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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Apr 30. 2021

휴직, 그리고 진단

내 인생 37살에 찾아온 불안장애 극복기 - 4


휴직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양쪽 어깨의 통증은 날로 심해져 단추가 있는 셔츠가 아닌 옷은 혼자서 입을 수 없었다.


난 회사에서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금세 맨바닥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고,

내 안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에너지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고갈되어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휴직이 안되면 퇴사할 마음으로 사사 휴직을 신청했다.


사사 휴직은 '개인 사정에 의한 휴직'으로 육아휴직이나 병가휴직 같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승인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난 아이가 어리지 않아 육아휴직에 해당되지 않았고, 몸이 너무나 아팠지만 뚜렷한 병명도 없었고 어깨의 통증 정도로 병가휴직이 가능할 리 없었다.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하면 뭔가 병명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진료과정을 거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릴 만한 힘이 나에겐 없었다.


휴직 신청과 관련해서 K차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건강이 악화되어 개인 사정으로 휴직을 신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랬구나 은과장이 그렇게 몸이 아픈지 몰랐네..

혹시.. 혹시라도 내가 은과장에게 잘못한 게 있으면 요..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다 은과장 잘되라고 조언한 거야.. 알지..?"


그는 내 눈치를 보며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내가 휴직하면서 인사팀에 자신을 고발이라도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인사팀에서 경고를 2번 받았고 감사팀에서 예의 주시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의 표정이 역겨웠지만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이 모습이 내가 보는 그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다행히도 사사 휴직은 승인되었다.

K차장이 열을 올리며 인사팀에 요청한 덕분이었다.


그는 나의 건강악화에 자신이 아주 크게 기여한 것을 스스로도 알았던지, 휴직 승인이 신속하게 되도록 최선을 다 해주었다.




휴직이 시작되었다.


어깨 통증으로 정형외과 진료를 보았다.

정형외과에서는 MRI 검사 후 어깨 상태를 이리저리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학병원 진료를 권유했다.


공황을 동반한 이유 없는 불안증세도 호전되지 않고 진행 중이었다.

혼자서는 병원에 갈 수 없을 만큼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일어나서 신발을 신고, 병원에 가서 차례를 기다릴 생각만으로도 당장 죽을 것만 같았다.

계속 눈물이 났다.


난 출근하는 남편에게 안아달라고 한 다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 말해줘.. 내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말해줘..."

 

잠시 당황하던 그는 나를 꼭 껴안고 여러 번 그 말을 반복했다.

"...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아무것도.."



나의 심각한 상태를 본 남편은 휴가를 내고 나를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려갔다.


의사와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불안에 떠는 나의 긴 이야기를 신중히 들은 그는 나에게 '불안장애'로 진단 내렸다.

'불안장애'는 공황장애보다 더 넓은 범위의 질병으로 공황 증상도 동반한다고 했다.


약이 처방되었고, 의사는 나에게 약을 절대 임의로 중단하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불안장애'로 진단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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