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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by 하늘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긴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 순으로 혹은 주인공을 따라 전개되는 스토리가 끊김없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접하듯이 읽혀 간다. 비틀즈의 'Norwegian Wood'를 들으면서 가사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말이다. 오며 가며 운전하는 동안, 모처럼 비틀즈의 음악도 꽤 들었더랬다. 책에서 나온 재즈곡의 트럼펫 곡조를 틀어가며 잠시 책 속의 분위기에 빠져 보기도 한다. 바흐, 모짜르트, 클래식 음악의 언급이 나오면,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순간의 독서 음악이 되기도 한다. 역시, 책을 읽음으로써, 책 밖의 세상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꼈다고나 할까? 그런 독서의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얼마 전, 다른 일본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던 터였다. <설국>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애정, 관계, 희생 등이 결국엔 모두 '헛수고'로 종착되어질 수 있는 삶의 허무에 대해 생각해 보았더랬다. 그런 '허무'라는 분위기가 깔려 있는 듯,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자주 접한다. 죽음이 삶의 종결이라기 보다, 삶 속의 한 요소임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을까? 아무튼, 당시 17살 주인공 와타나베의 친구 기즈키의 자살로부터 스토리의 흐름은 시작된다. 곧, 죽음이라는 사건을 접하는 20대 청년들의 내적 혼란, 그들이 갖고 있는 육체적 욕망, 한편으론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그들의 몸부림을 볼 수 있다 하겠다. 반면, 사랑의 기억이 곧 육체적 접촉의 기억으로만으로 결부되는 경향이 있어, 자칫 삼류 연애소설의 향기가 풍기는 것은 좀 아쉽기도 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레이코 여사가 마치 죽은 나오코로 이입되어, 서로 갖지 못했던 정사(情事)를 이루는 장면을 남기는 것은 마치 애정영화의 흔한 로맨틱 장면을 연출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1969년의 일본의 도쿄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20대 청년들의 연인관계가 이렇게나 쉽게, 개방적인 육체적 욕망들을 표출할 수 있었나? 그 시대 일본을 살아보지 않은 이상 알 턱은 없지만, 이 작품을 일본이 아닌, 유럽에서 기록한 것임을 감안하면 서양의 성(性) 개방문화에서는 쉽게 이해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을 아래에 간략히 소개하고, 그들을 살펴보면 어느정도 소설의 내용이 짐작될 것이라 생각한다.


와타나베: 소설의 주인공, 17살~20살까지의 학창시절이 담겨있다. 친구 기즈키의 자살 후에, 그의 여자친구인 나오코와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대학교에서 미도리라는 여성을 알게되고 사랑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마음 속의 나오코와 현실의 미도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기즈키: 17살 와타나베의 유일하고 절친한 친구, 어릴 적부터 사귀어 왔던 나오코와의 연인관계, 그러나 어느 순간 일체의 암시도 없이 자살을 선택한다.
나오코: 기즈키를 자살로 잃고, 와타나베에게 위로를 얻는 관계에서 육체적 관계를 생애 처음 갖는다. 그녀의 큰 상실감으로 결국 정신요양원에 입원을 한다. 와타나베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둘의 사랑을 피워 가 보지만, 사랑의 결실(책에서는 육체적 관계를 주로 의미함)을 이루지 못하게 됨에 혼란을 겪는다. 결국, 그녀도 기즈키와 같은 자살을 선택한다.
레이코 여사: 정신요양원에서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며, 나오코의 단짝이자 모든 것들을 서로 공유하며, 도와주고 있다. 한때는 피아니스트였고, 이 작품에서는 그녀를 통해 작가가 소개하고자 하는 음악을 연주하도록 설정하였다.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관계를 모두 알고, 마지막엔 와타나베와의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미도리: 정신요양원에 있는 나오코에 반해, 미도리는 와타나베의 곁에 언제든 만나질 수 있고, 접촉될 수 있는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미도리의 관계에서 내적 갈등을 하지만, 나오코가 죽고 레이코 여사와 육체적 관계를 가진 후, 미도리에게 전화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마치게 한다.
나가사와: 와타나베와 같은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선배. 그는 여성들을 낚고 하룻밤 정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일상을 살아간다. 세상적으로도 출세하고,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여자친구 하쓰미가 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일반적인 연인관계를 이어 갈 생각은 없다.
하쓰미: 나가사와의 여자친구. 결국엔 나가사와와 헤어지고, 결혼 후, 자살을 택하여 생을 마감한다.




연인을 잃어서의 슬픔, 그 상실로 인한 정신적 충격... 그런 와중에 새로운 사랑을 이룰 수 없는 끊임없는 내적혼란... 그녀 나오코의 옆에 있던 주인공 와타나베...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사랑의 감정이 또 싹트고... 나오코와 미도리사이의 갈등이 전해진다. 이런 젊은이들의 허한 내면, 그리고 타오르는 육체적 욕망,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려 하는 내적 몸부림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끝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들을 남기며 짧은 감상평을 마치도록 한다.


하지만 이젠 안다. 결국에는 -하고 나는 생각한다.-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엔 없다는 것을.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제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망각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몸 속의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메워 줄 아무것도 없는 채, 그것은 순수한 공동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때문에 몸은 부자연스럽게 가벼웠고, 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반딧불이 사라져 버린 뒤에도 그 빛의 흔적은 내 안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었다. 눈을 감은 두터운 어둠 속을, 그 가녀린 엷은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나 방황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살아 있는지 죽은 건지조차 모를 정도였어요. 남은 의식이라고는 아픔과 괴로움뿐이지 뭐예요.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면 안돼요

무슨 소리를 하건 세상 사람들이란, 자기들이 믿고 싶은 말밖엔 믿지 않는 법이에요.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실마리는 어딘가에 있게 마련이죠. 주위가 어두우면 잠시 가만히 있으면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듯이 말이에요

내가 나오코에 대해 느끼는 것은 무섭게 조용하고 부드럽고 맑은 애정이지만, 미도리에 대해선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서 걸어가고, 호흡을 하고, 고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에요. 자로 깊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서 은행 예금처럼 빡빡하게 살아 나갈 순 없어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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