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폴 콜리어 외-
“수십억 프랑을 들여 구축한 요새 방어선을 버려두고 어떻게 공세로 나설 수 있겠습니까?”
1940년 5월 10일 독일 만슈타인 장군의 전차부대는 낫질계획을 실행했다. 연합군은 그 어떤 전차부대도 울창한 아르덴 숲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독일군 전차부대는 아르덴 숲을 통과하고 있었다.
2차대전 직전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전차전에 대비해 상당한 수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독일군에게 단 46일만에 패하고 항복했다. 1차대전 승전국이었던 프랑스는 어떻게 그렇게 빠른 기간안에 독일에 항복하게 됐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국민들의 인식이었다. 1차대전 프랑스의 승리를 도운 것은 강력한 방어 전략이었다. 동맹국이었던 영국은 느끼지 못할 방어전을 프랑스는 겪었다. 자국의 영토에서 끝없는 방어전을 치렀고 그만큼 영토와 국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 희생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승화했다. 다시는 살육전을 치르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독일과 마주한 국경에 마지노선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요새는 지하철도로 연결되어 포위에도 끄떡없이 설계됐다. 프랑스는 마지노선에 70억 프랑을 투자했는데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에 투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마지노선에 너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벨기에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나라다. 프랑스는 벨기에와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에는 마지노선을 건설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대독전 방어 전술은 독일이 침략하면 벨기에에 방어전선을 구축하는 것이었기에 벨기에가 1차대전때와 같이 중립국을 선포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독일은 마지노선이 없는 벨기에의 아르덴 숲을 돌파했다.
프랑스는 두가지 큰 편향에 빠져 있었다. 수차례 정찰을 통해서 독일군이 아르덴 숲으로 진격해 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어떤 전차부대도 아르덴 숲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과도한 확신편향에 빠져 결정적 증거 앞에서도 이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 편향은 매몰비용의 오류다. 프랑스는 강력한 육군전력을 가졌음에도 독일의 위협에 먼저 공세를 펼치지 않았다. 큰 돈을 들여서 지은 마지노선을 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방장관은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십억 프랑을 들여 구축한 요새 방어선을 버려두고 어떻게 공세로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프랑스는 단 46만에 독일에 항복했다. 이때 실패한 프랑스 정부를 빗대어서 “마지노 정신”이라고 부른다. 과도한 확신과, 안일한 대비, 그리고 매몰비용의 오류가 낳은 최악의 사태를 일컫는 말이다.
멀리서 투자자를 바라본다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와 다를바가 없다. 언제나 수많은 편향으로부터 노출되어 있어 불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 본인은 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설령 수많은 인지편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단 한 번의 편향에 의해 많은 것을 잃게 될지 모른다.
유럽을 뒤흔드는 강대국이었던 프랑스가 독일군에 46일만에 항복을 선언한 것은 역사를 통틀어도 대단히 의아한 사건이다. 심지어 그들은 방심을 하지도 않았다. 국가의 명을 걸고 독일의 침략에 대비했으나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미지의 무식에 의해 무너졌다. 사실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미지의 영역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결과를 모두 알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판단이 어리석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로 돌아간다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늘 과소평가한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은 바보 같은 판단들이 역사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종의 지식의 저주다. 한번 알게 된 정보는 다시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왜곡된다.
역사의 만약은 없지만 만약 프랑스가 독일의 침략을 마지노선에서 막아냈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프랑스가 내린 판단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지나친 확신은 확증을 낳는다. 똑똑할수록 그렇다. 많이 알수록 더 큰 확신을 갖게 된다. 마지노선을 실제로 훌륭한 방어 진지였다. 다만 마지노선을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을 뿐이다. 돌아가는 길을 프랑스는 알고 있었지만 돌아올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뒤틀렸다.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가능성이 존재하고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든 반드시 일어난다고 물리학은 설명한다.
찰리 멍거는 가장 큰 문제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착각이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 확신이 든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의심해봐야 한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안다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알고 있다는 착각은 잘못된 확신을 부르기 쉽다. 잘못된 확신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유명한 도박사인 한 남자는 자신이 가장 큰 돈을 잃었을 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큰 돈을 잃은 순간은 낮은 패를 잡았을 때가 아닙니다. 아주 좋은 패를 잡았을 때입니다.”
확신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실패가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도 쉽사리 기존의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확신편향에 빠져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투자자에게 매몰비용은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상처를 줄 수 있다. 일명 존버라고 불리는 무작정 버티기(장기투자와 개념이 다르다)와 떨어질 때 마다 매수하는 물타기(분할 매수와 다르다)를 하는 이유는 손실회피편향에서 온다.
사람은 손실을 대단히 두려워하기 때문에 손실이 확정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렇게 계좌를 방치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투자금이 들어가 전체 포트폴리오를 망쳐 버린다.
“정답은 자신의 분석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폴 콜리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