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in Train!
일찍부터 어둑해졌던 저녁녘, 그리고 계속 이어진 열차안의 피곤이 겹쳤나보다. 일찍이 잠을 청하고, 뒤척거림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눈을 떠 보니 자정이 지난다. 몸은 찌뿌둥하지만, 뜨여진 눈의 피로는 가신 걸 보니, 꽤나 수면은 취했나 보다. 침대 메트리스의 달콤한 수면은 아니지만도... 여기는 어디인가? 밖에는 제법 쌓인 눈이 가로등의 빛을 반사해 내 시야에 전해주고 있다. 건물의 문 앞마다 백열등이 달려 있다. 더러 가로등도 주변을 밝히고, 사람이 다니는 곳임을 확인시켜주는 주유소나 Mall에도 빛의 광채가 어둠을 뚫는다. 암흑 속을 뚫고 저 멀리의 가냘픈 전등불이 끝없는 평지 어딘가의 기차 선로위에 있음을 알려준다. Map을 열어 확인하니, 미네소타주의 어느 지역을 지난다. 주변의 산봉우리는 없음직한 드넓은 평원을 지나기도 한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00:25분의 시간을 넘긴다.
흔들리는 객차안, 띄어진 눈이 시계바늘을 향하니 5:30am, 잠깐 망설이다 blanket을 걷는다. 세면도구를 챙기고 수건은 목에 걸고 성큼 아침을 맞는다. 크리스마스 아침을... 어느덧 주위는 빈 좌석으로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그나마 남은 어떤 이는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새우잠을 자던지, 자켓을 얼굴 위로 가린 차렷자세의 마네킹같은 이도 있다. 더러 잠을 포기하고 쾡한 모습으로 영화같은 뭔가를 틀어놓은 이도 있다. 담요없이 누워있는 모습들은 마냥 좀비같다. 양치질과 세수, 그리고 내친김에 머리까지 감는다. 조그만 세면대를 나름 활용하면서 말이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은 나로서는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게다가 따뜻한 물도 나온다. 객실에서 유일하게 샴푸와 화장품 향기를 풍겨내며 아침을 챙겨 Lounge 객실 한 켠에 앉는다. Laptop을 열고 타이핑을 치던 중, 지나가는 낯선 이와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눈다.
"Merry Christmas! Want some cookie?"
굳어있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 친구는 쿠키를 하나 집어들곤 인사를 건넨다. "Oh! Merry Christmas!"
정차한 기차역의 바로 눈 앞에 있는 표지판, "Devils Lake, ND" 그러면, North Dakota! 표지판이 있으니, 그나마 적어보며 생색이나 낼 수 있지, 내게는 스치며 지나가는 어느 지역일 뿐이다. 가끔 잠에서 깨어나 퀭한 얼굴들의 낯선 이들이 아침 커피라도 마실 양으로 내 옆을 지나친다. 점차 그 횟수가 늘어가는가 싶더니, 빨간색 체크무늬 잠옷을 입은 어떤 커플은 내 앞에 앉아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크림이 잔뜩 얹어져 있는 아침식사를 즐긴다. 사람들의 사는 소리가 가득해 지는 이 곳, 객실에서 동녘 태양이 떠오기를 기다린다.
날이 밝은 지 꽤 지났다. 어두컴컴한 객실에 앉아서 흐물거리는 정신줄을 잡고 있느니, 환한 observation 객실에서 미국 북부의 평원을 가슴속에 담기로 한다. 이미 눈이 왔던지라, 세상은 하얀 설원이다. <설국>에서 나온 풍경이 이런 풍경이었겠지? 마을을 관통하는 실내천은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다. 썰매놀이와 스케이트를 타던 나의 어린 모습이 빙판을 지친다. 평원의 연속이 나의 좌우편을 지나치고 있는 지, 몇 시간을 훌쩍 넘긴다. 산의 모습이 그리울 정도니 말이다. Map을 열어보니, North Dakota의 반을 관통하고 있다. 어느새 가족 단위로 또는 연인 단위로 주위의 빈 테이블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카드게임이든, 음식을 나누든, 사진을 찍든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의 풍경이 나의 시선을 곧장 창 밖으로 인도한다. 설원에 깔려있는 안개를 뚫고 가는 건가? 흐릿한 연기같은 것을 뚫고 가는 형국이다. 나무의 가지에는 눈꽃이 완연한 그런 하얀 왕국의 연속이다. 좁은 비포장도로, 전봇대 또는 폐허가 된 건물이 뜸뜸하게 보임으로써, 이미 인간이 손길이 지나쳐 갔음을 기억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취에 아랑곳 않는 자연의 연속성은 앞으로 몇 백년이든 몇 천년이든 이어갈 것 아니겠는가. 설원을 덮고 있는 하얀 공기와 하늘을 가슴 속에 묻으며, 창조된 세계에 감탄한다. 그것이 신에 의해서든,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든 간에...
