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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Oct 13. 2023

어느 날  옥수수

말이  품은 마음 7

   따라락. 따라락.

카타 칼 손잡이를 눌러 올렸다 내렸다 반복한다.  진동과 함께 엄지손톱 끝으로 느껴지는 작은 흔들림이 규칙적이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건지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건지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 엄지손가락은 나의 신체와 분리된 듯하고, 이제 내가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 칼날을 앞으로 확실히 뺀 다음 혈관이 그물처럼 엉켜있는 손목을 내려다보며 피부를 가른다.

   “리스컷”

칼이 지나간 곳에 시선을 두고 기다린다. 잠시 후 빨간색 액체가 점선처럼 몽글거리며 생기더니, 점선은 직선을  이루고 한데 모여 점점 굵어지는 빨강의 액체 만든다. 그리곤 책상 유리 위로 뚝, 뚝, 뚝, 떨어진다. 이어서 느껴지는 손목의 고통. 하얀 휴지를 뭉쳐 아래로 떨어진 빨간 피와 손목 위의 피를 닦아낸다.

   ‘내가 살아있구나! 나는 아직도. 오늘도. 살아있다. 여전히.’


    멀리 보이는 산의 색이 짙은 녹색으로 변해가는 5월. 아직 봄이어야 하는 5월은 여름처럼 덥다. 등교시간에 맞춰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엄마를 찾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잠깐. 아름아, 기다려 봐. 어머, 세상에 너는 안 덥니? 오늘도 긴 팔 블라우스를 입었네?”

   “네. 엄마, 차량 올 시간이에요. 갈게요.”

   “어? 그래. 빨리 가. 내일은 꼭 하복으로 입어. 이젠 날씨가 더워. 긴팔은 답답해 보이잖아. 알았지?”

   “네.”

노란색 통학 차량이 멀리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잊지 않고 서 있어야 할 시간 오전 7시 24분. 장소는 로터리 꽃 가게 옆 편의점. 차량은 나와 거리가 가까워지고, 차 문을 열어 기사님께 인사한 후 앞쪽 보조석에 앉는다.

   “아름이는 한 번도 등원 차량 시간에 늦질 않는구나. 공부도 잘할 것 같은데…. 하하.”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웃어 보인다. 기사님의 말씀이 마법의 주문이었으면 좋겠다.

   '수리수리 마수리. 이루어져라. 이루어져라.'

내가 꼭 해야 하는 것과 잘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오랜 시간 나는 그런 것들을 다 해내고 있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 늘 하고 싶은 게 많고, 잘하기도 하는 내 주변의 아이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무엇이든 힘들고, 어렵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세상의 기쁨은 나를 피해 다른 이들에게만 존재하는 것 같다.     

   통학 차량에서 내려 교문을 향해 걷는다. 같은 차를 탔고 목적지도 같지만, 함께 했던 그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고, 학교 근처에 도착한 차에서 모두가 내려 각자의 속도로 교문을 향해 걷는다.

   ‘내가 저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걸까? 저들이 내게 존재하지 않는 걸까? 흥미나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을 무관심이라고 한다. 그럼, 그 누구도 내게 마음이 끌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한 내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도 있을까?’

문을 열어 교실로 들어선다. 교실에서도 나와 인사를 나누는 아이들은 없다. 조용히 걸어 맨 뒷좌석 내 자리를 찾아 앉는다. 뒤에서 바라보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곤거린다. 나는 왜 모든 아이들이 죄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모두가 나를 힐끔거리며, 나에 대한 나쁜 말을 하는 것 같다. 막연한 불편함과 불안함을 벗어나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 끝 화장실로 향한다. 페인트 자국과 물이 튀어 자국처럼 말라버린 지저분한 화장실 거울 속에 나를 비춰본다. 무겁게 이마를 덮고 있는 검은 앞머리, 크지 않은 눈, 높지 않은 코, 두껍지 않은 입. 나는 진짜 이렇게 생겼을까? 다른 사람들 눈에도 내가 거울로 보고 있는 내 모습으로 내가 보일까? 다른 모습의 내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나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수도꼭지를 돌려 흐르는 물을 손에 가득 받아 손바닥으로 거울을 씻어 본다. 물이 묻은 거울엔 더 흐릿한 모습의 내가 있다. 꿈인지 현실인지 멀게 들리는 학교 종소리. 나는 눈을 감는다. 감은 눈을 다시 떴을 땐 다른 모습의 내가 서 있을까?

