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1944년 7월 2차대전의 승기를 어느정도 잡은 미국은 전쟁이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전쟁 중에는 소련과 연합하여 추측국과 싸웠지만 전쟁 종료이후에는 소련이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은 자신들의 힘이 가장 강하고 발언권이 쌘 시점에 소련을 포함한 44개 동맹국과 이들의 식민지에서 온 대표단 730명을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턴우즈의 스키 휴양지인 마운트 워싱턴 호텔로 불러들였다.
이곳에서 협약된 내용을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부르고 2차대전 이후 전세계 금융질서를 지배했다.
브레턴우즈 협약에서 결정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패권국이 된 미국의 화페인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전쟁 종전 당시 전세계 금의 70%를 미국이 보유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전세계 금융의 중심에 미국이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계은행(The World Bank), 국제통화기금(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부흥개발은행(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을 설립하기로 브레턴우즈 협약에서 결정했다.
달러의 기축통화 결정이 워낙 큰 결정이었기에 잘 안 알려졌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협약이 이날 이루어졌다. 이것은 오로지 미국이었기에 가능했고 미국 덕분에 가능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1. 미국의 관세를 인하하고 미국의 시장을 개방하겠다.
2. 미국은 자국 해군력을 동원해 누가 사고파는 화물이든 관계없이 모든 해상무역을 보호하겠다. 미국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제3국끼리의 무역조차도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으로 보호하겠다.
회의에 참석한 동맹국과 식민지 대표단은 놀라 까무러칠 정도였다. 물론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내용은 아니다. 미국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 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시장을 관세 인하와 함께 개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경제원조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태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았는데 이제 가장 강력한 국가에서 무역을 보호해주겠다니 믿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소련을 제외한 대표단은 협약에 서명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됐다. 미국은 가장 효율적으로 소련이라는 나라를 압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브레턴우즈 협약이 가져오는 세계관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보호무역이 팽배했다. 1차대전 패전으로 뒤늦게 공업화를 이룬 독일은 국제 열강들이 이미 차지한 무역에 낄 수 없었다. 일본 역시 자신들이 가진 힘에 비해 타 열강들의 무시와 무역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일본이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고 중국을 침략하자 미국은 1941년 일본을 대상으로 석유수출금지령을 내렸다. 이는 진주만 공습의 원인이 된다.
이렇듯 열강들이 보호무역으로 나서면 후발주자 국가는 전쟁으로 이를 타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강대국인 미국의 시장 개방은 그만큼 파급이 큰 세계관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다.
두번째 협약은 더 놀라운 것이다. 모든 해상무역을 미국이 보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역사적으로 해상 운송은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다로 운송을 나갔을 때 육안에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방향을 잃었기에 육지 근처로 항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국가 해안으로 타국의 배가 다니는 것을 곱게 볼 리 없었다. 그래서 해군의 힘이 강한 국가가 아니라면 해상 운송을 다닐 수 없었다.
이후 원양 항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육지가 보이지 않는 먼 바다로 항해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힘의 질서는 변하지 않았다. 원양 항해 기술의 발달은 각국 해군 전력의 투자로 이어졌고, 해군력이 강한 나라가 자연스럽게 패권국을 차지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은 그렇게 패권국이 됐다. 다른 의미로 힘이 약한 국가의 해상 운송은 제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2차대전 이전의 세계질서가 지금도 유지된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원자재를 수입해 올까? 석유를 국내로 수입해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해군을 동원해야 할까?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이웃한 대한민국의 해상 운송에는 엄청난 비용이 추가됐을 것이다. 혹은 불가능 하거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에이 요즘 세상에 그렇게 못하지 라고 말이다. 이런 생각은 대단한 오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요즘 세상이라는 세계관은 브레턴우즈 협약으로 만들어진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브레턴우즈 협약으로 미국이 얻어가는 것도 많았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면서 금융의 중심지가 됐고, 전세계 바다를 누비면서 세계 경찰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에도 꾸준하게 새로운 국가들이 브레턴우즈 협약에 들어오면서 많은 동맹국이 생겼고 이는 소련을 가장 효율적으로 견제하는데 도움이 됐다. 소련 붕괴이후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군사력을 더 이상 확장하지 않고 경제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었던 유럽의 경제가 다시 재건될 수 있는 큰 도움이 됐다. 아시아의 국가들도 미국이 보호하는 무역을 통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대한민국이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1971년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금본위제를 종료하면서 시작됐다. 사실상 브레턴우즈 협약이 끝났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세계관은 유지됐다.