내게 책 읽는 삶이 다가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여행을 꿈 꿔 보았을까? 아니, 꿈은 꿨어도 실행은 못했을 수도 있겠다. '하고 싶다'면 '하라'를 보여준 <그리스인 조르바>가 나의 중년인생을 이끌어가고 있는 변화인가 싶다. 주위에 있는 몇몇 혼자 여행객도 제각각 손에는 책을 쥐고 있다. 내게도 지금 <스토너>의 이야기가 나와 함께 마음 속 대화로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정오가 넘은 지금까지 이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있다. 흐린 하늘이 까만 색깔을 뿜을 때까지 나의 자취를 각인시켜 놓으리라. 아니,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니, 창 밖 풍경이 나를 잡아둔다는 표현이 맞겠다. 황토빛 모래 산들이 나올라치면, 여러 층으로 나뉜 지층이 나를 움직여 사진을 찍게 하고, 인류에게 기록되기 전부터의 세상의 신비로움을 갖고 있는 역사를 가늠해 보게 한다. 때로는 광야의 벌판을 홀로 걷고 있는 늑대에게 손짓을 하고, 6마리 사슴 가족의 나들이에게 미소를 전하며, 허허벌판 속 야생마 무리를 헤아리며, North Dakota의 경계를 넘어 섰다. 어느새 몬타나 주의 Wolf Point 마을 어귀에 정차해 있는 열차 안에서 잠시 휴식의 기지개를 켠다.
몬타나주에 들어와 열차는 계속 서쪽으로 달려간다. Hinsdale이라는 지역의 2번 국도를 따라 가는 기차의 왼편은 울창한 숲조차 볼 수 없는 황토언덕의 연속이다. 사막지역에서나 볼 것 같은 작은 크기의 식물들만이 듬성듬성이며 그들의 살아있음을 표시한다. 달리는 기차를 경계로 오른편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있다. 저 멀리 평원에 풀어놓은 흑색 소들의 무리가 까만 점들을 찍어내고 있구나. 넓은 평원에는 무언가를 경작한 것인지, 이미 기계가 지나간 듯 짧은 황토빛 갈대밭의 이미지를 주며, 그 위를 덮고 있는 백설의 이불을 덮고 있다. 혹시, 이 근방도 Indian Reservation 구역인건가? Map을 보니, 황토빛 사막 언덕이 나의 왼쪽에 가득히 몬타나주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사람없는 세상과 사람사는 세상의 갈림길의 선을 긋고 기차바퀴는 구른다. 가끔씩 그것의 살아있음의 힘찬 경적을 울려대면서... Malta지역을 지나며, 겨울 한 낮의 태양의 햇살을 즐긴다. 햇살에 비친 세상을 이제서야 눈에 넣는다. 땅 위의 하얀 설(雪)의 흔적은 지웠어도, 아직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설화(雪花)는 날려버리지 못한 장면이 지나간다. 아마도 나뭇가지들이 한 겨울 속 꽃을 피울 수 있는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나 보다. 나무들의 염원이 나의 몇 자 글 속에 담겼을 수 있을까?
열차의 운행시간이 길다 보니, 중간역에서 열차내 직원들이 바뀌기도 한다. Dining 객실의 집기 문제가 있는지, 그 또한 점검도 하고, 이미 열차의 inspection도 겸했다. 길어서 지루하다는 정도의 시간도 느끼지 못할 만큼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듯 하다. 시스템적으로, 각 직원들의 담당 역할이 나눠져 있을 법하다. Chicago에서 어제 이 맘때 출발을 했었으니, 꼬박 24시간은 달려온 듯 하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번 첫 번째 stop에서 연료를 채워 넣겠단다. 이또한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일반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정도의 시간이라고 해야할까? 느낌이 그렇다. 그리고 바로 이어, 두 번째 stop에서는 밖에 나가 잠깐 fresh air break를 가져보면 어떻겠냐고 한다. "Havre, MT", 그러고 보니, 이제 거의 반의 여정이 마무리되고, 나머지 후반전을 위한 재충전의 휴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