   “야, 최아름. 너 거울 앞에서 눈감고 서서 뭐 해? 자니?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뭐 하는 거야. 백설공주 놀이 그만하고. 담임 선생님이 너 빨리 오래.”

교실로 돌아와 수업을 듣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선생님의 말. 친구들은 뭔가를 책에 쓴다. 한 여름 뜻을 알 수 없는 매미의 울음소리 같은 선생님들의 말들을 공기 중에 흘려보낸다.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나는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내가 도착한 기억은 내가 승인되지 못한 공간의 첫 기억 속이다. 4월과 5월 벚꽃으로 눈부시던 초등학교. 수업 시작 종소리에 교실로 뛰어가고 있지만, 작고 어렸던 내게 운동장 끝 쪽에서 교실 입구는 꽤나 멀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이동하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던 날이다. 모든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간 뒤 햇살이 창문을 비춰 복도 바닥엔 일정하게 기울어진 빛과 그늘의 규칙적인 공간이 있고, 창밖으로 만개만 벚꽃이 바람에 소복소복 후두둑 후두둑 함박눈처럼 떨어지던 그 복도 끝에 서있던 나는 갑자기 달리고 싶었다. 복도를 달리며 빛과 그늘이 순서대로 눈에 비쳐오던 감각과 머리카락 사이를 스치던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꿈결 같던 그 순간 나를 깨운 건 담임선생님이셨다. 교실로 들어가려던 담임선생님께서 복도를 달리고 있는 나를 보고 화를 내셨다.

   “아름아, 복도에서 달리면 안 된다고 했지?”

   “왜요?”

   “아름이가 오늘처럼 세게 달리다가 다른 친구들이랑 부딪치면 친구도 아름이도 많이 다치기 때문이지.”

   “아, 그렇다면 지금은 괜찮아요. 복도에 아무도 없었어요. 선생님 저길 보세요. 너무 예뻐서 뛰고 싶었어요.”

   “최아름, 너 그럼 다음에도 또 뛰겠다는 말이야?”

선생님은 목소리와 얼굴 표정이 점점 더 무거워지셨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순 없었고,

   “아마, 다음에도 뛸 것 같아요.”

라고도 대답할 수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엄마는 내게  화가 나 있었다. 담임선생께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아름아, 복도에서 뛰지 않는 건 당연한 거 아니니? 상식 아니야? 학교 내 규칙이니까 학생은 학교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 거야. 엄마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니? 선생님께서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겠어?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다고 생각하시겠지. 엄마가 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

나는 그때 나의 행동 어디가 잘 못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솔직했다는 것이 실수인 것 같다. 잘 못한 게 없어도

   ‘죄송합니다. 네.’

라는 말을 빨리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끝난다거나, 지나간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나는 그때부터 이상한 아이가 되기 시작했을까?’

초등 5학년 때, 엄마는 이제 수학이 산수가 아닌 진짜 수학이 되는 첫 학년이라고 말했다.

   “아름아, 엄마는 늘 공부를 잘했어. 열심히 하면 너도 잘할 수 있어. 초등학교, 중학교 수학은 절대 어렵지 않고, 문제집 몇 번 풀고 시험 치면 다 백점 받는 거야. 아름아, 수학은 선행이 중요해. 수학, 영어만 잘하면 다른 과목은 다 쉬워. 아름이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도 가고 취업도 빨리 해서 멋지게 살아봐야지.”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주부다. 학창 시절 엄마보다 공부를 못 했던 엄마의 친구들이 교사가 된 것도, 은행 부 지점장인 것도 말이 안 된다며 싫어했다. 그래도 엄마 친구들 중에 남편 직업은 아빠가 제일 좋다며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엄마는 나도 엄마의 멋진 배경이 되길 바랐고 지금도 바라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된 과외. 엄마는 공부가 쉽다고 했지만, 나에겐 그때도 지금도 공부는 어렵다. 초등학교 6학년,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쉽다던 수학과 영어는 내겐 어려웠다. 6학년 수학을 하며 중학교 수학을 같이 배웠다. 과외 선생님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은 나의 성적표를 보며 엄마와 상담할 때면 늘

   “어머니, 아름이가 머리가 좋은데, 실수를 좀 했네요. 예민해서 긴장을 했나 봐요. 호호. 초등 6학년 성적은 어디 써먹을 곳도 없어요. 두고 보세요.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아름인 우등생 대열에 있을 거 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의 예상과 엄마의 기대는 빗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나의 약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약점을 보완해서 약점을 없애려고 했다. 시험을 대신 쳐 줄 수 있다면 엄마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께 물었다.

