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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리래티스 Nov 21. 2024

10. 책 과 책 (뇌가소성 #2)

뇌 1.4킬로그램의 사용법 -존 레이티-

독서 조각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 아니라 지적인 페이지 분류기계와 유사하다. 새로운 연결들을 걸러서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을 무시하거나 압축할지 결정한다. 기억의 조각들을 적절한 장소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뇌가 컴퓨터라고 가정하자. 책을 읽으면서 얻는 정보들이 자동으로 저장된다고 해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정보를 꺼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형성과 회상은 분위기나 주변 상황, 그리고 기억이 형성되거나 되돌려졌을 시기의 영향을 받는다.”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서 어떤 정보가 주목필터를 뚫고 뇌에 저장될지 결정된다. 여기에 경험에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전혀 새로운 주제의 책을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처음보는 주제는 단어부터 어렵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법전을 보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가 수학책을 보면 외계어로 보인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영어로 된 책을 보는 것과 같다. 읽히지만 읽을 수 없다. 


그런 책들은 쉽게 읽히지 않아 계속해서 보기 어렵다. 그럼 반대로 쉽게 읽히는 책은 어떤 책일까? 바로 잘 아는 주제의 책이거나 관심있는 주제의 책일 것이다. 최근의 관심사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새로운 정보만을 얻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과 연결되는 기억이 필요하다. 


그럼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은 요구받을 때 만들어진다.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와 기억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단순한 기억의 일부는 두뇌의 여러 신경네트워크에 저장된다. 그 기억을 회상할 때 두뇌는 여러 조각들 하나로 모은다.”


기억을 만든다는 것은 기억을 되살리는 것과 같다. 내가 뇌 과학 책을 읽다가 뇌 가소성과 관련된 내용을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나의 두뇌는 여러 신경네트워크를 뒤져서 뇌 가소성과 관련된 기억을 찾아낸다. 만약 이런 기억이 없다면 나는 뇌 가소성 부분을 그냥 읽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되살려온 기억이 지금 읽은 내용과 연결되어 하나의 새로운 뉴런이 된다. 기존에 기억과 새로운 뉴런은 연결되고 이 연결은 더욱 강화된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어쩌지? 라는 고민을 하는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만약 내가 뇌 가소성을 처음 들어봐서 몰랐다고 가정해보자. 해마의 필터를 넘어서지 못한 채 그냥 읽고 지나가버린 책의 내용은 다음에 다른 책에서 뇌 가소성의 내용을 봤을 때 되살려져 나온다. 희미한 기억이라도 상관없다. 그 덕에 이번 책에서 뇌 가소성의 뉴런이 그때의 희미한 기억과 연결되어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찰리 멍거가 말한 지식의 연결이자 복리라고 생각한다. 많이 읽을수록 많은 것들과 연결되고 더 강화된다. 


“경험은 날마다 계속 이 두뇌의 연결을 교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매번 기억할 때마다 달라진다.” 


그렇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 똑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오해하지만 똑 같은 날은 없다. 매일 새로운 날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 두뇌는 이 새로운 경험을 기존의 기억들과 연결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매번 달라진다. 그렇게 회상된 기억은 반복될수록 강화된다. 반대로 회상되지 않는 것들은 연결이 해제된다. 


이를 책에 대입해본다면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책을 한권 두 권 읽는다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한권 두 권부터 읽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기억력 카드 게임과 유사하다. 30장의 카드가 뒤집어져 있고 각각 한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작위로 카드 한 장을 뒤집어서 확인한 뒤, 똑 같은 카드를 찾는 게임이다. 처음 카드 한 장을 뒤집고 바로 똑 같은 카드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연히 맞을 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순전히 우연이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많은 카드를 뒤집어 봤기 때문에 카드의 짝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 한 두 권 읽어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맛볼 수 없다. 하지만 책이 쌓이면 쌓일수록 카드의 짝을 찾듯이 지식의 짝도 찾을 수 있다. 






