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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리래티스 Dec 24. 2024

사고는 없다.

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독서조각



“사고라는 단어는 손상이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다는 잘못된 암시를 준다. 많은 과학 저술에서 '사고'라는 용어로 묘사되는 사건은 점차 더 적합한 표현으로 대체될 것이다.”


“무언가를 사고라고 부르면, 그것의 위험성을 당신이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두 가지 의미를 한 문장에서 사용하는 것이 좀 웃기게 들릴 수는 있어도 부적절하지는 않다.”


한해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발생되는 사망자의 수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를 뛰어넘는다. 미국에서는 3분에 한 명씩 사고로 사망한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은 사고로 인한 사망자에 대한 인식이 질병이나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에 대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


사고는 마치 예견하거나 예방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매번 일어나는 사고는 각각 개별 사건이고 그때의 고유한 상황이 된다. 사고라는 단어가 이런 잘못된 암시를 준다. 이 책의 저자는 앞으로 사고라는 단어가 많은 과학 저술에서 더 적합한 표현들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비의도적 손상'이라고 표현하거나 손상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령 '경골 골절), 또는 손상이 발생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묘사(가령 '차량 충돌) 등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에 대해서 알려면 먼저 과실을 알아야 한다. 과실은 크게 인적과실과 위험한 사건으로 나뉜다. 인적 과실은 실수에 의한 사고를 뜻하고, 위험한 사건은 환경적 요인을 뜻한다. 


비행기 추락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사건조사반은 피해의 규모를 확인하고 과실을 따지기 시작한다. 조사결과 조종사간의 의사소통 오류로 인한 사고였다. 사건조사반은 이를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로 종결 짓는다. 


언론에서는 조종사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규모가 큰 사고가 발생한 것을 집중해서 보도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조종사 개인의 잘못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사고를 인적과실 탓으로만 종결 짓는다면 사고의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을 뿐더러 최악의 경우 똑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조종사간의 의사소통에 어떤 오류가 있었으며, 왜 그런 오류가 발생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조종사가 처했던 상황적 요인이나 환경적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만약 평소 조종사간의 엄격한 서열문화가 존재해서 부기장이 기장의 의견에 어떤 문제도 제기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 어떨까? 항공사의 무리한 인력감축으로 조종사당 비행시간이 과도하게 배정되어 기장은 피로도가 상당했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고 부기장은 경직된 서열 문화 탓에 기장의 판단에 무조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 사고는 오로지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일까?


항공사가 무리하게 조종사의 인력을 감축한 이유는 재정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공사는 무리하게 기존 정원을 초과한 승객을 탑승하게 했다. 이에 기체는 평소라면 문제없었을 비행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 


기장은 비행도중 문제가 있었음을 감지했지만 회항을 선택하지 않았다. 만약 회항을 결정했는데 큰 문제가 아니라면 항공사는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인력감축 시기에 기장은 그런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부기장이 기장에게 강하게 문제를 어필했다면 어떨까? 하지만 해당 항공사의 조종사는 모두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구성됐고, 기장과 부기장은 공군사관학교 선후배 기수 사이로 평소에서 경직된 의사소통을 주고받았다. 


예민한 시기에, 피로가 가득한 기장, 그리고 선배 기수에게 감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고는 발생했다. 


세부사정을 알기 전과 세부 사정을 알고 난 뒤 과실은 어떻게 달라질까? 인적과실인가? 아니면 환경적 요인인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고는 그때 처해있던 환경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사고는 인적 과실과 개인의 잘못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있을 때도 말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때,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 같은 내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상황적 요인이나 환경적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이러한 인지편향을 근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른다.


조종사간의 의사소통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조종실에서는 무조건 영어만 사용하도록 조치한다면 권위적인 분위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모든 항공사는 조종실에서 조종사간 영어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 이후) 그리고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정원을 지켜야 한다.


이 사건을 항공 사고라고 부르지 않고, 조종사간 권위적이고 경직적인 서열문화에 의한 추락으로 부른다면 좀 더 나은 후속 조치가 이뤄지고 추후에 발생할 사고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투자조각


투자자가 시장에서 사고는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다만 앞서 소개한 사고와 유사한 경험을 투자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2020년 2월 팬데믹이 선포되고 3월까지 주가가 크게 폭락했을 때 많은 투자자들은 이를 사고라고 생각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을 때도, 2024년 8월 일본 금리인상이 불러온 전세계 주가 폭락 사태 역시 사고로 느껴졌을 것이다.


