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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Oct 13. 2023

말이 품은 마음

말이 품은 마음 6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넌 나를 잊지 못하네.』

노래방 천장에 매달린 밀러 볼 조명이 공간을 핥듯이 비춘다. 음향기기 화면에 보이는 노래 가사가 박자에 맞춰 차례차례 글자색을 바꾸고, 나는 눈을 감고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며 노래를 부른다.

   “앵콜, 앵콜, 과장님. 멋져요.”

반주가 끝나고 나도 눈을 떠 웃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잠깐 같이 웃어 보이며 마이크를 제자리에 걸어두고 노래방 문을 열고 나온다. 출입문을 찾아 시원한 바깥공기 속에서 상가 입구 시멘트 계단에 앉아 담배를 찾아 불을 붙여 깊게 빨아 댕긴다. 다시 뿜어낸 연기는 오랫동안 허공에 흩어진다. 노래가사는 입술 끝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무한 재생 반복된다.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넌 나를 잊지 못하네.”

   “아이고, 과장님. 노래방 기계 화면이 없으니까 가사가 생각이 안 나죠?”

촐랑이 박 대리가 자기 마음대로 옆에 와서 앉는다.

   “과장님, 한 대 펴도 될까요?”

   “왜 이래? 박 대리가 언제 내 허락받고 폈어?”

   “하하, 과장님, 언제부터 담배 피시는 거예요? 예전엔 비 흡연자 이셨던 것 같은데, 아닌가?”

   “맞아. 인생 좆같아지고부터 펴. 하ᆢ.”

쓴웃음이 온다.

   “인생이 다 그렇죠. 뭐. 특별한 게 있겠어요. 그래도 과장님은 애들도 다 컸고, 큰 걱정 없이 이제 편안하실 나이 아닌가요?”

   “그렇지? 그래, 맞다. 내 나이가 벌써 그럴 나이가 됐지?”

손가락 끝으로 담배 불씨의 온도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한 목음 깊게 빨아 당기고  남은 담배는 바닥으로 던진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  맨홀 구멍으로  민다. 혹시나 바지에 붙어 있을지  모르는 먼지를 손으로  정리한다. 멈추지 않는 노래구절.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넌 나를 잊지 못하네.”

   “과장님, 제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실수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 노래요. 그런데도 아직 <넌>이 아니고요. <난>이고요. <나를 잊지 못하네>가 아니라 <너를 잊지 못하네>에요.”

   “박 대리야, 나도 알아. 네가 인생을 뭘 알겠니? 이제 들어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안 기다리려나?

   “과장님, 노래 가사 알고 계신 거였어요? 헐. 일부러 그렇게 부르시는 거예요?”  

노래방 문을 여니 흥에 겨워 난리가 났다.

   “얘들아 여긴 나이트가 아니야. 분위기 좋네. 역시 회식은 월급날 해야 잘 놀아. 너네 들은 나이도 어리면서 노래방에선 꼭 90년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이 나서 난리더라. 요즘 노래 좀 들어보자. 내 젊은 날의 유행가들 말고.”

   “히히, 과장님, 요즘 노래들은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듣는 노래예요. 어려워서 따라 못 불러요. 랩도 많고요. 하하. 이거 마지막 서비스 5분 노래예요. 과장님도 자자 , 이렇게 요렇게 움직여 보세요.”

   “아이고, 됐네요. 자, 내일 지각하지 말고, 조심해서 들어가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나는 먼저 갈게.”

   “넵. 과장님 조심히 안녕히 가세요.”


   집으로 향하는 흔들리는 버스 안, 어머님께 전화가 온다.

   “네, 어머님. 고생 많으셨죠? 지금 가고 있어요. 빨리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집에 들어가는 길에 사서 갈게요.”

   “아니다. 나는 입맛도 없고. 네가 먹고 싶으면 순대라도 사 서 오던지.”

   “네. 새우튀김도 좀 살까요?”

   “아니다. 나는 입맛이 없대도. 네가 먹고 싶으면 사 오던지.”

   “네.”

버스에서 내려 내장을 섞지 않은 순대와 새우튀김을 사서 집으로 들어간다.

   “어머님, 저 왔어요. 애들 아빠는요?”