투자독서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특출 난 재능이 있어서 경험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읽었고, 꾸준히 읽었기 때문에 경험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이 좋았다. 지독하게 말을 안 들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책을 읽었다.열심히 모아둔 돈을 다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도 책을 사서 읽었다.  궁금한 것이나 관심이 생기면 관련된 책을 먼저 사서 읽었다. 하지만 그 흥미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몇 권의 책을 읽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한때는 이런 변덕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끈기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투자를 시작하고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시작은 투자자문서였다. 시중에 널리고 널린 투자자문서를 하나하나 사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 책이 나의 머리를 울렸다. 시작은 데이비드 드레먼의 역발상 투자였다. 이렇다할 기준이 없었던 나의 투자관에 씨앗을 심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역발상 투자를 세번 정도 읽고 나서는 찾아보는 책이 단순하게 투자에 관련된 것에서 조금 더 심리에 가까운 쪽으로 바뀌었다. 행동경제학이나 신경경제학 쪽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투자시장보다는 나는 어떤 투자자인가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던 시기였다.


이때부터 좀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전에 무심하게 읽고 지나쳤던 책들이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 관련 책을 읽다 보니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이었다. 투자를 하기전에 읽었던 “넛지”라는 책의 내용과 연결됐다. 애초에 넛지의 작가인 리처드 탈러 교수는 행동과학 및 행동경제학자였다. 이때 꽤 큰 울림이 있었다.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연관됐을 때 내게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 수도 없이 반복된다. 


신경경제학 관련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꽤나 어려운 내용이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은 예전에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책의 내용과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제목은 “사랑을 위한 과학” 이다. 


신경경제학 도서가 뇌과학과 경제를 엮은 책이라면 사랑을 위한 과학은 사랑과 뇌과학을 엮은 책이다. 그러니 내용은 유사할 수밖에 없다. 사실 많은 책을 읽다 보면 이와 같은 일들이 많다. 뇌과학으로 육아, 투자, 사랑, 성공, 운동, 노화, 건강 등등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책으로 엮어낼 수 있다. 


투자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분야의 지식을 투자에 접목할 수 있다. 심리, 철학, 경제, 경영,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등등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읽는 책의 범위를 끝도 없이 넓혀 나갔다. 


물리학 책을 보면서 과학자들의 비판적 사고를 배웠고,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인정했다. 그리고 우주 만물의 원리가 결국 엔트로피 법칙에 따른다는 사실도 배웠다. 영원한 것도 없고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배웠다. 


천문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치를 배웠다. 우리가 지구에서 태어나 어쩌면 우주 유일의 지성을 갖춘 인격체가 된 것은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이뤄진 것보다, 그럴 확률이 존재했기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투자에서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배운 것이다.


철학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감명 깊은 것은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인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몰두하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분야가 역사다. 경제만 떼어 놓고 공부했을 때는 나랑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복잡한 모형과 수학과 다르지 않는 복잡한 공식들이 경제공부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제를 철학적으로, 그리고 역사로 배우니 내게 딱 맞는 옷이었다. 경제사를 공부하다보니 기존에 내가 좋아했던 전쟁사와 상당부분 일치했다. 결국 전쟁은 정치와 경제의 부산물이다. 


 내가 읽는 모든 책이 투자서적이 됐다. 어떤 책을 읽어도 투자자로써 배울 점이 있었다. 소설책도 마찬가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중요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세상의 룰이야”


우리는 투자에서 수익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빠르고 큰 수익을 원한다면 리스크를, 느리지만 좀더 확실한 수익을 얻고 싶다면 시간을 대가로 지불한다. 리스크, 수익 그리고 시간을 모두 취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세상의 룰이다. 


위화의 소설 “인생”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당장의 위급함은 도와도 가난은 돕지 않는다”


그렇다. 본질적인 것을 고치지 않으면 당장의 얼마나 큰 수익을 얻었던 간에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가끔은 시장이 분에 넘치는 수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것은 가난한 자가 받는 적선에 지나지 않는다. 투자의 본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투자에 집중하니 비로소 모든 것이 투자와 연결됐다.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데, 생각이 좋거나 나쁘게 만들 뿐. -햄릿





뇌 1.4킬로그램의 사용법 


-존 레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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