   “엄마, 공부는 왜 해야 해?”

   “그럼, 안 할 거니?”

   “꼭 잘해야 해?”

   “그럼, 이왕 하는 거 잘해야지. 우리나라는 공부 못하면 할 게 없어. 공부 못하면 큰 일 나는 거야. 아름아, 뭐든 맘을 먹기 달렸어.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날도 너무 더워 아무것도 하기 싫던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하는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열심히 하고 있는 공부는 하면 할수록 쉬워지지 않고, 학년이 올라 갈수록 문제집 권수는 늘어가고 풀어야 하는 문제들은 어렵기만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같았다. 빛이 희미한 터널에서 엄마의 말은 표지판이었다. 엄마의 표지판은 우등생이라는 한쪽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잘 나오지 않는 성적은 내게 계속 좌절을 안겨 줬고, 엄마는 늘 내가 다음 시험에선 성적을 올릴 거라고 말했고, 그런 미래를  나보다도 기다리고 소망하며 꿈꿨다. 엄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을까?


   다시 여름.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밖으로  내보여야 하는 여름이 싫다. 세탁기의 세탁 종료 알람이 울린다. 엄마가 베란다로 나가 나의 춘추교복들을 탈탈 털어 옷걸이에 끼워 빨랫줄에 난다. 나는 내 방 창문으로 멍하니 옷걸이에 끼워져 바람에 움직이는 긴 팔 블라우스를 바라본다.

   ‘내일, 마르지 않은 교복이라도 걷어서 입을까? 그럼 이상한 아이가 되겠지?’

베란다 쪽으로 열려있던  내 방 창문을 닫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름아, 잠깐만. 교복 한 번 보자. 요즘 키가 많이 컸던데, 하복 치마 길이 어때?”

엄마가 식탁을 치우다 말고 현관으로 빠르게 걸어 나온다.

   “얘가 덥다니까. 교복 위에 카디건 입었네. 소매라도 걷어 입어. 더워 보인다니까.”

엄마가 갑자기 내 팔을 잡아 카디건 소매를 잡고 위로 걷어 올린다.

   “최아름. 도대체 이게 뭐야?”

나는 당황해서 그대로 몸을 돌려 집을 나온다. 놀라서 달리는 나의 다리보다 빨리 뛰는 심장박동. 통학차량이 오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사이즈가 가장 큰 일회용 밴드를 구입해서 손목에 붙인다. 여름이 싫다. 휴대폰이 ‘드르르 드르르’ 진동한다. 엄마다. 전원 버튼을 눌러 휴대폰의 전원을 끊다. 엄마가 조용해진다.     

   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나가니 엄마가 계신다. 나를 발견한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하늘 위를 비행하던 매가 작은 새를 잡아채가듯 나의 손목을 꽉 잡고 자동차를 탄다. 운전하고 있는 엄마의 화가 쏟아진다.

   “최. 아. 름. 너 손목에 무슨 짓이야? 뭐냐고?”

   “죄송해요.”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너 부모한테 엄마한테 이게 할 짓이야? 내가 너를 학대를 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너를 키웠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니?”

   “아무도 몰라요. 엄마가 처음이에요.”

   “언제부터 그런 거야?”

   “얼마 안 됐어요. 올 4월요.”

    ‘집에 도착해 식탁에 엄마와 마주 앉아있는 나는 내가 맞겠지? 왜 의자에 앉아 있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을까?’   

   “공부 때문에 그러니? 공부 때문에 그런 짓을 할 만큼 열심히는 해 봤고?”