   “왔냐? 고생했다. 안방에서 텔레비전 보고 있을 텐데.”

   “네, 순대랑 새우튀김은 식탁 위에 있어요.”

안방으로 가본다. 남편은 텔레비전에 넋을 놓고 있다.    

   “웬쑤, 오늘 집에서 얌전하게 잘 있었어?”

내 목소리를 듣고 남편은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는다.

   “순옥아, 이제 왔어? 이거 재미있어. 같이 보자.”

   “응, 보고 있어. 나 좀 씻고 올게. 어머님이랑 순대 같이 먹어. 따뜻해.”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나를 보는 까만 얼굴엔  굵은 주름이 가득하고, 하얀 수염이 듬성듬성  난 저 해맑은 모습에 미쳐버리겠다.

   “고기 말이야.”

   “고기? 엄마. 같이 먹어.”

식탁에선 입맛이 없다던 어머님은 정말 맛있게 순대를 된장에 콕콕 찍어 드신다. 남편이 움직이니 젓가락을 챙기러 일어나시는 어머님의 움직임은 느릿느릿 가볍지 않다. 아들의 방을 열어본다. 불을 껴 지 않아 까만 방.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들의 침대에 잠깐 앉아 본다. 눈을 떠도 눈을 감은 듯 어두운 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숨. 남편의 뇌 어디에 이런 어둠이 있는 걸까? 일어나 아들의 방을 나온다. 욕실 전등 스위치를 켜니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여보, 욕실 전등이 나갔네.”

남편의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창고를 뒤져 전등을 찾아 욕실전등을 갈아 끼우며, 잠깐 눈물이 맺힌다. 전기 기사였던 남편.   위험하다고 여자는 이런 거 하는 거 아니라며 절대 전등을 만지게 하지 않았던 남편이었다.  폭탄처럼 위험하게 느껴졌던 전등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나의 집안일이 되었다. 흐르는 샤워기 물살에 눈물을 묻혀 흘러 보낸다. 벌컥 문이 열린다. 놀라 뒤 돌아보니 남편이 들어온다.

   “순옥아, 나 똥.”

   “응. 냄새나니까 물 여러 번 내려.”

남편의 풍덩풍덩 똥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하다. 엉덩이를 닦고 남편이 나간다. 나는 샤워기를 끄고 변기에 물을 내리러 움직인다. 변기 가득한 똥. 변기 뚜껑을 덮고 물을 내린다. 숨을 참고 방향제를 뿌려 꽃향기와 똥 향기가 섞인 냄새를 맡아가며 샤워를 끝낸다.

   ‘아이고, 오늘 남편이 뭘 먹었지? 냄새가 지독하게 오래도 가네.’

   “다녀왔습니다.”

   “어, 왔니? 저녁은?”

   “먹었어요. 아버지는요?”

   “안방에 계실 거다. 주무시려나?”

   “아버지 저 왔어요. 뭐 보세요?

   “안 봐. 잘 거야. 남자, 이제 왔네.”

아들은 그냥 웃는다. 아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번 더 그냥 웃는다. 나도 웃는다. 요즘 아들과 나 사이엔 이런 의미 없는 블랙 웃음이 많아졌다. 사람은 슬픔의 단계가 지나면 웃음의 단계가 온다. 화가 나고 분노하고 실망하면 눈물이 나오지만, 순응하고 익숙해지면 웃음이 나온다. 가끔 눈물이 다시 흐른다면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군에서 휴가를 맞은 큰 아들이 집으로 오지 않겠다고 했을 때, 느꼈던 낯선 상황에서 불쑥 나온 눈물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섞여 있었다.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일어난다. 남편은 옷을 입고 두껍고 긴 양말을 찾아 신고 있다.

   “여보, 더 자. 나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순옥아, 나 나가야지. 회사 가야지.”

   “여보. 회사 안 가도 돼. 집에서 놀아. 나가면 안 돼.”

   “갈 거야.”

   “웬수야, 또 그런다. 안 된다고 했지. 회사에 도깨비 나온 다고 했지. 귀신 나온다고 했지.”

   “갈 거야.”

   “안 된다니까. 말 안 들을 거야? 이제 고기 안 준다.”

   “갈 거야.”

