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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Apr 30. 2021

지하철을 탈 수 없어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3


항상 바쁘줄달음질 치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내 증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주 조금씩 점진적으로 더 확장되었다.


누군가 나의 뇌를 움켜쥔 듯이 조여들며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은 더 자주 나를 찾아왔고, 감정조절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고 나면 더 안정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업무가 많아 이른 오전부터 쩔쩔매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자신이 지시한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닦달하는 K차장이 내 주변을 계속 맴돌며 나의 모니터를 훔쳐보았다.


제발 내 주위 좀 그만 맴돌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오전에는 약 11개의 협업 부사의 담당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업무를 먼저 완성해야만 했고, 오후에는 K차장이 지시한 업무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숨가프게 통화하고 조율하며 일하는 나를 맴돌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은과장!! 내가 지시한 일은 어디까지 됐어? 다 했어?"

"네, 차장님.. 제가 지금 타 부서 협업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있어서요, 이걸 마치고 할 예정입니다"

"아니이이.. 내가 말한 업무가 우선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아?

그건 우리 팀의 팀~장님께서 지시하신 일이라고.. 팀장님이 와서 물어보시면... 내가 뭐라고 해야할까아?"


그 순간 내 안에서 온 힘을 다해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장님... 제가 지금... 1분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잖아요!!!!! 제발 좀 기다리세요!!!!!!!!!!!!!!!"


내 주위 맴돌지 말고 꺼지라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를 크게 버럭 질렀다.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주접스러운 K차장의 당황한 얼굴이 내 눈에 가득 찼다.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쏟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헉헉 거리는 내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


K차장은 내 약점을 잡았다는 듯이 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회의실로 불러서 말했다.


"물론 네가 업무가 많았다는 건 이해해~ 그런데 그런 태도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옳지 못해~~

그런 행동은 하수들이나 하는 행동이지~~"


그는 내가 하수라는 것이 온천하에 밝혀져 아주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신난 그의 얼굴을 보자 환멸이 느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멍하니 아이에게 줄 저녁 반찬을 생각했다.

아직 아이에게 줄만한 것이 남아 있는지 반찬가게에 전화를 해서 픽업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 이번 역은 00역, 00역입니다. 출입문은 왼쪽입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순간, 나를 향해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나를 감쌌다.


심장이 점점 빨리 뛰고 불안해졌다.

당장에라도 쓰러져 죽을 것만 같은 괴로움에 온몸이 조여들었고 숨이 막혔다.


몇 년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처럼 탔던 지하철인데 너무나 불안하고 두려웠다.

아무나 붙잡고  지금 너무 불안하다고, 무섭다고 애원하고 싶었다.


난 애써 이성적으로 나를 다독였다.


'몇 정거정만 가면.. 집에 도착할 수 있어.. 날마다 타던 지하철이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조금만 참으면 집에 도착해....!!'


겉으로는 침착한 모습을 애써 유지하고 있었지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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