   “잘 모르겠어요.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닌데 왜 숨기니? 너도 마음속으로 켕기는 게 있으니까 숨기는 거잖아? 떳떳하면 숨겼겠어? 네가 하는 말이 대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엄마는 내가 하는 대답과 행동을 늘 오답이라고 한다.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엄마의 정답들이 나를 향해 뿌려지고 쏟아진다. 엄마는 내가 앞으로 지켜야 하는 것, 지금부터 생각해야 하는 것들의 항목들을 말한다. 나는 엄마의 말들을 여름철 매미울음소리처럼 하나도 기억하지 않은 채 흘려보낸다. 나는 엄마의 끈에 묶인 인형 같다. 나의 능력을 벗어난 목표를 위해, 엄마의 멋진 배경이 되기 위해 애쓰는 시간들이 있어야 올바르고 착한 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엄마가 조용하다는 건 내가 대답을 해야 하는 순서와 순간이라는 것이다. 반사적인 대답이 나온다.

   “이제 그런 나쁜 짓 안 할 거 에요.”

   “정말이니? 이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는 거다.”

   “네.”

엄만 더 이상 내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식탁에서 의자를 밀어내고 일어선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침대에 눕는다. 치부가 드러난 짐승들은 자신의 몸을 낮게 움츠려 온 힘을 다해 조용히 숨어 잠이 든다.

나는 눈을 뜬 걸까? 눈을 감은 걸까? 사방이 어둡다. 나는 죽은 걸까? 살아있는 걸까? 베개 밑에 둔 카타 칼을 꺼내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 또다시 반복된

   ‘리스컷’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나. 육체와 분리된 나. 죽음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덮친다.   

  ‘육체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

칼날의 뾰쪽한 부분이 스쳐간 자리에 남은 손목의 아린아픔. 불을 켰다. 손목을 타고 내리는 붉은 액체. 휴지를 찾아 손목을 얇게 덮어 본다. 하얀 휴지 위로 점점 커지고 축축해지는 빨간 액체. 휴지를 더 뽑아 두껍게 손목 위에 두고 반대편 손목은 상처 난 손목을 누른다. 휴지 위에 둔 손에 더 힘을 주어 누른다.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심장보다 손목이 높게 위치하도록 한다. 피가 멈추길 기다린다.

   ‘아직은 살고 싶다.’


  오답이 가득한 나의 시험지. 뭐든 자꾸 틀렸다고 하니 뭔가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뭐든 하고 나면 틀려서 다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지고, 주변에선 노력이 부족아이라고 부른다. 내게 이런 식으로 계속 생활하면 ,

   “희망이 없다. 답이 없다. 정신 차려라.”

라고 말한다. 내가 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체크하는 사람들 속에 나는 침착되어 간다.


   햇살은 뜨겁고 흙먼지가 날리고 반 아이들과 이리저리 섞여 날아오는 공이 보이지도 않는다.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라 아이들의 무리가 움직이는 데로 몸을 움직인다. 그렇게 몇 번을 이리저리 휩쓸려 옮겨 다니고 있으니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우연히 공에 맞은 아이, 공을 자신 있게 잡으려다 실패한 아이들이 공간에서 사라지고 남아있는 우리를 벽처럼 에워 쌓다. 하얀 네모 테두리 안에 남아있는 우리 반 아이들이 다섯 명. 공이 우리 쪽으로 넘어와 땅에 맞고 벽처럼 서있던 아이가 잡는다. 같이 벽처럼 서 있던 아이들끼리 공을 허공으로 이리저리 날린다. 벽처럼 둘러싼 아이들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한다. 멈추지 않고 커져만 간다. 거인만큼 커져 나를 내려다보는 아이들. 현실이 아니라고 체육시간이라고 정신 차리라고 마음속으로 나에게 말한다. 어지럼증과 구토감이 느껴진다. 신발 아래서 긁히듯 느껴지는 운동장의 끌끌거리는 마사토 소리리가 내 귀엔 너무 크게 들린다. 그러더니 내 두 발이 땅에 단단히 붙어버린다. 날아오는 공.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온몸이 단단히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공이 날아온다. 팔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 얼굴로 공이 날아온다. 공이 점점 커진다. 굳었던 온몸에 힘이 풀린다. 바닥으로 주저 앉는다.


   눈에 가득한 하얀 천장, 얼굴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려 본다. 보건실이다. 몸을 일으키고 신발을 찾아 신는다.

   “일어났니?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네.”

   “교실로 돌아갈 수 있겠니?”

   “네.”