   “안 된다고. 제발. 당신 왜 이래? 정말. 이제 아침마다 진짜 할 짓이 아니다. 고기 먹고 텔레비전 보고 그냥 집에 있어. 밖에 추워.”

   “갈 거야.”

남편이 방문을 열고 나간다.

   “여보, 미쳤어? 안 된다고. 이제 회사 없다고. 어머니, 어머니. 이 사람이 또 나가려고 해요. 정식아, 아버지 좀 잡아라.”

온 집안 식구들이 거실로 나온다.

   “애비야, 애비야, 나랑 있자. 텔레비전 보고 있자.”

   “아버지, 또 왜 이러세요. 엄마, 오늘 저 오전 수업 있어요. 그룹 발표라 늦으면 안 돼요. 아, 미치겠네.”

남편은 힘이 세다. 키는 커도 야윈 편이라 억센 사람이 아닌데, 그날 그렇게  쓰러지고 정신이 돌아와 몸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후부터 힘이 세졌다. 그전보다 두 배는 세졌다. 어린아이들이 떼를 쓰며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할 거라고 고집을 피울 때처럼, 남편이 억지를 부리는 날은 갑자기 힘이 더 세 진다.

   “엄마, 저 학교 갈 준비 해야 해요.”

   “그래, 그럼 정식아, 엄마가 잠깐 옷 입을 때까지만 아버지 좀 잡고 있어라.”

밑에 바지만 잠옷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상의는 그대로 잠옷을 입고 잠바를 급하게 걸친다. 아들은 남편의 뒤에서 몸통을 잡고, 나는 남편의 팔을 한쪽 잡고, 어머니께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길 기다린다. 어머니가 나오시고 등교를 위해 정식이가 잡고 있던 남편의 몸을 놓자 남편은 투우 소처럼 맹렬하게 문을 열고 나가 버린다. 어머니와 나는 남편을 따라 급하게 집을 나선다. 남편은 원래부터 발걸음이 빠른 사람이었다. 늘 느린 나의 발걸음에 맞추기 힘들다며 투덜거렸지만,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내 손을 잡아끌지도 않고 늘 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어주던 남자였다. 이젠 내가 남편의 속도에 맞춰 거의 뛰다시피 걷는다. 금세 도착한 버스 정류장. 남편은 그대로 한참을 멈춰 서 있다. 남편이 스스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엔 나와 어머님은 여기서 움직일 수 없다. 남편이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다. 승객을 태우기 위해 수시로 잠시 정류장에 멈춰서는 버스 중에서 몇 번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르는 남편은 우두커니 작업용 신발을 신은 채 정류장 맨 앞에 서서 차례차례  버스를 마중이라도 하듯 그렇게 한 참을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간간히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빠서 남편에게 눈을 흘기거나

   “거참, 안 탈 거면 뒤로 좀 가세요.”

라는 말을 하고 자신이 타야 하는 버스에 올라타기 바쁘다. 그런다  유독 예민하게 남편에게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버스 정류장이 몹시 불안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된다. 그럴 경우 어머님은 남편의 뒤에서 자신의 귀 옆으로 손가락 하나를 쭉 펴고 한쪽 방향으로 반복해 돌리는 행동을 반복한다. 상대방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내 아들이 맛이 갔어요. 미쳤다 구요.’

소리 내지 않는 큰 입모양으로 정보를 신속하고 반복적으로 화가 난 상대에게 보낸다.  어머님의 정보를 읽어 낸  상대는  화가  진정 된다. 남편의 보호자인 우리가 하는 일은 남편의 상태를 모르는 누군가의 화를 진정시키는 일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정하게 현장직 출근 복장을 한 남성과 자다 깨 머리카락은 엉망진창이고, 옷도 어느 날은 낡은 잠옷을 위아래로 입은 채 노모와 아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버스 정류소에 서 있다. 출근시간의 혼잡함이 마무리되어 가고 좁은 버스 안 공간도 넓어지는 시간이 되면 남편의 넋 나간 버스마중도 끝이 난다.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는 버스 번호를 포기하고 자신이 기억해 낸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 정류장을 향하던  발걸음의 속도보다 한참 늦다. 남편의 짧은 출근소동은 늘 이렇게 끝이 난다.  


