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만 보면 통증이 시작된다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2
나에겐 그 이후로도 비주기적으로 심장이 빨리 뛰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상이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치 드라마에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
쿠궁.. 하고 낮은 음악이 깔리는 것 처럼 주위의 분위기가 뭔가 뒤틀리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표현하기 힘들 만큼 굉장히 불쾌했고 뇌가 마치 조여드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심장이 빨리 뛰고 답답하며, 동시에 머리가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증상은 밀폐된 공간이나 복잡한 공간에 있을 때 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잦았는데,
예를 들어 사람이 많은 점심시간의 지하식당 같은 곳에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그런 느낌을 받곤 했다.
주위 사람에게 내 증상을 호소할 순 없는 노릇이니 밥맛이 뚝 떨어지고 그 장소를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또한 평소에도 감정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부들부들 떨며 분노한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나 자신이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는 했지만 전혀 조절이 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뭔가 이상한 상태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24시간 내내 그런 것은 아니고 또 잠시 시간이 지나면 멀쩡해지곤 했기 때문에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저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기만을 바랬다.
***
당시의 나는 장애가 있는 해준이의 육아를 오랜 시간 도와주신 시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했다.
그분들은 좋은 분들이셨지만, 오랜 시간 동안 아픈 아이를 돌보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고 그 힘듬은 모두 나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마음에 무수한 상처를 입고도 아이가 인질인 것 마냥 그저 그 화살들을 다 맞고 있을 수밖에 없던 나는, 결국 여러 사건을 계기로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고 아이를 돌봐줄 아주머니를 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특별하긴 참 특별한 지라, 2주일 정도를 채 버티지 못하고 아주머니들이 그만두었다.
그러면 나는 다시 구인공고를 내고 이리저리 전화하며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아주머니가 방문하면 칼퇴를 하고 뛰어가 어떻게 아이를 돌봐야 하는지 직접 시범을 보이며 인수인계했다.
또 낯선 사람과 둘만 있으면 불안해할 아이를 위해서 일찍 퇴근해서 같이 있어주며 적응을 도우려 애썼지만, 아이가 한번 할퀴거나 바지에 대변을 누면 그들은 모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5명 연속으로 그만두면서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들를 시간 조차 없었다.
또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회사에서 직속 상사였던 K차장은 전사에서 유명한 진상 중에 개진상이었는데, 그는 내 이름을 하루에 50번은 더 부르며 일을 재촉하고 추궁하고 징징대며 나를 괴롭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있는 게 용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K차장에게 인사를 하면 그 사람이 있는 쪽 머리부터 두통이 시작되었다.
그가 다른 부서와 통화하며 징징대는 목소리를 듣기가 너무 괴로워 양귀를 틀어막고 화장실로 피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어떠한 신체적인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면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통이 어마어마했다.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가나 파스를 붙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감정은 날이 갈수록 격앙되는데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느 날은 급히 퇴근해 아이에게 저녁을 먹였는데, 아이가 피곤했는지 일찍 잠들었다.
집이 고요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언제부턴가 어깨가 아파서 옷을 갈아입을 때 힘이 들었는데, 아주머니가 없어 아이를 돌보느라 한 달째 병원에 가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두 방울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주룩주룩 계속 흘러내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대체 왜지?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워킹맘은 다 이 정도 고생은 할 텐데.. 대체 왜 이러지?'
난 그때까지도 단 한 번도 나 자신에게, 정말 고생하고 있다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닥친 일을 해내고, 모두 다 이렇게 살아간다고 몰아붙일 뿐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할 것이 많은데 자꾸 아픈 저질 몸뚱이에 짜증이 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