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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Nov 24. 2023

[아직도 가야 할 길] 3/3

함께 책 읽기 ⑥ -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3부. 성장과 종교

 우리는 종교란 반드시 신을 섬겨야 하며 어떤 의식이나 예배 집단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환자의 세계관은 항상 문제의 근본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치료사를 근복적으로 이를 알아야 하고 치료를 위해선 필수적으로 그들의 세계관부터 교정해야 한다.


 인식을 넓히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의 주된 주제다. ... 부모라는 종교를 과학으로 대치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부모의 종교에 반항하고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그 세계관이 우리가 능력껏 성취할 수 있는 세계관보다 더 좁기 때문이다. 


 카톨릭 학교의 그 어떤 수녀와 신부도 종교의 교리에 의문을 갖거나 스스로 생각하도록 가르쳐주지 않았다. ... 교회는 대개의 경우 주어진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교회는 기적의 존재를 믿기만 할 뿐 그 기적을 아주 가까이 관찰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기적은 과학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 종교계의 태도이다. 그들은 "단순히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믿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초자연적인 현상의 전체 영역은 희미하고 모호하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현상에 회의주의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터널 속에서 보는 식의 과학적 태도가 현실을 왜곡시켜선 안 되는 것처럼, 회의를 위한 우리의 비판 능력과 역량도 영적 영역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눈멀어서는 안 된다.


4부. 은총

 이런 감정은 왜 무의식 속에서 처음 생겨났을까? 이것들은 왜 억압되었을까? 대답은 의식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때문이다. ... 의식이 그것을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또 그에 따르는 고통의 감수를 외면함으로써 그것들을 저 너머의 어두운 곳으로 밀어넣으려는 바로 그것이다. 


 실언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모든 억압된 감정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의 믿음보다 좀 낫거나 못하다. 그러나 무의식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영적인 발달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주된 과제는 자기가 의식하는 자기 모습을 실제의 그것과 일치시켜가는 일이다.


 나는 무의식이 자신뿐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의식보다 훨씬 훌륭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무의식은 모든 면에서 의식보다 지혜롭다. 


 바로 이 '인정한다(recognize)'라는 말은 '다시 안다'는 뜻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때로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 내부에 이미 모든 지식과 지혜가 갖춰져 있는데 그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최근 과학 실험에서 밝혀진 바로는 유전자는 지식을 유전시킬 수 있다고 한다.


 영적 성장 과정은 힘들고 어렵다는 걸 거듭 강조해왔다. 영적 성장은 쉬운 길을 가고 싶은, 낡은 지도나 관행에 집착하려는, 변화를 싫어하는 본능 등을 극복하고, 습성을 유지하려는 자연의 저항을 이겨내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느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때야말로 "자, 일을 끝냈어. 목적을 이룬 거야."라고 말하며 쉴 수는 절대로 없다. 우리는 스스로 더욱 지혜롭고 더욱 현명해지도록 밀고 끌어올려야 한다. 이 믿음을 따르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 향상과 영적 성장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기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죄의 본질은 바로 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있다. ... 마음속에서 선과 악 사이의 논쟁을 붙여보려고 하지 않는 - 또는 힘을 다하여 싸우지 않는 - 그 태도가 바로 죄를 짓는 원인이다. 


 모든 두려움이 다 게으름은 아니지만 두려움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게으름이 원인이다.


 가장 두드러진 탈락 현상은 결혼 생활에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 그들은 자신의 고충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각오하기 보다는 현재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안주하는 쪽을 선호한다.


 자기 속의 게으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게으름을 줄여 나가는 첫걸음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보다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을 잘 아는 사람이다.


 악의 본질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간단히 언급하려 한다.

 첫째, 나는 악이 실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두 번째 결론은 악은 게으름의 극한이라는 것이다. ...

 그러나 진짜 악한은 자기 자신의 확장을 회피하는 것이 수동적 차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세 번째 결론은 인간의 진화에 있어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악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엔트로피의 힘이 존재하는 한편에 사랑이라는 진화를 부추기는 힘이 있어, 이 두 상반된 힘에 의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적 균형을 잘 유지한다. 그러나 한쪽 극단에는 순수한 사랑만 드러나는 사람이 있고 반대편 극단에는 순수한 엔트로피나 악만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이 둘은 서로 갈등하는 힘이라서 양 극단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선이 악을 미워하듯 악이 선을 미워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것(권력)은 대단히 오해의 소지가 많은 주제다. 오해할 만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권력 - 정치적인 것과 영적인 것 - 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영적인 힘)은 인식의 최대치에서 결정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의식이다. 


 영적인 힘을 경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쁜 일이다. 어떤 일에 정통했을 때 오는 기쁨이 있다. 실제로 전문가가 되어 자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잘 아는 것보다 큰 만족은 없다. 


 영적인 힘이란 단순히 앎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더 위대한 앎의 경지로 나아가면서도 여전히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권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고독이다. ... 자기 위에 책임을 전가할 사람이나 비난할 사람도,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줄 사람도 없다. 자신의 고뇌와 책임을 함께 나눌 만한 수준의 사람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영적인 힘의 심오함에서 비롯되는 고독감은 정치권력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의 증상이 진짜 증세가 아니고 누구나 '이런 정도는 이따금씩' 겪게 마련이라고 여김으로써 증상을 무시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심리 치료 과정 동안 자기 상태와 회복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처음에는 정신 요법에 아주 열광하던 사람이라 해도 금방 상담을 그만둬버린다. 다시는 남을 비난하지 않는 건강한 삶보다는 신들을 비난해가며 병든 채로 살기를 선택한다. 


 그리스도가 "부름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자는 적다"고 말했을 때 ... 사람들은 대다수가 병들어 있으나 좀 더 심하게 병든 사람이 있으며, 그런 사람일수록 치유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정신 질환의 심각 정도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애정 결핍의 심각함과 시기 등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부분은 어린이나 청소년처럼 어른다움에 따르는 자유와 권력이 우리 것임을 알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과 자기 훈육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는 어른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싶어 한다.


 종교 의례는 배움을 위한 보조수단이지 배움 자체는 아니다. 영성체를 하고, 아침 식사전 성모송을 다섯 번 외고, 동쪽이나 서쪽을 향해 경배를 하고, 일요일 아침에 교회엘 가는 일들이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는 못한다. 어떤 가르침으로도, 영적인 순례자가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할 필요성, 즉 노력하고 고뇌하면서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고유한 환경을 극복하며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후기

 치료사의 정치적 성향과 나이, 성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진정으로 사랑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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