   남편과 요란스러운 아침을 보낸 날은 지각이다. 소규모 기업체고 사장님을 비롯한 창립멤버들과 나의 근무연수는 비슷하다. 잡다한 회사 일을 이것저것 다 파악한다는 나의 업무 능력은 내가 겨우겨우 회사를 잘리지 않는 무기가 된다. 남편이 사고가 있기 전엔 사장님과 개인적으로 술자리를 할 만큼 가까웠던 친분도 아직 명퇴 신청서류가 내게 오지 않는 조건이 된다.

소동 있는 날 아침, 헐레벌떡 출근을 해 자리에 앉으면 밑에 직원들 보기가 부끄럽다.

   “과장님, 또 시어머니가 힘들게 하셨나 봐요?”

   “응. 원래 치매라는 게 신호등처럼 왔다가 갔다가 해.”

   “그래도 시어머님은 복도 많으세요. 요즘 시대에 과장님 같은 며느리와 아들이 있나 주변을 한 번 보세요. 모두 요양병원에 모시기 바쁘죠. 사실, 집에서  모시는  건 현실적으로도 너무 힘들잖아요. 아무튼 고생 많으세요.”

  “응, 나도 어머니가 날 기억 못 하시면 요양병원에 모실 거야.”

사장님을 뺀 나머지 회사사람들은 시어머니의 치매로 내가 가끔 지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멀쩡하던 남편이 초등학생 보다 못한 지능이 되었다고 말하기 싫었다. "불쌍한 여자, 답 없는 인생, 복 없는 사람"이라는 불행의 3관왕 타이틀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신다고 하면 주변에선 ‘효부’라는 상장이 내려진다. 누구나 불행해질 순 있겠지만, 내가 그 불행의 대명사이긴 거부하고 싶다. 타인의 눈엔 나의  삶이  평범해  보이길  바란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대부분 그렇게 살아. 특별한 게 뭐 있겠어?”

사람들과 흔하게 주고받는 대화. 그땐 몰랐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조건에서만 허락되는 넋두리라는 것을.         


   그날은 바다가 예쁜 날씨였다. 하늘이 파랗고 바다가 하늘만큼 푸른 주말. 남편과 함께 부부계모임에서 회에 가볍게 소주를 두세 잔 마신 남편을 대신해 내가 운전을 하게 되어 조금 긴장되었던 날이다. 낯선 초행길 도로는 유난히 단속 카메라도 많았다.

   “긴장 풀고 천천히 달려. 좀 늦게 가도 괜찮아.”

라는 남편에게 술은 왜 마셔가지고, 운전이 서툰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가벼운 투정을 부렸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너무 기분이 좋았노라고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만, 오늘은 참 기분이 좋다고 웃으며 그는 말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날도 내비게이션 보는 게 서툰 나는, 길을 잘 못 들어섰고, 남편은 그럴 수 있다며,

   “절대 화내지 않는 친절한 아가씨가 다른 길로 다시 안내해 줄”

거라고 얘기하며 크게 웃었다. 긴장되는 초행길 운전을 하면서도 새심 종합병원이라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새 건물인가 보다. 깨끗하네.’

라고 생각하던 그때, 남편이 가슴 위로 손을 움켜쥐고 경련을 일으켰다. 차를 급히 꺾어 병원으로 들어가 응급실이라는 빨간색 간판이 보이는 쪽으로 차를 급히 몰았다.

   “도와주세요. 남편이 숨을 못 쉬어요. 엉엉. 여기요. 여기 제발 빨리 봐주세요.”

미친 듯이 울면서 소리 질렀다. 눈물과 절규가 섞인 겁먹은 짐승처럼 소리 질렀. 응급실 직원들은 남편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남편의 침대를 따라 뛰었다. 남편은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보호자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더 이상 같이 들어갈 수 없었다. 나에게 차를 좀 빼달라는 직원의 음성이 들렸다. 병원 직원은 멍하니 서서 남편이 사라진 문을 보고만 있는 내게 병원 응급차가 곧 들어온다며 빨리 차를 빼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나는 차를  운전하며 주차할 곳을 찾아 빙빙 돌았다. 주말이라 주차장엔 차가 많았고, 나는 차 안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며, 핸들을 천천히 돌리고 또 돌렸다. 차는 주차 라인에 맞춰 똑바로 주차해야 했고, 차가 들어가야 할 공간이 좁아 차를 몇 번이고 넣었다 뺀다 하는 동안  계속되는 기어변속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주차를 마친 나는 다시 응급실로 달렸고, 남편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남편은 심 정지 15분으로 인해 저산소성 뇌손상이 생겼다. 의사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환자가 빨리 병원으로 올 수 있어서 뇌사가 일어나지 않아 저체온요법이 가능하다며 곧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저체온 상태에서는 약물 대사와 배설이 감소되므로 진정제, 진통제, 근이완제 등의 약물 농도가 높아져 의식이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남편은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죽음과 더 가깝게 있는 사람 같았다.

