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을 만나다!
새벽 3시 언저리! 좀 더 눈을 부칠까? 2시간마다 한 번씩은 몸을 뒤척이는 것 같다. 그나마 시간 간격이 길어지는 걸 보면, 열차내 잠자리에 적응해 가는가 보다. 구부렸던 다리를 다시 펼 수 있는 자세로 바꾸고, 왼편으로 누웠던 자세를 바꿔 오른편으로 옮기기도 하고, 또는 허리펴는 자세로 바꾸기도 하며, 자는 와중에서도 나름 balance를 찾는다. ‘근데 시간이 좀 남았는 걸…?’ 좀 더 눈을 감아 보려도 이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새벽 아침의 말똥말똥한 기운이다. ‘왜 그럴까?’ 의아해하며, 전화기를 이용해 저장해 놓았던 둘째날의 글을 브런치에 업로드 했지만, 원하는 브런치북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 재차 카테고리를 바꿔 보려는 데도, 어떻게 하는 줄 잘 모르겠다. 아이구! 괜한 부지런함을 떨어서, 일을 하나 더 만든 기분이다. 일단 접고, 한국에 전화를 하려니, 8:42pm.. 어머님께는 다소 늦은 시간이라 아침시간으로 미룬다. 그러고보니, 평소 집에 있던 시간으로는 6:42am.. 꽤 늦은 기상시간이다. 로스엔젤레스 시간에 맞춰진 3시간의 차이가 자고 있던 도중, 덤으로 추가되어 있구나. 이제 선 잠의 상태는 날라가 버린 것 같고,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향한다. 어제와 같이 하나, 둘씩 순조롭게 해치워 나간다. 양치질, 세수, 머리감기…이번에는 몸통도, 발도 닦는다. 두번째는 제법 경험치 많은 ‘기캉족(기차바캉스족)’이다.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아침을 챙기고, 필요도구를 챙겨 나의 서재-이건 바로 observation 객차를 말한다-로 향하는 데… 이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창문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니, 뻘건 기찻길 신호등이 보인다. 뒤로 이어지는 기찻길이 보인다. 어느새 뒤에 붙어있던 객차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나의 객차가 열차의 맨 마지막이다. 방향을 바꿔 앞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여긴 Dining 객실! 직원이 불을 켠 채, 테이블에 다리를 올린 채, 곤한 잠에 빠져있다. 이른 새벽,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원위치! 챙겼던 아침 식사꺼리며, laptop 등을 조심스레 펼쳐놓고, 숨 죽여가며 글을 옮긴다. 마지막 한 캔의 커피를 음미하며, 창 밖의 남겨지는 기찻길을 보며, 넷째날 아침을 맞는다. 그러고보니, 6시간 후면 기차의 종착역에 닿겠구나.
아직까지도 어둑한 새벽하늘이 이어진다. 밖에 보이는 전등불에 의지해 무엇이 있는지를 가늠해 볼 뿐이다. 차창으로 하늘의 회색빛에 반사된 물줄기가 보인다. 때로는 커다란 회벽색 모양의 둔탁한 건물도 눈에 띈다. RV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을 보자면, 여행지 비슷한 곳인가? 대략 그런 곳을 지나치고 있고, 놓치고 싶지 않다는 충동으로 Laptop을 켠다. 나의 Location이 어디일까? Map을 열어보니, 파란색 점이 Columbia River옆을 따라 움직이고, 앞으로도 길게 이어지고 있다. 꽤나 긴 구간이다. 그러나, 6:28am의 밖은 아직도 어둡다. 아침 햇살에 의지한 풍경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채, 차창에 붙어 희미한 밖의 풍경이나마 눈에 넣는다. 강촌의 풍경이 떠 오른다. MT의 추억! 소양강을 따라 뿜어내는 기차소리, 그 뒤의 병풍이 되어 주는 산자락의 모습! 모든 것이 추억의 열차가 되어 머릿 속을 흘러간다. "choo~choo, whoo~whoo, 삐이이익, 칙칙폭폭...." 잠시 정차한 기차역, 많은 승객이 삼삼오오 열차에 오른다. 여행용 배낭을 짊어지고들 있는 걸 보니, 관광지이긴 한 가 보다. 정말 강촌같은 분위기를 선물해 준 기차역, "Wenatchee, WA...!" 시애틀 종착역까지 세어보니, 네 정거장이 남아 있다. 완연히 미국 서부를 구르고 있다. 같은 영어가 통한다지만, 내게는 다른 나라나 다름없다. 미국에서의 20년 중, 단 하루도 서부에서는 밤을 지내 본 적도 없지 않은가!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사람의 발자국도 없다. 산 정상에 열차 소리만이 고요함을 깰 뿐이다. 호숫가에 물이 고여있음을 보니, 저기 어디에도 생명이 있을 법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를 뚫고 달린다. 시애틀로 향하는 인간들에게 나눠주는 선물인가보다. 단단한 바위틈에 뿌리를 꿰아리고 하늘로 향한 전나무, 그 위에 소복히 쌓인 하얀 솜의 조화는 White Christmas Tree를 안겨준다. 아니, 겨울왕국을 선사한다. 사진에 담아보려 셔터를 누르고, 비디오를 찍어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웅장함, 거대함, 신비함, 아름다움을 감히 담아낼 수가 없다. 언어로도 부족하다. 단, 하나의 단어..."와!" 그 외의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거대한 자연의 경관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라.
