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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Oct 14. 2023

어머니의 홍시

말이 품은 마음 9

    역시 여행의 재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간식이다. 새로 구입한 연두와 갈색이 섞인 점퍼는 알록달록 가을 단풍잎과 잘 어울린다. 따뜻하게 구워진 감자 통구이를 종이 그릇에 담고 설탕을 가득 뿌린 후 “가을 레저 동호회”라고 적힌 관광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는다. 홀로 여행을 오니 홀가분하니 자유롭고 좋다. 이 자유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 무음으로 휴대폰을 설정한다. 노랗게 잘 구워 설탕이 뿌려진 달콤한 감자를 입 속에 넣어 씹는다. 젊은 남자 2명이 얼굴에 웃음을 띠고 캔 커피를 들고 내게 온다.

   “안녕하세요. 혼자 오셨어요?”

여자 꼬시는 방법이 좀 올드하다고 생각한다.

   “네.”

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이어폰을 찾아 귀에 넣고 휴대폰 음악 소리를 높이고 달리는 창밖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창에 비친 두 남자는 내게 무슨 말을 더하려고 했지만, 나의 냉랭한 반응에 자기들 자리로 돌아간다. 창으로 비친 남자들 좌석 앞에 앉은 아가씨들이 나를 쳐다보며 귓속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여자들의 질투가 느껴진다.     

   ‘내가 예쁘긴 하지!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이 찜한 남자들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공짜로 줘도 나는 싫다.’

달리는 차 안의 일정한 흔들림과 잔잔히 흐르는 음악소리에 나는 까무룩 잠이 든다.


   얼마 후 주왕산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배낭을 찾아 어깨에 메고 고속버스에서 내렸다. 밀폐된 버스 안에서 내려 공기가 찹찹한 바깥공기를 마시니 상쾌하다. 오래 차를 타서 몸이 찌뿌둥 하다. 기지개를 켜고 안전한 산행을 위해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 주차장에 내려 주변을 살펴본다. 절 주변의 빨간 단풍은 파란 하늘과 어울림이 좋고, 멀리 보이는 주왕산은 단풍이 절정이다. 몇몇 사람들이 몸이 약해 보이시는데 혼자 산행해도 괜찮으냐고 물어 온다. 나는 아무 문제없다고,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여러 사람과 섞여 주왕산 산행 초입 길을 걷는다. 길은 잘 다듬어져 있고 길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조금 더 걸으니 유명한 주왕산 바위 협곡이 보이고 계단이 시작된다. 앗, 몸이 앞으로 기울더니 바닥이 갑자기 가까워진다.

눈앞에 보이는 협곡의 풍경에 정신 팔려 계단을 헛디뎌 중심을 잃어 발목을 접질렸다. 앉아서 일어서지 못하는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발이 너무 아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나는 눈물이 줄줄 흐른다. 넘어진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인고, 한 분이 내게 괜찮은지 물으며 내 발을 만져보려고 한다.

   “아야, 아파요. 만지지 마세요. 아앙, 아아, 아파요. 너무 아파요. 못 걷겠어요.”

버스 안에서 창문으로 봤던 아가씨들이 큰일 났다며, 남자들에게 119를 불러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젊은 여자가 내 옆으로 다가와 쪼그리고 앉는다.

   “할머니 조금만 참으세요. 신고했으니 곧 구급차가 올 거예요. 이런 곳에 왜 혼자 오셨어요? 다치면 위험한데.”

라며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발목이 너무 아파서 대답하는 것도 귀찮았다. 잠시 후 구급대원이 도착했고 응급처치 후, 들것에 나를 눕히고 구급차에 태운다. 팔에는 링거가 꽂혔고, 마음이 안정된 나는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잠이 든다.


  “어머니가 진영 휴게소에서 갑자기 사라지셨어요. 아내와 휴게소 화장실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안 계신 거예요. 너무 깊이 주무셔서 깨우지 않고 우리만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어머니가 사라지셨어요. 전화기에 발신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안 받으세요. 납치되신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자자, 진정하세요, 어머님 신상정보를 자세히 기록해 주시고 실종되던 당시 정황도 자세하게 기록해 주세요. 최 주임은 인근 병원 기록이랑 119에도 신고된 거 있는지 확인해 보고 진영 휴게소에 주차장 씨씨티비를 보여 달라고 업무 협조 전화해.”

나는 계속 손이 떨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이라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분명히 차에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보호자님, 연락 왔습니다. 지금 청송 보건 의료원에서 어머니 소재가 파악되었습니다.”

   “예? 청송요? 거기에 어떻게 계신 거예요?”

   “그건 저희도 모르고요. 적어주신 인적사항과 보여주신 사진의 얼굴과도 동일인으로 파악됩니다. 우선 그쪽으로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차를 몰고 청송으로 향한다.

   ‘세상에 청송에 계신다고? 어머니가? 왜, 도대체 어떻게 가 신거지?’

발목 깁스를 하고 누워 계신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신다. 깨워서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모두 잠든 상태고 어머니도 깊이 잠드셨다. 보호자용 간의 침대를 꺼내 어머니 침대 아래 누웠다. 아내에게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지치고 무거운 몸을 눕힌다.      


   다음 날, 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왜 고속버스를 타셨는지 물었지만, 어머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대답만 하신다. 어머니는 부산대학종합병원에서 치매 검사를 받았다. 어머니는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 이제 형이랑 저희 집에서 두 달씩 모실게요.”