   ‘이 사람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저체온요법은 4일 동안 이루어졌고, 중환자실 12일 차 자가 호흡이 30% 돌아오고,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던 순간 남편도 내게 오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무너지고 너무 아팠다.

남편은 아주 조금씩 회복했다. 눈을 뜨고, 호흡 기능이 돌아오고 말은 못 해도 소리를 내면 눈동자를 움직였다. 담당 교수님은 기적이라고 했고,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환자의 회복정도가 어디까지 일 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며, 뇌손상으로 인해 어떤 부작용 생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남편이 말을 하던 날, 병실에 있던 사람들 중 나를 뺀 모두들 알아보지 못했다. 어머님도 아들도 자신의 동생과 형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남편은 오로지 나를 보며 “순옥아”라며 웃었다. 나는 가슴이 메어져 아무 말도 못 했고, 누워있는 남편을 안고 울었다. 그 후 신체능력을 되찾은 남편은 퇴원을 권유받았다.


   지적장애 2급 남편은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내게 돌아왔다. 모든 인간은 신으로부터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나와 내 남편, 우리 가족은 느닷없이 아주 험하게 신에게 버려지고 던져졌다. 그날 바다가 유난히 예쁘게 보이던 그날. 모든 인간을 무심히 보고 있던 신이 갑자기 나와 내 남편이 눈에 들어온 이유가 뭘까? 내가 너무 크게 행복하게 웃었나? 우리가 너무 걱정 없이 보였나? 내가 바다와 하늘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을 때, 실수로 신의 눈을 부시게 했을까? 눈이 부신 신이 손을 한 번 내저었을 때, 나와 남편이 험한 자갈돌 위를 굴러다니 인생으로 던져진 걸까? 신의 실수였다면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실까?

   살면서 이런 이상하고 엉뚱한 상상들을 요즘처럼 자주 해 본 적도 없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아침밥을 먹으며 고기반찬이 맛있다고 했다.

   ‘아, 서서히 남편의 기억이 온전해지고 있구나.’

라고 믿었다. 점심을 먹으며,

   “순옥아, 고기 먹고 싶어.”

   “여보, 고기 여기 있잖아.”

   “아니, 고기 먹고 싶어.”

   “여보, 안 보여? 당신이 좋아하던 돼지고기 삼겹살 여기 있잖아.”

   “보여. 이 고기 말고 다른 고기 먹고 싶어.”

   “일단 먹어. 저녁에 다른 고기 먹자.”

저녁에 소고기 전골을 해서 남편과 먹었다. 남편은 고기가 없다고 했다. 다음 날 어머님이 우연히 시장에서 사 오신 고등어를 구워 남편에게 줬더니, 오늘은 고기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남편은 사물을 작게 세분화하지 못했다. 다른 것들과 구별하는 사물의 고유 명사를 잊어버린 것이다. 아들은 남자, 어머님은 여자라고 불렀다. 아들은 남자라고 불러도 포기했다. 그러나 어머님께 여자라는 것은 너무 한다 싶어서 “엄마”라고 꼭 불러야 한다고 남편에게 몇 번이고 얘기하고 교육시켰다. 엄마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아들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지 모르는 남편이 된 것이다. 남편이 잊지 않은 단 하나의 고유 명사가

“나다. 순옥.”

