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 거리에 떨어진 노란 은행나무 열매가 무서워 신발 끝을 세워 걸었던 여름을 지나, 바람이 상쾌해지고 서늘해진다. 붕어가 그려진 주황색 손수레가 드문드문 거리에 자리를 잡고, 바닥까지 투명한 비닐 천막을 내린다. 천막 속에서 까만 생선틀이 뱅글뱅글 돌아간다. 뜨거워진 생선모양의 틀을 차례차례 열면 지느러미까지 갖춘 노란 붕어가 따뜻한 팥을 품고 달콤하게 구워져 플라스틱 상자 안에 가지런히 진열된다. 여기저기 희고 노란 국화 화분이 놓이고, 초록 잎들이 노란 잎으로 빨간 잎으로 변해가면 나도 옷 정리를 한다. 서랍장을 열어 곱게 접혀있는 가을과 겨울의 색을 가진 옷들을 꺼내 본다. 작년에 새로 구입해 입지 못하고 그냥 계절을 넘겨 버린 옷엔 아직 가격표가 붙어 있다. 밝은 브라운색에 보들보들한 목 폴라 니트와 윤기가 흐르는 블랙 셔링 레더 스커트를 작년에 구입했었다. 우아한 실내 인테리어와 예쁜 그릇 속에 담긴 맛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에 가게 되는 날, 입고 싶어서 아껴 두었던 옷이다. 아직 가격표가 그대로 인 것을 보니, ‘작년 겨울엔 이 옷과 어울리는 곳을 방문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초록색과 남색의 스프라이트가 있고 왼쪽 가슴에 포켓이 하나 박음질 되어 있는 품과 길이가 넉넉한 라운드 티셔츠가 보인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몇 년째 이 옷을 만든 제조사 체인 상가들의 간판도 보이지 않는다. 이 티셔츠는 내게 긴 시간 머물렀고, 시원한 가을부터 추운 겨울까지 집 앞 마트나 편의점에 갈 때 입고 다니는 옷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 옷을 입고 아이를 등에 업어 재웠다. 어느 날은 가족들과 함께 먹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마무리 설거지도 했다. 또 어느 날은 욕실 청소를 위해 빨간 고무장갑 속으로 옷소매를 넣고 열심히 욕실 바닥과 변기를 솔로 씻은 기억도 있다. 나의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이 가득한 옷이다.
옷걸이에 걸린 검은색 롱 패딩이 보인다. 작은 아이가 중학교 1학 때 구입한 옷이다. 아이의 키가 클 것을 생각하여 넉넉하게 남자 M사이즈로 구입해 발목까지 길게 입고 다녔던 우리 집 막내의 옷은 3 전년부터 내 옷이 되었다. 작은 아이가 훌쩍 커버린 탓에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내가 아이들의 옷을 받아 입는다. 남자아이들이라 내가 받아 입게 되는 옷들은 모두 오버 사이즈가 된다. 외동으로 혼자 자라서 누구에게 옷을 받아 입어 본 적 없는 나는 50세가 다 되어 거꾸로 옷을 받아 입는 상황이 되었다. 작은 아이를 거쳐 내게 온 검은색 긴 패딩을 입고 2년 전 아침 일찍 큰 아이가 수능을 치러 가는 고사장으로 운전을 했었다. 큰 아이의 19년 인생에서 가장 긴장된 날이었을 그날, 엘리베이터 속 거울에 비친 아들의 얼굴을 안 보는 척하며 보았다. 평소 모자간 정이 남달라 따뜻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관계도 아니었고, 소가 닭 보듯, 닭이 소 보듯 늘 그런 관계를 유지하다 화가 나서 아들을 때릴 때만 내 손과 아들의 등짝 스킨십이가능했던 우리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키가 180센티나 되는 아들의 긴장감과 피곤 해 보이는 얼굴은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아이고, 이 녀석 얼마나 긴장이 될까?’ 생각하며 엄마로서 아들에게 해 줄 멋진 말을 전 날 준비해서 외워 두었기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재완아, 그동안 애쓰고…”
“엄마, 그런 거 하지 마세요.”순간 나는 뻘쭘함에 얼음이 되었고,
“그래, 알았다.”라고 대답하고 아무 말 없이 고사장까지 운전만 했다. 아이가 내리는 마지막 순간,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지 싶어 아들에게 급히 한 말이,
“재완아, 파이팅.”이라는 짧고 평범한 말이었다.