복도를 걸어 교실로 향한다. 복도가 점점 길어진다. 걸음을 멈춘다. 가만히 기다린다. 길어지고 커진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통학 차량에서 내린 나는 교문이 있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확신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병원에 가야겠다. 집 앞 정신건강의학과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들어가 병원 소파에 앉는다. 접수대로 나오는 간호사 언니들이 나를 손짓으로 부른다.

   “처음이세요? 여기 종이에  체크된  사항을  적고 접수하세요.”

이름과 주소 연락처 생년월일을  적어서 접수를 한다. 진료실로 들어간다.

   “아름아, 보호자가 계셔야 검사할 수 있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 어머니 같이 안 오셨니?”

   “네, 엄마가 안  계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나요?”

   “그런 건 아닌데, 전화로라도 보호자의 동의는 필요해. 엄마 출근하셨니? 통화는 가능하시니?”

   “네, 집에 계실 거 에요.”

   “그럼 휴대폰으로 전화해 볼래. 오시는 게 더 좋겠다.”

엄마께 전화를 걸어 의사 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스피커 기능으로 바꾼다.

   “어머님, 여기 좋은 정신건강의학과입니다. 아름이가 진료 신청했는데, 혹시 오실 수 있을까요? 미성년자라서 기본 적인 몇 가지 검사라도 진행하려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합니다.”

   “네, 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아름이가 거기 있다 구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진료실을 나와 접수대 소파에 앉아 엄마를 기다린다. 잠시 후 엄마가 문을 열고 오셨고, 진료실에 나란히 앉아 엄마의 동의 아래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된다.

   “검사 결과 이인증 장애입니다. 감정, 행동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자각이 상실된 상태입니다.”

라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 엄마는 처음엔 화가 난 듯 보이다가 이젠 슬픈 것 같다. 내가 병에 걸려 슬픈 건지, 내가 엄마의 기대만큼 자라주지 않는 것에 대한 현실이 슬픈 건지, 나 때문에 병원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슬픈 건지 나는 물어보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나’때문인 건 변함이 없다. 정신병은 뇌가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뇌와 마음 둘 다 병든 것이라는 대답을 들을까 봐 무섭다. 두 개 중 하나는 병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은 학교에 처방전을 내고 집에서 쉬기로 한다. 손목에 붙어있는 밴드와 처방전, 약봉지에 든 약을 내려다본다. 학교에 서류를 제출하면 나는 내일부터 정말 이상하고 미친 아이가 되어 버린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조건을 충족한 결과물들을 조용히 책상 위에 올려둔다.

   ‘이 약만 먹으면 잘 외워지지 않는 영어단어가  쉽게  외워지고, 이해되지 않는 수학이 문제들이 술술 풀릴까? 지금은 병이 든 상태라서 집중을 못하는 거니까 병만 나으면 나는 똑똑한 우등생 되는 거야? 그럼 나는 정답이 가득한 아이가 되는 걸까? 나의 모든 대답이 옳음으로 가득하다면 나는 행복할까?’


   학교는 쉬었지만, 학원은 가라는 엄마의 말에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온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 나무는 비가 내려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우산을 접어 바닥에 둔다. 나는 나무가 되어 본다. 거친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에 젖어 점점 차가워져 내 몸에 붙어가는 옷과 빗물로 질척거리고 무거워지는 운동화.

   “어머, 아름아. 너 뭐 하니? 한참 전에 학원 마쳤잖아? 다 젖었네. 아름아. 내 말 들리니?”

퇴근하던 학원 선생님께서 나를 흔든다. 나는 나무다. 나는  나무다.  움직일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 아름이 영어학원 선생님입니다. 아름이가 비를 맞고 서 있어요. 꼼짝을 안 해요. 어머니께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나무도 될 수가 없다. 나는 뭐가 될 수 있을까?