트럼프 대통령 2기를 기다리는 지금 그의 발언이 심상치 않다. 미국은 어느 순간부터 세계경찰의 역할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트럼프 1기때부터 얘기됐던 방위비 분담이 이를 반증한다. 트럼프 2기때는 본격적으로 방위비 분담이 이뤄질 것이다. 이제 자유롭게 바다에서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트럼프 정부는 관세를 늘려 미국의 기형적인 무역적자를 해결하고자 한다. 미국의 기형적인 무역적자는 브레턴우즈 협약에서 미국의 화페가 기축통화가 되고 미국 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미국은 자국우선주의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보호무역이 불러오는 세계질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는 2차대전을 통해서 배웠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80년 가까이 됐다. 그만큼 미국의 반감을 가지는 국가도 많고 불평등한 관계에 말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세계관을 기억하지 못한다. 미국이 만든 세계관에 중독되어 있다. 이제 미국은 그런 세계관에서 발을 빼려고 한다.
앞으로 펼쳐질 세계관이 얼마나 달라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이 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2차세계 대전의 원인을 정확하게 하나의 원인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히틀러라는 한 명의 인물이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만약 독일에 히틀러가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은 여러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히틀러의 공세를 막아내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뒤 냉전시대를 연 스탈린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마오쩌둥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잔다르크,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몽고의 칭키스칸과 같이 역사에서는 이런 한 명의 큰 역할을 지닌 인물이 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 인물들 역시 한 명의 인간이기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만약 히틀러가 1차세계 대전에서 부상이 아닌 사망했다면 어떨까? 그럼 2차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렇듯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인물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운이라는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리듬은 정치와 경제의 전 지구적인 그물망에서 압력이 자연스럽게 축적되고 방출된 결과라고 말했다. 역사의 동인에 관한 그의 이러한 견해에는 “위대한 개인”들의 영향이 들어갈 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폴 케네디-
게다가 이런 인물들 역시 역사의 거대한 세계관에 영향을 받고 그 세계관에 맞춰서 성장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난세에 영웅이 태어난다는 옛 말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사는 세계관에 맞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투자자로써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계관이 어떤 구조인지 알 필요가 있다. 물론 세계관은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과학적 세계관, 경제적 세계관, 정치, 철학, 진화, 생명 등등 수많은 것들로부터 세계관을 규정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런 세계관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해도 좋다.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투자자라면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거대하고 다양한 공리와 같다. 오늘은 그 중에서 지정학적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차 세계대전을 부르는 또다른 이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1차 대전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1차대전 종료 후 너무나도 큰 규모의 전쟁을 겪은 국가들은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모든 참전국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기에 세계질서를 잡아줄 만한 강대국은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닥친 세계 대공황은 국제 질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소비와 투자 감소, 은행 파산,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20세기 최고 수준의 관세였는데 평균 59%에서 최대 400%까지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이런 자국보호 관세법 제정은 보복관세로 이어졌고 무역은 감소했다. 강대국은 너도나도 앞다퉈 보호무역을 실시했고 식민지 수탈로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독일과 일본이었고, 이들은 국가 내부에서는 어려운 경제를 틈타 민족주의가 득세했고 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결국 1차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더 큰 전쟁으로 발전했다. 2차대전이 종료되고 미국이라는 강대국은 초강대국으로 변모했다. 미국은 1차대전 직후 있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았고 경제원조와 자유무역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면서 동맹국도 챙겼다.
