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와 경제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
“지식을 논리적으로 정리해도 지식은 늘어나지 않는다. 단지 논리적 알고리즘의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할 뿐이다.”
현대적 형태의 지식체계가 지구에 사는 모든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선포된 것은 아니다. 지식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의미 그대로의 진화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체계를 하나의 특성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종족들은 지식은 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제공하며, 그 결과 지식을 소유한 사람의 삶이 더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알 고 있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경제적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여기에서 한차례 진화가 일어났다. 지식을 저장하고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최초형태의 지식체계 탄생배경이다.
자 이제 사회에서 축적된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필연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지식인이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지식체계를 가지지 못한 공동체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은 전적으로 다른 공동체와 우연히 격리된 덕분이라는 것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문자가 발명되자 이제 지식을 암기하는 것에서 기록하는 것으로 지식형태는 진화한다. 그리고 15세기 독일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의 혁신을 가져오자 지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지식을 저장하고 보존하는 문제도 지식인이라는 직업과 교육기관으로 이어졌다. 이때 지식은 기억력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기억력은 지식인의 가장 큰 덕목이고 필수 능력이었다.
많은 지식들이 글로 쓰였고, 인쇄되어 대중에게 전달됐지만 정보가 많아질수록 또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지식인도 더 이상 이 많은 지식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식체계는 분류라는 또 하나의 진화를 이뤄냈다. 오늘날에도 많은 양의 사실에 관한 지식들을 분류학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필요한 지식은 그때그때 적재적소에 쓰여야 하기에 정밀한 분류가 필요했다. 하지만 분류학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지식을 논리적으로 정리해도 지식은 늘어나지 않는다. 단지 논리적 알고리즘의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할 뿐이다. 분류학도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암기, 기록, 보관, 분류에는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
정보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무리 정밀한 분류법으로 지식을 분류해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식체계는 경제적 순서로 배열한 경험일 뿐이다.
-마흐-“
이론적 지식체계를 통해 얻은 사고의 절약에 대하여 말하려면, 우선 암기가 추론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드는 지적 활동임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론보다 암기에 집중한다. 전세계의 많은 학교들, 대학교도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나열된 지식을 암기하는데 힘을 쏟는다.
하지만 추론이 암기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높은 효율을 낸다. 암기와 추론은 모두 훈련과 교육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는 능력이다.
현대 지식체계는 한 사람이 모든 지식을 암기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자꾸만 좁은 분야로 나뉘어지고 깊게 파고든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사실에 관한 지식의 일부만 암기하면 숙련공으로 성공할 수 있지만 지식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에서는 어떤 것도 일반적이거나 최종적이지 않다. 우리의 지식체계가 또 어떤 진화를 할지 알 수 없다. AI가 모든 정보를 종합해 적절한 지식을 제시할 수도 있다. 지금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AI는 기존의 정보를 수집해 분류하는 능력은 인간보다 우수하지만, 인간이 가진 최고의 산물인 추론에는 약하다. AI가 인간보다 뛰어날 순 있어도 인간이 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1956년 워싱턴에서 열린 컴퓨터에 의한 인간 추리력의 확장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데이비스는 사람들은 오늘날 인간의 지적 능력 향상보다 컴퓨터 개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비판했다.”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추론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해지고 있다.
투자시장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많은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대부분"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직 진행 중인 시도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악담이 아니라, 그 시도들 또한 대부분 실패할 것이다.
경제학은 오랫동안 물리학을 선망해왔다. 경제학이 과학이고자 한다면, 수리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경제학 모델들이 만들어졌다.
투자업계 또한 수리과학이 되고자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대", "무조건", "확실히"와 같은 표현은 수학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제학도, 투자시장도 수학이 될 수 없다. 1+1=2 같은 공식이 투자시장에도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식을 암기해서 시장에 적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시장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 공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공식을 만들고 시장에 대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공식을 암기하고, 정밀하게 분류한 뒤, 시장의 움직임에 맞춰 그때그때 공식을 꺼내 대입하려고 한다.
이는 앞서 살펴본 지식체계와 닮아 있다. 그러나 암기와 분류는 지식체계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지식체계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이라고 품을 수 있을까?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암기가 아니라 추론이다. 작은 단서를 가지고 큰 그림을 그려내는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 방대한 지식을 모두 암기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살아난다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시장은 방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단서를 분석해 추론할 수 없는 사람은 AI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다. AI는 암기와 분류까지만 대신해줄 뿐이다. 추론은 훈련과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사실 나는 분류법에 대단히 집착했던 사람이다. 많은 책을 읽기 때문에 그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책을 잘게 조각내고, 카테고리를 세분화해 각각 분류했다. 하지만 이런 분류법은 장점도 있었지만 명확한 단점도 있었다. 필요할 때 정확히 찾아내기가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분류한 내용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일명 리처드 파인만 공부법이다. 책을 읽고 지식으로 만들고 싶은 내용을 초등학생에게 가르치듯 설명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다.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려는 상황에서 쉽게 설명하려니 잘되지 않았다.
인형이나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설명하면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내가 선택한 방법은 화이트보드였다.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곧바로 화이트보드로 가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반복하다 보면 정말 내 것이 되었다. 이제 화이트보드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행위였다. 반드시 남에게 설명하듯 내용을 풀어봐야 한다.
주식 종목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투자자 피터 린치는 매수 이유를 유치원생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암기가 아닌 추론을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주식을 통해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파동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자리에서 매수하더라도 주식의 파동을 견디지 못한다면, 돈을 벌더라도 적은 돈밖에 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손실회피 편향, 즉 버는 것보다 잃는 것을 배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파동을 견디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파동을 잘 견디려면 확신이 필요하다. "과학적 사고로 확신하지 말라"고 말해놓고 왜 확신을 요구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익의 기반이 리스크 감수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확신 없이는 돈을 벌 수 없다.
그렇다면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잘 앎에서 비롯된다.
보유 편향과 확증 편향 같은 심리적 편향을 이겨냈다는 전제하에, 내가 잘 아는 종목은 아무리 흔들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잘 앎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종목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모래알 같은 종목들 중 어떻게 보석을 찾아낼 것인가? 모든 종목을 암기할 수는 없다. 추론해야 한다. 산업, 경제, 정치, 지정학, 사이클, 실적, 거시적 요소와 미시적 요소에서 작은 부분을 추론할 수 있는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정말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종목을 보유하고도 미리 팔아서 적은 수익에 만족했던 경험이 많다. 대개 그런 종목들은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종목이었다. 반면, 어떤 파동이 와도 신경 쓰지 않고 보유했던 종목들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종목들이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 해도 왜 실패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실패가 아니다.
추론의 가장 큰 힘은 적은 에너지 소모다. 방대한 정보가 쏟아지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추론의 힘을 길러야 한다.
엔트로피와 경제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