   학교와 학원을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날이 잦아진다. 엄마는 나를 보면 늘 한숨을 쉰다. 엄마의 깊은 숨소리. 엄마는 나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 엄마의 긴 숨소리에 전해져 오는 실망감. 오늘도 늦게 일어나 통학 차량을 놓쳤고, 다시 잠든 나는 점심이 되어야 일어난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수면시간이 늘어난다. 오늘도 학교는 쉬었지만, 학원은 다녀오라고 엄마가 말했다. 후드 점퍼를 입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로터리에 설치된 여러 개의 신호등.   바다 위 무인도처럼 도로 중앙에 놓인 보행자 대기 공간.  그  무인도  같은  공간에 서서 멈춰 선 차들과 달리는 차들을 바라본다. 다들 목적지로 향해 달리고 멈추고, 방향지시등을 깜빡인다.  여기저기로 방향을 바꾸며  다린다. 달려오다  멈추기도  한다.  나의 시간들은 왜 한 방향 밖에 없을까? 차도 이렇게 여러 방향으로 달릴 수 있는데 말이다.  엄마가 나에게 얘기하는 인생 방향은 한 가지밖에 없다. 곧 고등학교 입학이고 3년 후엔 대학 원서를 쓴다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다. 나의 목적지가 대학 입학이라는 한 가지 방향 밖에 없을까? 초록색 보행자 신호가 여러 신호등에서 위치와 순서를 바꿔 가면 켜졌다 꺼진다. 누구에겐 진행의 신호가 껴지고, 동시에 누구에겐 멈춤의 신호가 껴지기도 한다. 엄마는 늘 내게 달려야 하는 신호만 준다. 멈춰서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신호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른 신호는 돌아가는 방향이고, 실패할 확률이 많은 길이라고 한다. 엄마가 얘기하는 길은 지름길이고, 그 길 끝엔 꼭 행복이라고 너는 그쪽으로 멈추지 말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걸으면 달리는 누군가에게 나의 행복을 뺏길 수 있으니 걸어선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이 힘겨워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 몇 번의 녹색 신호가 내 앞에 켜졌다 껴졌을까? 내가 이곳에 서 있기 시작했을 땐 분명히 하늘의 색이 파란색이었는데, 이젠 사방이 어두워지고 간판의 전등불빛이 선명 해 졌다. 신호등 주변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진 공간 때문에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으로 움직이고 있는 카타 칼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에게 서 분리된 또 다른 내가 로터리 신호등에 서있는 나를 보고 있다.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한다. 바닥에 초록색신호가  켜지고 옆 사람이 움직인다. 나는 그를 따라 다리를 움직여 걷는다. 건널목은 언제 끝나는 거지? 점점 길어진다. 서  있을 수가  없다. 계단이 보인다. 카타 칼 소리 따라락, 따라락, 점점 크게 들리는 소리 칼을 꺼낸다. 어두워진 주변 공간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손목. 갑갑하다.  후드 모자를 뒤로 젖힌다. 꿈인가? 눈을 힘주어 감았다 다시 뜬다. 내가 식당 옆 계단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계단이  또렷이  보인다.  의식이 돌아온다. 주위가 어둡다. 천천히 일어나서 손에 들고 있던 카타 칼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학원가는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걸어왔구나. 집으로 갈까?’

몇 걸음 걸었다. 바람이 없는데 비닐봉지가 움직인다. 촤르륵, 촤르륵.

   ‘내가 또 잘못 보고 듣는 거겠지.’

라고 생각한다.

   “야옹. 촤르륵, 촥. 촥.”

   “야아 옹.”

분명 검은 비닐봉지가 움직인다. 바람이 없는데. 나는 걸음을 옮겨 비닐을 가만히 바라본다. 다시 비닐이 움직인다.

   “야옹.”

   ‘세상에. 세상에. 고양이가ᆢ살아있는 고양이다.’

내 심장 소리가 커지고, 카타칼로 비닐 매듭을 자르고 있는 손이 떨린다.

   ‘혹시나 내 칼에 아기 고양이가 다치기라고 하면 안 되는데….’

카타칼을 꺼내 묶여 있는 비닐의 매듭을 조심스럽게 자르고 남은 부분은 손가락으로 풀어본다. 작고 노란 새끼고양이의 얼굴이 보인다. 힘이 없어 늘어져 있다. 죽을 것 같다. 급히 생각난 근처 동물병원으로 달린다.

   ‘야옹아, 살아야 해. 야옹아, 살아야 해.’

조심스레 아기 고양이를 품에 꼭 안고 멈추지 않고 달린다.

   “고양이가 죽어요. 어어. 고양이가 죽어요. 빨리요. 선생님. 빨리요.”

간호사언니가 나를 진료실로 안내한다. 수의사 선생님은 고양이를 데리고 치료실로 들어가신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흐리며, 엄마를 기다린다. 진료실에서 나온 엄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학원가라고 했더니, 엉뚱한 곳에서 아기 고양이를 주웠구나. 이제 어쩔 생각이니?”