미국이 이런 힘을 이토록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지리적 이점이 한몫 했다. 미국은 흔히 말하는 방장 사기맵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다. 원자재와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자국의 국토가 타 국가에 침공당하지 않는 최고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미국은 말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다. 하지만 다행인 부분은 미국은 동맹국을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물론 100% 선의로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초강대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맹국으로써 배려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는 이런 세계관에 경고를 하고 있다. 더 이상 미국은 동맹국을 상대로 경제나 자유무역에 있어 배려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스무트-홀리 관세법만큼은 아니지만 관세인상을 예고했고,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 그리고 더 이상 타국의 자유무역을 위해 미군이 많은 비용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그린란드 매입과 파나마 운하 반환을 요구하며 미국의 바닷길을 미국 이익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나는 투자자이자 세계를 살아가는 한 명의 일원으로써 이런 세계정세의 변화에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투자자로써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세계관에 불확실성이 더해지는 것 같아 우려되고, 한 아이의 아버지 입장에서 지정학적 관점의 세계관이 변해간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살아왔던 평화로운 삶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어쩌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투자자로써는 어느정도 대비를 하고 있다. 현재의 높은 원/달러 환율은 곧 꺾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사이클상 영원한 것은 없기에 그렇게 여기기도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무역적자부터 손대려고 하고 있고, 무역적자에서 큰 걸림돌이 높은 달러 가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가가 안정적인 것은 달러 가치가 높기 때문에 수입 물품 가격이 낮아서 나타나는 일시적 효과일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달러가치를 내린다면 수입물품 가격은 올라간다. 게다가 높은 관세까지 부과하니 이중으로 물가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현재는 미국제품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미국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연준의 금리인하 스탠스는 바뀔 수 있다. 최근 미국 시장금리가 치솟는 이유가 이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은 높은 기준금리 대비 자산의 가치는 부풀려진 상태다. 미국의 연준은 오래전부터 물가지수를 산출할 때 자산의 가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자산의 가치가 높은 상태는 지갑에 돈이 많다는 의미다. 돈은 곧 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가속시킬 수 있다.
미국의 높은 달러가치와 고부가가치 산업의 성장은 전세계자본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게 한다. 미국으로 자본이 모이니 AI나 반도체, SMR이나 양자컴퓨터와 같은 미래 산업의 성장을 더 가속화한다. 성장 산업의 가치가 높아지자 더 많은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이는 달러의 가치도 더 높게 만든다. 미국에 투자하는 투자자는 환차익과 투자수익을 이중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달러가치와 투자수익이 같이 올라가서 이중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연쇄작용은 이제 하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연쇄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투자수익이 떨어진다면 많은 차익실현 매물이 나올 것이고 이는 시장의 하락을 부추긴다. 그럴수록 많은 자금이 빠져나가고 이에 환율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 이제 투자자들은 환손실과 투자손실을 이중으로 보게 된다. 이는 자본 탈출의 가속화를 만들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는 차익을 실현해서 달러를 팔고 싶을 것이다. 그럼 연쇄적으로 시장도 하락한다.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트럼프 1기 정권 당시 미/중 무역전쟁으로 높은 관세가 부과되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시장이 충격으로 하락했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장인 파월에 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했던 적이 있다.
파월은 연준의 독립성을 주장했지만 결국 시장의 하락과 정부의 압박에 금리를 내렸던 적이 있다. 이들의 갈등은 엉뚱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거시적 환경 변화로 일시적 휴전을 만들었다.
트럼프 2기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예측하고 대비하고자 하는 경제적 세계관의 가설이다. 가설은 맞추려고 세우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변화가 생기면 계속해서 수정하고 고쳐 나갈 초고일 뿐이다.
투자자로써는 이렇게 변화에 대비하고자 한다. 문제는 지정학적 관점의 세계관 변화다.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날만한 분야는 아니지만 분명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