   “아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우리 홍시는 어쩌라고? 너희 둘 다 아파트라서 우리 홍시 짖으면 못 짖게 수술하라고 할 거잖아. 나는 잔인하게 우리 홍시 수술 못 해. 저 불쌍한 걸 왜 목소리를 못 내게 수술을 해야 하니? 내가 데리고 있으면 되는데. 그리고 나 멀쩡해. 봐라. 아침에 밥도 내가 직접 해 먹었잖니. 그날만 잠깐 정신이 나간 거였지. 내가 약도 잘 챙겨 먹고 하면, 아무 일 없을 거다.”

   “어머니, 그러다 큰 일 날 수도 있어요. 고집부리지 마세요. 지금 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홍시는 나에겐 가족이다. 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가 우리 홍시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다. 홍시가 있어서 네 아버지, 그렇게 보내고도 내가 살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홍시 없으면 안 된다. 홍시 때문이라도 내가 정신 붙잡고 있을 거다. 걱정 마. 그리고 나는 내 집에서 편하게 혼자 지내는 게 좋아. 며느리 불편해서 싫어. 싫다고.”  


   발목 치료 후 퇴원 하신 어머닐  형과 우리 집에서 교대로 모시겠다고 해도 강하게 거절하셔서 어머니는 결국 자신의 집에서 혼자 생활하셨다. 식구들이 매일 전화로 어머니의 상태를 체크했다. 예전처럼 정신이 맑아지신 것 같았다. 발음도 정확하셨고, 한 일과 하고 있는 일에 관한 대화가 가능했다. 치매 초기이기도 하고 약효과도 좋은가 보다 싶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주말이 되어 어머니도 직접 뵙고 인사드리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어머니 댁을 방문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홍시가 짖고 있으니, 어머니도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외출하셨으면 홍시가 집에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신발을 벗으며, 어머니를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다.

   ‘어머니가 안 계시나? 잠깐 어디 가셨나?’

안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약봉지와 물 컵이 바닥에 놓여 있고, 옆에 널브러져 쓰러져 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를 급히 차에 태워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서 깨워도 눈만 뜨고 다시 주무시고, 비몽사몽 대답하시고 다시 한참을 주무시고 일어나신 어머니께,  

   “어머니, 약을 도대체 몇 번이나 드신 거예요? 과다 복용으로 정신을 잃으신 거래요.”

   “글쎄다. 내가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자꾸 먹었나 보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진규야, 내 화장대에 보면 통장이랑 카드가 있어. 치료비와 입원비에 보태 써.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우리 홍시는 우리 홍시는 누가 돌봐주지? 우리 홍시 불쌍해서 어쩌지? 내가 퇴원할 때까지만 우리 홍시 좀 부탁한다. 우리 홍시 어디다 버리면 안 된다. 우리 홍시 수술도 시키지 말고. 홍시는 매일 산책도 시켜 줘야 해. 갑갑해하거든. 통장에서 홍시 간식도 사주고. 진규야, 우리 홍시 수술 시키면 안 된다. 내 금방 정신 차려서 퇴원할 거야. 다른 사람한테 보내면 안 된다. 알았지?”      


   어머니의 의지와 기대와는 다르게 어머니의 뇌는 회복하지 못했다. 며칠 후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입원하셨다. 오늘은 면회일이다. 코로나로 면회도 쉽지 않아 병원이 지정해 준 날만 어머니를 뵐 수 있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활짝 웃으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진규야, 밥은 먹었니? 나는 언제 집에 가냐? 진규야, 나 멀쩡해. 집에 가고 싶어. 여기 너무 답답해. 집에 가고 싶어.

   “어머니, 조금만 더 계세요. 이제 제 이름도 기억해 내셨으니 곧 좋아지실 것 같아요. 어머니, 홍시 걱정은 너무 마세요. 홍시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집에서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요. 잘 짖지도 않고요. 수술은 안 했어요.”

   “호호, 진규야, 너 엄마 제정신인지 테스트하는 거야? 홍시는 먹는 거잖아. 홍시가 어떻게 누워있니? 봐라, 엄마 정신 말짱하지? 집에 가자꾸나. 네가 좋아하는 차돌박이 된장찌개도 엄마가 맛있게 끓여 주마.”

   “어머니, 홍… 시 기억 안 나세요?”

   “홍시. 기억 난 데도. 과일이잖니. 네 아버지가 참 좋아하시는 과일이지. 곶감도 좋아하시고. 아버지 점심은 챙겨 드리고 온 거지?        


나는 어머니가 잡은 손을 다시 더 깊이 잡아 드린다. 눈이 점점 뜨거워진다. 어머니는 자꾸 말씀하신다.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나 이제 멀쩡해. 아픈 곳도 없어. 약도 많이 먹지 않으마. 나 집에 가고 싶어. 그런데 진규야, 너도 나이가 있는데 이제 결혼해야지?”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나는 평소 어머니가 즐겨 드시던 따뜻하고 달달한 캔 커피를 손에 꼭 쥐여 드린다. 고이는 눈물 때문에 어머니와 마주 잡고 있는 손이 시야에서 흔들리고 흐릿해진다. 얼굴을 더 아래로 떨 군다. 눈에 가득 찬 눈물은 무거워 소매로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은  겉옷 소매 옷감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어머니의 기억도 내 눈물처럼 어디론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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