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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Oct 14. 2023

정글짐

말이 품음 마음10

   “으악~ 뭐라고? 어릴 때 이야기를 수필 형식으로 적으라고?”

중간고사 작문 수업 수행평가다. 환장이네. 해신고등학교 2학년 3반 카리스마 원 킬의 부반장 최용진의 코 찔찔 초딩 때를 적으라고? 나의 흑역사를?

거참…. 까마득한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뭘 했지?

엄마한테 받아쓰기 점수로 혼난 기억은 뚜렷하다. 지옥의 받아쓰기. 엄마는 받아쓰기 평가 하루 전날, 나를 거실 식탁에 앉혀놓고 다음 날, 있을 받아쓰기를 연습시키셨다.  3학년 형은 30분이면 끝났고, 나는 시간을 정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자꾸 틀린다고 나를 향한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도대체 몇 대였던가? 글자가 기억이 안 나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어린 나는 그때부터 엄마한테 기가 눌려 그 무섭다는 중2 시절도 여전히 엄마한테 맞고 살았다. 지금도 가끔 싱크대에 쌓아놓은 설거지랑 내 방 쓰레기들 때문에 날아오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자주 생방송 중이고, 엄마의 공격력 레벨도 상승모드다. 남은 모든 힘을 손바닥으로 모으시면서 엄마는 나이를 드시고 계신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사춘기보다 더하다는 갱년기 여성이었다. 아빠 말에 의하면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사춘기였고, 사춘기가 끝난 후 바로 갱년기가 시작된 아주 드문 케이스라고 하셨다.


   나의 초등시절 공부는 이 정도였고, 남자로 태어나 두 발로 뛰기 시작하면 바로 시작하고, 군대 가서도, 직장 생활에서도 한다는 축구는 나에겐 받아쓰기보다 더 처절했다. 형은 아빠를 닮아 뼈가 굵고 힘도 세고, 항상 또래 중에서 키도 컸다.

나는 엄마를 닮아 뼈가 가늘고 마른 체형에 12월에 태어나 키가 또래 중에서도 작았다.

축구를 하기엔 최악의 체격 조건이다. 어쩌다 체육시간에 내 앞으로 축구공이 머물면, 그때마다 아이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게 달려왔다. 미친 코뿔소 같던 키 크고 덩치 큰 아이들이 무서웠고, 공을 사이에 두고 하는 몸싸움에선 나는 늘 넘어지기 바빴다. 그중 “백민재” 새끼가 젤 최악이다. 그 새끼는 키가 큰 돼지였다. 1학년 전교에서 2번째로 크고 뚱뚱 했다.      


 8세 인생에서도 학연과 지연은 인간관계의 기본이었다. 엄마가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피아노 학원을 했기 때문에 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동창생도 없고, 동네 친구도 하나 없는 생뚱맞고 외로운 안동초등학교로 입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의 상황은 어린나무가 안전하게 뿌리내릴 흙이 없는 화분에 담겨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그런 나를 백민재는 완전 만만하게 봤다. 그 녀석은 안동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친구가 많았다. 안동 초등학교 부속 어린이집을 출발로 안동 초등학교 부속 유치원을 졸업했다. 인맥이 사방팔방으로 뻗은 미친 거미줄이다. 그래서 축구할 때도 나를 일부러 자꾸 넘어뜨린 것 같다. 굳이 몸싸움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어깨나 팔로 나를 밀었다.

   ‘내 참, 다시 생각해 보니 진짜 나쁜 새끼네로구만.’     