얼마전, 읽었던 <여행의 기술>에 있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바로 그것이다! 이 곳에 인간 뉴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들의 욕망, 지배, 권력 다툼을 갖다 댄 들, 대자연의 지배력에 압도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감히, 숨을 멎게하는 거대함 앞에 피조물의 한낱없음을 실감하리라.
또 다시 암흑의 긴 터널을 지난다. 5분인가, 10분인가, 20분인가...? 펼쳐질 세상의 기대때문인가? 한없고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객실의 승객들도 조용히 암흑의 세상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보고싶다. 세상의 빛이... 궁금하다. 세상의 생김새가...'
그리곤, 빗줄기가 하얀 눈을 녹인 세상! 짙은 녹색을 드러낸다. 나무 줄기의 회색과 뿌리의 짙은 흙색을 보여준다. 다른 한쪽에서는 계곡의 물줄기에 힘을 더한다. 나무를 넘어뜨렸고, 그것은 또 흙이 되어가고, 세상은 여지없이 생명을 돌리고 있다. Skykomish 마을을 지나며, 이끼로 뒤덮힌 나무줄기, 가지들...! 연두빛 털코트를 입고 겨울을 보내는 나무들이 손을 들어 반긴다. 이렇게 지나왔던 이 곳의 이름이라도 남겨 놓는다. 바로, Lake Wenatchee Forest Park, Mt. Baker-Snoqualmie National Forest 그리고 Wallace Falls State Park를 뚫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 어느새 "Everett, WA" 기차역을 지나친 나는 이젠 오른쪽의 바닷가 물결과 함께 한다. 몇몇의 Ferry를 지나고, 흐린 하늘아래의 진한 빛깔 바다가 육지의 나를 감싼다. North Pacific! 한국에서는 익숙했던 그 바다! 산 정상의 웅장함에 감탄한 나는 바다의 한없음에 말을 잃으며, "Edmonds, WA"역에 도착한다. 잠시 후, 시애틀 도시 삶의 모습이 나를 맞으리라.
시애틀의 King Street Station에 도착! 교회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나무 벤치가 있고, 더러 모던한 풍의 의자도 섞여 있다. 외형상으로 보자니, 그리 크지도 않지만, 확실히 오래된 듯한 이미지! 이미 아들과는 Airbnb로 예약해 놓은 곳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다. 나는 기차로, 아들은 비행기로! 지하철 역이 어딘가를 Navigation과 인간더듬이를 의지해 가며, 찾아나선다. 길 이름에 중국어 표시도 되어있는 걸 보니, Chinatown이 맞는가 보다. 복잡한 한국의 지하철 노선도에 비하면, 이곳은 단지 2개의 노선표를 접하니, 작은 지역도시 기분이 난다. 우연히 스쳐 만난 한국에서 온 관광객과 대화할 여유가 없어 헤어졌음에 아쉬웠지만, Link Light Rail이라는 찻길과 나란히 연결된 짧은 열차에 올라타고, 시애틀 외곽의 거리를 눈에 넣는다.
시애틀에서 몇 개월간 인턴생활을 하는 아들과 함께 도착한 Public Market(https://www.pikeplacemarket.org/)에 도착한다. 역시 길가를 걷는 내내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반겨준다. 연말의 분위기라 그런가? 세계 각지의 인종들이 섞여있는 인파가 넘치는 한국 전통시장의 분위기다. 1912년 스타벅스 1호점부터 즐비한 먹거리 식당들, street food나 기념품들의 천막 가판대가 즐비하다. 바닷가 옆에 있다보니, 단연 조개나 게를 바로 쪄서 판매하고 있는 생선가게의 아저씨들의 외침 소리가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남대문이나 노량진시장에서 들음직한 목소리로 말이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노랫가락이라도 있지, 여긴 그저 '이제 거의 안남았어, 얼른 사!' 보채는 데에 정신없다. 스타벅스 1호점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그 모습! '이런 데에 한 번 와 봤어! 하는 여행객들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연신 줄을 이어가며, 기념품이든 마실 것이든 손에 쥐고 나오는 모습이다. 곳곳에서 악기상자를 열어놓고, 팁을 청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은 추운 바닷바람에 노랫가락을 싣고 있다.
시애틀 시내의 공공도서관(https://www.spl.org/hours-and-locations/central-library)으로 발길을 돌린다. 맞은 편에는 renovation이 되지 않은 70년대 모습의 court house가 주위의 현대식 건물에 의해 더 초라하게 보인다. 도서관의 외형을 보며, 들어서자마자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소설이 기억을 스친다. 도서관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등장인물들을 머릿 속에 흘리면서... 10층짜리 건물을 둘러보고, 공부할 수 있는 장소며, 선반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본다. 누구하나 손 대지 않을 법한 책들이 꽂혀있고, 비어있는 책꽂이들도 꽤 보인다. 공부하고 있는 젊은 청년이 있는 반면, 영화같은 무언가를 보고 있는 뚱뚱한 아저씨도, 추위를 피하고자 하는 노숙자의 모습도, 때론 각종 Bill을 펼쳐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배달원 복장의 모습도 섞여 있다. 분주한 책 중심의 공간이기보다는, 지쳐있는 삶 중에 잠시 머무는 곳,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는 공간, 그리고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일부 여행객의 발걸음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숙소로 방향을 되돌린다. 돌아가는 열차안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20대 아들은 연신 옆에서 꾸벅꾸벅인다. 3박 4일간의 열차를 타고 온 50을 넘은 아비는 마치 어린 아이마냥 이것저것에 호기심을 갖는 데 정신이 없다. 삶의 열정은 나이가 아니라, 바로 관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