나와 함께한 시간들을 모두 다 기억하진 못해도 일부는 기억하는 것 같았다. 나의 두 아들과 시 어머님, 남편의 형제들은 남편을 요양 병원으로 입원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나머지 가족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나만을 기억하는 남편을 보낼 수가 없었다. 치매 노인들은 그곳에 보내는 시간이 생의 절반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나이 이제 55세. 100세 가까운 세월을 산다면 남편은 그곳에서 4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오직 나만을 기억하는 그를 그 외로운 곳에 하루하루가 똑같을 그 긴 시간을 어찌 내버려 둘 수 있을까? 못 할 짓이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었다.

   “저를 잊으면 그때, 아무것도 그리워할 게 없는 사람이 되면 남편을 보낼게요.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도 잊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곳엔 남편이 아는 사람도 없잖아요. 여러 사람들한테 바보 취급도 받겠죠. 그렇게 힘든 곳에서 저를 잊으라고 하면 얼마나 외롭겠어요.”

라고 대답 했었다. 사람과 사람이 상호작용 없이 아무런 희망 없는 보살핌이란 언제까지 가능할까? 이제 나는 지쳐간다.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어느 가수의 이 노래는 남편이 내게 사랑을 고백할 때 했었던 노래다. 친정아버지께서 전기기사라는 남편의 직업이 싫다 하셨다.  아버지께서 당신과 교재를 반대하셔서 더 이상은 만 날 수 없겠다며 그와 헤어졌었다. 남편은 나의 삐삐 음성 녹음에 이 노래를 부르며 우는 그의  목소리를 남겨 놓았다. 헤어질 수가 없었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노래가 이제는 남편과 이별을 기다리는 한 풀이 노래가 되었다. 인생이란 참 그렇다.

   '어제의 행복이 오늘의 불행으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도대체 언제쯤 지나가냐고 묻고 싶은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 나간 남편을 돌보며 약하고 약한 나의 의지가 바닥을 칠 때, 나의 악몽도 시작되었다. 언제나 같은 장면이다. 소량의 소주를 마신 남편이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그날. 바다와 하늘이 예뻤던 그날. 내비게이션의 경로 안내를 잘 따라가지 못해 낯선 도로를 달리다 새심 종합병원을 본다. 남편은 가슴을 움켜잡고 경련을 일으킨다. 꿈속의 나는 병원에 들어가는 걸 망설인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바라만 보고 있는 나를 또 다른 내가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 늘 여기서 잠이 깬다. 꿈속의 나는 남편을 병원으로 바로 데려가지 않는다. 늘 꿈속에선 한참을 망설이며 남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내가 잔인하고 무섭다. 남편의 죽음과 온전치 못 한 남편을 보살피는 나의 힘겨운 현재 삶의 무게를 꿈속의 나는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런 차가운 모습의 나는 남편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한 “순옥이”가 맞을까? 남편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는 나를 보고도 남편은 그렇게 애절한 노래를  나에게 남겼을까? 악몽으로 땀이 흥건한 몸을 샤워기 아래에 둔다.  눈물은 쏟아져 내리는 수돗물에 섞어 흘려보낸다.


   악몽으로 자다 깬 이른 새벽. 출근이 있어 다시 잠들긴 애매한 시간이다. 잠깐 소파에서 토끼잠이 들더라도 깨면 바로 출근할 수 있도록 일단은 출근 준비를 하기로 한다. 부산한 움직임으로 혹여 남편을 깨울까 조심스럽다. 남편의 출근소동이 매일 있는 일이 아니지만, 남편이 유난히 일찍 일어난다 싶으면 꼭 그 소동이 난다. 현장 일을 하던 남편의 이른 출근 시간 패턴이 가지고 있던 습관인가 하고 짐작해  본다.   이런  이유로 어수선한 나의 새벽녘 행동이 조심스럽다. 화장품을 가지고 나와 욕실 거울을 보며 꼼꼼히 바른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으니 오랜만에 눈 화장도 해 본다. 남편은 내게 오렌지색 아이섀도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었다.

   ‘눈물, 안 돼. 참아. 흘리지 마. 떨어뜨리지 마.’

   처음 남편이 쓰러지던 날부터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안 돼. 참아. 흘리지 마.’

라고 반복하는 나의 다짐이다. 남편이 좋아했던 반 머리로 머리를 하고 예쁜 핀을 꽂는다. 예전엔 남편과 같이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남편은 나보다 대부분 출근시간이 일렀지만, 가끔 본사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은  출근 시간이 늦어지면서 버스 정류장까지만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기도 했다.

