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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01. 2024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나니, 얼마전 읽었던 [데미안]에서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이제 제법 어른이 되어 '나(자아)'를 찾고자 하는 끝임없는 탐험의 종착점을 보여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헤르만 헤세는 선교사 가정의 영향으로 인도에서 지내게 되었고, 그 곳에서 동양철학에 빠진 깊은 그의 관심은 그의 다른 작품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작가 자신도 '깨달음'이란 것을 문학으로 남겨 놓겠다는 그의 바램을 이 소설 [싯다르타]로 결정지은 건 아닌가 싶다.  


소설내의 이야기 전개는 주인공인 바라문의 계급(참고: 인도는 브라만(Brahman), 크샤트리아(Kshatriya), 바이샤(Vaisya) 및 천민 계급인 수드라(Shudra)로 크게 나뉜 카스트제도가 있음)인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문의 길로 접어들고, 붓다를 찾아가서 말씀을 듣고, 자신 스스로의 '깨달음'을 맛보고, 인간의 세계에 적셔지고, 나무가 썩어가듯 그렇게 퇴색되어 간다. 그러나, 다시 '강'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리고 뱃사공 '바주데바'를 통해 진정한 '깨달음'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는 세존 고타마(붓다를 가리킴)가 지었던 미소와 같은 똑같은 모습으로 있는 '싯다르타'의 모습을 남겨주며 책의 이야기는 마친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그 과정에서, 흔히 알고있는 '명상'의 모습, '붓다'의 가르침, '세상'을 보는 동양철학적인 시각, 또한 구도자의 모습들을 접하면서, '참 좋은 표현이야', '맞아, 그랬었지', '그래, 내가 봤던 다른 책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 등의 감탄을 내어가며, 동양철학사상에 대해 고찰하는 헤르만 헤세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강물이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강에는 현재만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두는 것이고, 찾는다는 것은 자유의 상태, 열려있는 상태이며, 아무 목표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돌아 온다', '붓다의 가르침은 번뇌로부터의 해방인 것이지, 이것이 맞고 저것이 틀리다는 이치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전달될 수 있으나, 지혜는 전달될 수 없다', '그의 위대성은 행위나 삶이지 말씀이 아니다', '주인공 싯다르타의 돌맹이를 보는 시각의 변화' 등은 작가의 '삶'이나 '자아'에 대한 작가의 깊은 성찰과 동양철학사상을 갖고 있는 헤르만 헤세를 보여준다. 나 또한 그에 동의하며, 성인으로서의 '붓다'가 존경스럽고, 살아있는 동안 삶을 즐기고 싶을 따름이다.  


끝으로, 이전에 읽었던 '기쁨의 천가지 이름',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혹은 '이순간의 나' 등과 같은 서양작가들의 동양철학사상을 삶에 적용하여 살고 있는 에세이들이 바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깨달음'과 일맥상통함을 보기도 하였다. 그 일맥상통함은 아마도 '붓다'가 세상에 알려준 그 이야기에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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