   “고양이는 어떻데요?”

   “영양상태가 좋지 않지만, 수액 맞고 당분간 영양식과 분유 사료만 잘 챙겨 먹으면 건강 해 질 거래. 그런데 너는 언제 건강해 질거니?”

   “.....”

   “병원비는 엄마가 계산했고, 고양이가 좀 더 건강해지면 구청에 신고해서 데려가기로 했다.”

   “엄마, 제가 고양이 키우고 싶어요.”

   “뭐?”

   “제가 키울게요. 부탁해요. 새끼 고양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 죽지 않도록 지키고 싶어요.”

엄마는 나를 한 참 바라본다. 엄마는 아빠께 전화를 걸어 상의한 후,

   “아름아, 저 고양이 엄마는 절대 돌봐 줄 수 없다. 엄마는 동물을 아주 아주 싫어해. 네가 전적으로 돌봐야 해. 그리고 아름이가 학교에 지각도 결석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허락해 주는 거야. 약속을 어기면 엄마도 고양이를 집에서 내 보낼 거다. 지킬 수 있겠어. 이건 너와 나의 계약이야.”

   “학원은요? 학교와 학원 모두 다니면 고양이를 돌봐 줄 시간이 없어요.”

   “그래, 학원은 당분간 쉬자. 어차피 수업도 잘 안 들어서, 안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긴 하니까. 너 사춘기를 너무 요란하게 보낸다는 생각은 안 드니?”     


   내가 구한 아기 고양이 이름은 옥수수다. 예전에 엄마가 검은색 비닐봉지에 노란 옥수수를 시장에서 사 오신 기억이 갑자기 나서 까만 비닐 속에 노란 털을 가진 새끼 고양이 이름을 옥수수라고 지었다. 건강해진 옥수수가 내 침대에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나는 아기 고양이 젖병과 분유를 책상 위에 두고 휴대폰 알람을 맞춰가며 수유를 한다. 내가 귀여운 옥수수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노크하듯 톡톡 눌러주면 노란 똥이 쭉 하고 나온다. 나는 물티슈로 똥을 깨끗이 닦아준다. 내가 잠이 들면 내 베개 옆에서 옥수수는 몸을 말고 잔다. 잠에서 깬 옥수수는 나만 따라다닌다. 내가 한 모든 행동은 옥수수에겐 정답이고 옳음이다. 나를 바라보는 옥수수에게 나는 틀린 적인 없다. 나로 가득한 옥수수가 우리 집에 온 날부터 나는 나에게서 분리된 적이 없다. 옥수수는 이제 캣 타워를 올라 다니고, 고양이 화장실에서 오줌과 똥을 싸고 뒷발을 이용해 모래로 똥을 덮는다. 똥을 싸고 나면 거실과 소파 위를 우다닥 뛰어다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딱 멈춘다.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는 듯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런 옥수수를 쓰다듬으며 나는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학교 숙제를 하고 있는 내 무릎 위에서 잠들기도 하고, 공책 위에서 움직이는 샤프를 손으로 잡으려고 짧고 작은 손을 샤프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보고 있는 교과서 위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옥수수는 내가 지킨 생명이다. 옥수수를 보고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비닐을 자르면서 길바닥에 두고 온 카타 칼은 그날 이후 한 번도 찾은 적인 없다. 내 손목의 피를 이용한 내 삶에 대한 자각 행위는 사라졌다.

   “엄마, 나 사육사가 되고 싶어요. 이번 방학 때 근처 미니 동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싶어요.”

   “아름아, 사육사보다는 수의사가 좋을 것 같다.”

   “엄마, 나는 수의사 할 만큼 공부를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육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내 능력을 평가하여 나에게 맞는 삶의 목적지를 정했다. 목적지를 정하고 나니 가야 할 방향들이 나온다. 이젠 달려야 할 속도와 멈춰야  할 시간을 내가 정한다. 명확해진 나의 길은 걷거나 달리기도 쉽다. 힘들면 쉬기도 한다. 모든 오답은 나의 결정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뿐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답 투성이었던 그날의 발걸음은 옥수수를 만나기 위한 정답을 향한 길이었다. 앞으로 나의 모든 오답은 정답을 찾기 위한 힘찬 발걸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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