  우리 반에는 1학년 전교에서 제일 키가 큰 “김찬혁”도 있었다. 찬혁이는 지적장애인이었다. 찬혁이는 수업시간에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교실을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루한 수업보다 찬혁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훨씬 집중을 잘했다. 선생님은 반 친구들이 찬혁이를 차별하지 않고, 다들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찬혁이의 짝지를 주기적으로 바꾸셨다. 짝지가 된 아이들은 자리를 옮길 때까진 찬혁이의 도우미 역할을 해야 했다. 모든 아이가 따뜻하게 찬혁이를 도와주진 않았다. 찬혁이는 수업시간과 급식시간에 늘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중 백민재는 유독 찬혁이를 싫어해서 눈에 띄었다. 학생식당이 따로 없는 우리 학교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식판에 급식을 받아 자기 자리에서 먹었다. 밥을 유난히 늦게 먹는 찬혁이와 짝지가 된 아이는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기를 포기해야 한다. 점심시간만 되면 최대한 밥을 입에 마구 쑤셔 넣고 축구하러 나가야 하는 민재에겐, 시간 개념 없이 느긋하게 먹는 찬혁이는 생지옥이었을 거다. 선생님께서 가끔 점심시간에 교실에 비우 시면,  날이면 찬혁이에게 밥 빨리 먹으라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가끔은 몰래 때리기도 했다.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반 아이들은 놀이동산의 회전 커피 잔 놀이 기구처럼 돌고 돌아 찬혁이와 짝이 되었다. 나도 찬혁이와 짝이 되었고, 반에서 젤 작은 나와 전교에서 젤 큰 찬혁이의 만남이다. 찬혁이는 가위질도 젓가락질도 종이접기도 그림 그리기도 서툴렀다. 찬혁이 옆에 있으면 내가 형이 된 것 같았다. 막상 찬혁이와 짝을 해보니 녀석은 생각보다 똑똑했다. 검은 선만 가위로 오려한다든지, 모서리 끝을 맞춰서 뾰쪽하게 접어야 한다든지, 그림은 테두리에서 튀어 나가지 않게 색칠하고, 여러 가지 색을 쓰라고 말해주거나 보여주면 곧잘 따라 했다. 나는 찬혁이에게 밥을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한여름 학교 운동장은 습하고 몹시 더웠다. 운동장에서 땀을 흘린 후 수업시간에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땀 냄새가 나는 싫었다. 그중 젤 싫은 건 반 친구들 틈에서 민재가 하는 왕 노릇, 대장 노릇이었다. 아주 눈에 진심으로 거슬렸다.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길게 찬혁이와 짝이 되어도, 선생님께 자리를 바꿔달라는 불평 없이 찬혁이와 평온하게 잘 지내냈더니,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이나 학부모 상담 시 나에 대한 칭찬은 침이 튈 정도였다. 난 그저 불평을 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 안 했을 뿐인데, 반에서 제일 착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찬혁이가 수업시간에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내가

   “찬혁이, 자.”

라고 얘기하면 진짜로 녀석은 엎드려 자버렸다. 히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네!     


  그쯤 학교에선 체육대회를 준비 중이어서 체육 시간마다 반 대항 축구경기 예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공격과 수비 둘 다 잘하지 못하니, 골키퍼 신청에 손을 들어서 골키퍼를 하기로 했다. 골키퍼는 내게 신의 한 수였다. 딱 내 스타일이었다. 공을 쫓아다니면서 아이들과 하는 몸싸움 없이, 이리저리 공 따라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구경하다가 공이 온다 싶으면 손이나 발로 막으면 되었다. 내 다리 같지 않은 서툰 내 두 발보다, 내 팔 끝에 있는 두 손을 쓰는 것이 훨씬 쉬웠다. 나는 반 대항 예선 축구시합에서 다른 반 아이들의 공을 제법 막아내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학교도 축구도 친구들도 예전보다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체육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기분 좋고 신나는 나날이 이어질 때쯤,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체육활동이 취소되었다. 그날도 1반과 우리 반의 축구 준결승이 있었지만, 내리는 비 때문에 우리는 교실에서 조용히 자율 활동시간을 가졌다. 나는 찬혁이와 스케치북을 꺼내놓고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었고, 내가 스케치를 하면 찬혁이는 그림에 여러 색깔을 채워 넣었다.

그때, 평온한 고요함을 깨고 민재이가 손을 높이 들고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저 축구시간에 골키퍼 하고 싶어요. 계속 공격수로 뛰어다니니까 힘들고 저도 골키퍼 할래요. 왜 용진이만 편한 골키퍼 해요?”

나는 그 순간 번개 맞는 기분이었다. 머리카락이 쫙 서버린 드래곤 볼의 손오공이 된 느낌으로, 민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깐 녀석의 얼굴을 본 후, 다시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 제발요. 이건 아니잖아요. 선생님. 백민재는 나쁜 놈이잖아요. 아시죠?’

선생님께서는 나와 민재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셨고,

   “용진아, 우리 역할을 바꿔서 한 번 해볼까? 용진이도 공격수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에서 화가 치밀고 있었다.