증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나고 보니 그냥 지나가는 이벤트로 느껴지는 것이지 실제로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사고를 마주했을 때 드는 공포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겪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교훈도 있다.”

 -마이클 배트닉-


1987년 블랙먼데이,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 석유파동, 닷컴 버블붕괴, 9.11테러, 엔론사태,  서브프라임 사태, 동일본 대지진, 미.중 무역전쟁, 팬데믹, 러.우 전쟁 등 주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대규모 이벤트가 발생하면 누구나 예견이 가능한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누군가는 이런 사고를 예견해 돈을 벌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고를 정확하게 매번 예견하는 사람은 없다. 매번 예견을 할 뿐이지 모두 맞추지는 못한다. 


투자자가 시장에서 떠나지 않는 한 이런 사고는 언제든지, 그리고 빈번하게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야, 모든 것은 세상 탓이야. 라고 말할 것인가? 그렇게 하면 마음은 아주 조금이나마 나아지겠지만 손실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또다른 사고가 찾아올 것이기에 또 똑같이 당하게 될 것이다.


시장에 참여자라면 대형 사고에 손실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죽지 않고 살아남는 대비책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


유리한 고지에 서는 것과 살아남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전자는 후자를 필요로 한다. 파국은 피해야 한다. 무슨 이 있더라도.

 -나심 탈레브-


강세장에서 현금을 보유함으로써 얻지 못하는 수익보다 하락장에서 현금을 보유함으로써 주식을 팔지 않아도 된다면 몇 배의 더 큰 이득을 거둘 수 있다. 좋지 않은 시기에 절박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식 파는 일을 한 번 막는 것이, 크게 성공할 주식 수십 가지를 고르는 것보다 평생 수익율에는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모건 하우절-


대형 사고로부터 나의 자산을 보호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현금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1 시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 

2 모든 대형 사고를 미리 예견할 수는 없다

3 하지만 시스템을 만들어 대비할 수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장에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규모가 큰 사고 뒤에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시장은 보상을 줬다. 사고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투자자들은 늘 시장이 주는 보상에서 제외된다. 


서브프라임에서 파산한 투자자는 이후 주어진 제로금리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폭락에 시장을 떠난 투자자는 이후에 강세장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을 쓸 예정이다. 충분한 데이터나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유의해서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나와 알고 지내는 개인투자자중에서 꽤 멋진 성공을 거둔 투자자도 있고, 실패한 투자자, 그리고 평범하게 투자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직업병 탓인지 나는 이들의 투자를 꽤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들 중 괜찮은 수익을 올리는 사람은 두 종류다. 


첫번째 유형은 괜찮은 한 종목을 발굴해 큰 수익률을 올리는 투자자다. 어떤 투자 기법이나 기술도 필요 없다. 단 한 종목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자산의 규모가 달라지면 투자방식은 저절로 바뀐다. 


두번째 유형은 눈에 띄는 수익률로 한 번에 큰 돈을 벌어들이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괜찮은 성적을 거두는 투자자다. 이들은 자산의 규모와 상관없이 상당히 조용히 투자하기에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꾸준하게 작은 성공들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일정한 현금 비중을 반드시 유지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많은 투자자 중에서 위 두가지 유형에 해당되는 투자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투자 방법론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투자 시장은 상호작용이 많이 발생되는 곳이다 보니 정답도 없지만 오답도 없다. 


다만 규모가 큰 사고에서 나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방법 중에서 현금 비중만큼 좋은 것이 없다. 현금 비중은 자산배분에서 꼭 필요한 요소다.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르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기에 현금의 가치는 점점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현금 가치의 하락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주어지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물론 자산규모에 따라 현금비중이 무의미할 수 있다. 투자시장은 수학처럼 정해진 공식이 없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투자 방법론을 반드시 찾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느정도 자산이 있다면 현금 비중을 절대 무시하지 말자.



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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