고사장 주변은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고, 나는 아들이 책가방을 메고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앞차의 회차를 기다리는 동안 마지막으로 잠깐 바라보았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괜스레 울컥 해 또로롱 뺨을 타고 떨어지던 눈물. 맘속으로 ‘3년 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 성과가 너무 없으면 내 아들 불쌍해서 어쩌지. 실수는 하지 않아야 할 텐데.’하는 걱정과 소망과 안타까움에 마음 아팠던 기억이 롱 패딩의 길이만큼이나 길게 회상된다.
손을 크고깊게 벌려 봄과 여름옷을 서랍장에서꺼내 방바닥에 차례차례 둔다. 올해 남편과 트리키예 여행 갈 때 입으려고 미리 사놓은 색이 겁나게 화려한 에스닉 플라워 스타일의 옷에도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다. 옷을 살 땐 마치 내일 당장 트리키예 골목을 걸어 다니며,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파묵칼레 온천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사람처럼 들뜬 마음에 품절되기 전에 서둘러 구입했었다. 옷을 구입할당시엔비행기 표도 구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여행 계획은 취소되었다. 돈이 없어서 이루지 못하고 취소되는 계획은 나에게 낯설지 않은 상황이라 당혹스럽지 않으나, 화려한 원색의 꽃무늬 자수가 가득한 상하 미니스커트 한 벌은 고민이다. 낼모레가 50세인 내가 이런 옷을 입고 평범한 부산 거리를 걸어 다니긴 약간부담스럽다.
‘이 옷의 가격표는 언제쯤 뗄 수 있을지.’ 약간 고민스럽다. 이 화려한 옷엔 과거가 아닌 미래의 행복이 가득 담겨있다. 우리 부부가 희귀 난치병에 걸러 가지 못한 트리키예가 아니니, 돈이 생기면 가면 된다. 그 돈이라는 것이 기약 없긴 하나, 기약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좀 더 미래의 행복과 뜻밖의 기회를 기다리며 가격표를 떼지 않고, 서랍장에 곱게 접어 넣어 둔다.
버릴 옷을 가려내기 위해 방바닥에 쫙 펼쳐 본 나의 옷들은 올 해도 버릴 게 없다는 게 문제다. 옷장 수납은 한정적인데, 세일 때마다 몇 개씩 옷을 꼭 산다. 많게는 20년 된 옷들과 보통은 현재부터 7년, 10년 된 옷들도 가득하다. 특히나 가을과 겨울 옷 들은 부피가 크고 몇 년 전부터는 오버 패션이 유행하여 옷들의 품이 더 커진 탓에 옷장의 공간이 더 비좁게 느껴진다. 산속에 조심스레 올려진 돌탑처럼 옷들을 쌓아가며 정리해 본다.
“우와 다 들어갔다. 야호~.”
사람마다 시간을 간직하고 기록하는 방법이 있다. 누구는 일기장에, 누구는 사진 속에, 누구는 기억 속에 둔다. 나는 나의 옷들에 나의 지난 시간들의 웃음과 미래의 꿈들을 곱게 개켜 옷장에 넣어 둔다. 옷 정리를 마치고 가지런히 정리된 붙박이장의 문을 활짝 열고 두 세 걸음 뒤에서 바라본다. 나의 과거와 나의 현재와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가 그곳에 가득하다. 진짜 틈 없이 가득하다. 올해 겨울 세일엔 절대 옷을 안 사야겠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