   ‘나. 쁜. 새. 끼. 민재 나쁜 놈!’

나는 옆에 있는 찬혁이가 듣든 말든, 이해하든 못하든, 민재에 대한 험담을 찬혁이에게 중얼중얼거렸다.

   ‘찬혁아, 민재는 일부러 골키퍼 하려고 해. 나를 괴롭히려고. 나쁘지? 나는 슬프고 화가 나. 내가 친구들한테 인기가 있으니 민재가 그 게 싫어서 나를 괴롭히는 거라고. 내 골키퍼 자리를 민재 새끼가 빼앗아 갈 거야. 나쁜 새끼. 민재새끼는 너와 나를 항상 괴롭혀. 나쁜 새끼.’

나는 눈에 눈물이 맺혀 있어 그림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고, 찬혁이가 내가 그린 그림 안에 어떤 색을 넣으면 좋은 지도 얘기 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때 찬혁이도 그림도 아무 의미 없었다.     

  


   잠시 후 점심 급식으로 노란 카레가 나왔다. 카레는 젓가락질이 서툰 찬혁이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오랜만에 찬혁이도 밥을 빨리 먹었고, 친구들이 운동장에 나가서 같이 놀자고 내 자리로 모여들었다.

그 당시 나는 선생님의 반복되는 칭찬과 골키퍼의 성공적인 역할수행으로 인기는 연일 상승곡선이었다.

오전에 소나기가 왔다 간 운동장은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보였다. 공을 차고 놀기에 적당하지 않은 운동장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정글짐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자고 했다. 아이들은 좋다고 했고, 찬혁이에겐  미끄러운 정글짐에 올라가는 건 힘드니 밑에서 다른 경찰과 함께 땅과 가까운 도둑들만 잡으라고 설명해 줬다.

찬혁이와 같이 노니까 정글짐 3층 위로는 모두들 올라가면 안 된다는 규칙도 정했다.

우리가 재미나게 한 참 놀고 있을 때 민재 무리가 왔다.

   ‘저 새끼가…. 이리로 오네. 왜 오지? 가라고. 인마.’

기분이 싸~ 했다.

   “야, 최용진 우리도 같이하자!”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끄응.) 알았어. 3층 위로 올라가지 마. 규칙이야.’

민재는 도둑이 되어 정글짐에 올랐다. 그때부터 찬혁이는 이상하게 민재만 좇았다.

나는 민재만 쫓는 찬혁이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저리 가라고~. 저리 가 찬혁, 바보야~.”

민재는 정글짐에 매달려 자신만 쫓는 찬혁이를 뒤돌아보며 신경질적인 발길질과 함께 소리를 마구 질렀다. 그 순간,

   “쿵. 아야. 앙.”

민재는 운동장 바닥으로 넘어졌다.     


   다음 날 민재는 손에 반 깁스하고 왔다.

   “여러분, 민재가 어제 정글짐에서 놀다가 떨어져서 손목 신경이 약간 놀랐다고 합니다. 민재가 또 다치지 않도록 심한 장난 걸면 안 되겠죠? 민재 주변에서 다른 친구들과 장난쳐도 안 됩니다. 부딪쳐서 민재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여러분, 조심하기 약속.”

경민이가 손을 들어 선생님께 질문했다.

   “선생님, 민재 손에 있는 건 언제 풀어요?”

   “네. 일주일 정도 있다가 풀 거예요. 심한 건 아니고 혹시나 더 다칠까 봐 깁스했으니까요. 삼일 뒤에 반 대항 축구 경기도 있으니 다른 남자 친구들도 조심하세요. 남자 친구들은 모두 다 선수니까요”     

그날 체육 시간에 있는 준결승 시합에서 나는 골키퍼를 했고, 준결승에서 이긴 우리 반은 체육대회 결승전에서도 우승했다. 나는 결승전에서도 골키퍼를 했다.

민재는 벤치에 앉아서 팔에 반 깁스를 한 채 준결승과 결승전을 구경만 했다.


  찬혁이 짜~식 갑자기 보고 싶네! 어디서 뭐 하는지.

짜샤, 이 형님은 잘 지내고 있다. 아참, 내 키 184㎝다. 찬혁아, 지금도 네가 더 클까?     

        

   그런데 에세이는 도대체 뭘 적지? 미치겠네! 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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