 이러한 기회를 잡지 않는다. 


 사랑에 있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모험은, 겸손한 자세로 파워를 발휘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하는 행동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쉽게 비판하거나 충고하지 않는다. ...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적어도 현재 거론되는 문제에 관한한,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더 우위를 차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당위성 뒤에 숨겨진 동기가 어떤 것인지 엄중하게 점검해야 한다. 


 본능적, 즉흥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비판하는 경우와 양심적으로 자신을 의심하고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옳다는 믿음 아래 비판하는 경우다. 첫째는 ... 대체로 성공적이지 않을뿐더러 성장보다는 적개심과 의도치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는 ... 진정으로 자아를 확장해야 하는데 성공 확률이 더 높고 내 경험상 이 방법은 절대로 파괴적이지 않다.


 부모라면 아이를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안다고 확신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과 가치관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확신이 서면, 그 다음에는 아이의 성격과 능력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칭찬을 한다든지, 관심을 높인다든지, 이야기를 한다든지 또는 다른 형태의 영향력보다는 직접 충고하는 것이 아이가 더 호의적으로 반응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열이란 아주 격한 느낌이다. 느낌이 통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절제된 느낌보다 훨씬 더 깊다는 것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 감정을 잘 조절하고 평정을 유지한다고 해서 그가 정열적이지 않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인간의 감정은 에너지의 원천이다. 감정은 일상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노동력, 다시 말해 노예의 노동력을 제공한다. ... 노예 소유자는 흔히 다음의 두 가지 실수를 저지르는데 ... 한 유형은 노예를 훈련시키지도 않고 아무 규율도 정해주지 않는다. ... 정반대 리더십도 똑같이 자기 파괴적이다. ... 노예(감정)가 자기 지배 밖으로 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노예들이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매를 들어 항복하게 하고 어떤 문제의 징조가 보이면 심하게 벌을 준다. 


 사랑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려는 시도는 에너지 낭비이며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만약 가족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이룬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개 사람들이 일평생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는 행동이 자신의 성장도 촉진시킨다 할지라도, 진정한 사랑의 주요 특징은 언제나 자신과 타인의 구별이 유지되고 보존된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적인 사람들은 타인을 타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이입 능력이 모자란다.


 흔히 그러하듯이 외로움에 겁먹어 서로 하나가 되는 결혼을 추구한 사람들은 훌륭한 결혼 생활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의 영적 성장이며 정상에 오르는 이 고독한 여행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결혼이나 사회의 지지 없이는 이 중요한 여행을 달성할 수 없다. 결혼과 사회는 그러한 개인의 여행을 지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때로 환자들이 언제 치료가 종결될 것인지를 물으면, 나는 "당신 자신이 좋은 치료사가 될 수 있을 때"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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