나의  한결같은 느린 발걸음에,

   '출근시간에도 이렇게 여유 있게 걷느냐.'

 웃으며 핀잔을 주던 남편이었다. 겨울바람이  차가운 날  버스 정류장 가는 길에 가끔 나와 있는 붕어빵 장수를 보면, 서로 한 마리씩 사서 똑같이 꼬리부터 먹으며 걷는 날도 있었다. 아직은 가을이라서 붕어빵 장수가 올 시기는 아니지만, 오늘따라 남편과 호호 불어먹던 달콤한 붕어빵이 생각난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려고 싱크대 서랍장을 열어 시리얼과 우유를 꺼내고 뒤를 돌아보니 안방에 불이 켜져 있다.

   ‘아하, 남편이 깼구나! 큰일이다.’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걸어가 본다.

   “여보, 일어났어? 텔레비전 틀어줄까? 아니면 과자 먹을래?”

남편은 아무 대답도 없이 욕실로 걸어가 세수를 한다. 오늘도 출근 소동 난리 부르스 행사가 진행될 모양이다. 나도 나 갈 준비를 다 했으니, 어머님과 아들 정식이라도 좀 더 잠을 잘 수 있게 남편을 내버려 둔다. 하얀 우유 위를 둥둥 떠 있는 시리얼을  숟가락으로 퍼 먹으며, 텔레비전 아침 드라마를 보듯 남편의 움직임에 맞춰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남편의 구부정한 어깨, 툭 튀어나온 배. 사고 후 볼록하게 앞으로 커진 남편의  배.

   ‘저 뱃속에 남편의 모든 기억이 숨어 있나?’

다 먹은 시리얼 그릇과 우유를 정리하기 전 남편에게 한 번 더 물어본다.

   “과자랑 우유 안 먹을 거야? 여보, 우유라도 마셔.”

남편은 내 쪽으로 눈길을 한 번 주더니, 안방에서 옷을 챙겨 입고 나온다.

   ‘그래, 가보자. 조용히 가나 시끄럽게 가나 도착지는 집 앞 버스 정류소다. 오늘은 조용히 가보자.’

나는 신발장 앞에서 구두를 미리 챙겨 신고 남편을 기다린다. 남편을 말리지 않고 마음대로 문을 열고 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몇 발자국 앞서가던 남편이 아파트 입구 계단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온다. 남편의 손은 따뜻하고, 얌전한 여성화 정장 구두와 묵직한 인조가죽 갈색 안전화는 오랜만에 나란히 거리를 걸어본다.

   ‘세상에 내던져진 그와 나의 삶은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도착한 버스 정류장엔 아직 사람이 붐비지 않는다. 버스가 차례대로 한 대씩 잠깐 정차한 후 우리 앞을 지나간다. 나의 시선 끝에 79번 버스가 오고있다 있다. 남편이 본사로 출근하는 날마다 이용했던 버스. 다섯 정거장만 가면 도착했던 진양빌딩 안에 남편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 정류장 전광판을 바라본다. 129번 5분 후 도착, 34번 8분 후 도착이라는 빨간 글자가 보인다. 평소 잘 신지 앉던 구두를 신었더니 서 있기가 불편해 버스 정류소에 설치된 의자에 앉는다. 어차피 타고 갈 버스는 없고, 남편의 발걸음이 돌아설 때 일어나면 된다. 졸린 눈을 잠시 감는다. 가방 위로 포개어 놓은 손을 누군가 잡아서 눈을 뜨니 남편의 손이다. 나를 일으켜 세워 발걸음을 좀 더 도로 쪽으로 이동하더니 도착한 79번 버스에 오른다. 나는 멍하니 같이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가방 속 카드를 꺼내 요금을 지불한다. 한참을 남편을 바라본다.

   “순옥아, 오늘은 같이 회사에 가는 거야?”

남편은 정확히 다섯 정거장 앞 진양빌딩 정류소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남편이 앞서 천천히 내린다. 버스에서 내려 남편이 다시 손을 잡는다. 나는 눈물이 차오른다. 남편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들어 쳐다본 아침 하늘이 파랗다. 잊고 싶었던 그날의 하늘처럼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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