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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혐오를 팔고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by 폴리래티스


독서조각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어떻게 인간 종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먹이사슬 정상에 올라서서 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가 됐을까? 호모사피엔스가 처음부터 유리했던 위치에 서있던 것은 아니다.


10만년전으로 돌아가 인류의 최후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 내기를 했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모에렉투스에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180만년전 호모에렉투스는 석기무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상 가장 너른 영토에 분포했다. 그들은 불을 다룰 수 있었고 손도끼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7만 5천년전 호모에렉투스는 150만년동안 기술이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 그저 그런 수준의 진보만을 이뤘기에 그들의 자리를 네안데르탈인에게 넘겨주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호모사피엔스 역시 멸종의 수준까지 감소했다.


네안데르탈인은 강인한 육체를 가졌고 호모사피엔스보다 머리가 컸다. 그들은 빙하시대를 지배했다. 그들은 뛰어난 사냥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사슴, 순록, 말 , 돼지 등을 사냥했으며 거대한 몸집의 매머드도 사냥할 수 있었다.


이때 사람들에게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중에서 누가 살아남을 것 같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네안데르탈인에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호모사피엔스였다. 호모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호모사피엔스가 최후까지 살아남아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똑똑하고 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호모사피엔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 이유는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가축화라는 단어는 언뜻 보기에 지능을 쇠퇴 시키고 순종하게 만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수 세대에 걸친 가축화는 지능을 쇠퇴 시키지도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시킨다.


네안데르탈인은 고작해야 10~15명 수준의 집단밖에 이루지 못했다.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친화력이 높아졌고 100명이 넘는 큰 무리로 전환될 수 있었다. 이것이 호모사피엔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 비결이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 눈빛, 표정, 손짓, 발짓까지 살핀다. 그렇게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친화력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소련의 유전학자인 드미트리 벨라예프는 늑대가 개로 가축화된 것을 재연하기 위해서 개와 늑대사이에 있지만 아직 가축화 되지 않았던 여우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그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근한 여우를 따로 분리해 사육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근한 여우의 개체만 따로 짝짓기 했다. 그렇게 짧은 시기에 인위적으로 100세대 이상을 가축화에 성공했고 이 여우는 개 만큼 인간에게 친숙했다. 그리고 가축화에 성공한 여우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이 있었는데 사람의 손짓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여우의 경우에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즉 스트레스 호르몬이 생후 2개월에서 4개월 사이에 상승하여 생후 8개월 무렵이면 성체 수준에 도달한다. 여우는 친화력이 높을수록 코르티코스테로이드가 증가하는 기간이 더 오랫동안 지연되었으며, 열두 세대 뒤 친화력 좋은 여우의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수치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서른 세대 뒤에는 다시 절반으로 감소했다. 쉰 세대가 지나자 친화력 좋은 여우의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 즉 포식성과 방어적 호전성의 감소와 연관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이 보통 여우보다 5배 많았다”


하지만 자기가축화가 늘 좋은 방향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면이 우리의 조상들이 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살아남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데 도움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자기가축화는 남이라고 여겼을 때 그 대상을 잔인하게 대할 수 있다. 외부인을 위험요인으로 판단한다면 무자비하게 그들을 학살하고 도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사례는 차고 넘친다.


다정한 것이 오래 살아남지만 다정하기만 하다면 오래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외부인에게 잔인하게 대할 수 있는 것 또한 살아남는데 힘이 됐을 것이다.




투자조각


호모사피엔스가 먹이사슬 정상에 위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단순히 다른 개체보다 많은 인원의 집단을 만들 수 있는 능력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네발로 서고, 걷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아이는 스스로 서고, 걷는데까지 일년이 넘게 걸린다. 게다가 한 아이의 육아가 끝나려면 대략 18년 정도가 소요된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면 호모사피엔스는 얼마가지 않아 멸종됐을 것이다.


아이는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부모와 눈을 맞춘다. 아이와 부모의 눈이 맞으면 부모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일으킨다. 아이의 뇌에서도 마찬가지로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그래서 아이는 본능적이고 필사적으로 부모의 눈을 바라본다. 그것이 생존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앞서 여우의 가축화에서도 봤지만 자기가축화가 이뤄지면 타인과 관계를 맺기 용이하다. 이는 사회연결망의 확장을 불러일으키고 강력한 피드백 순환 고리가 시작된다. 협력과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되고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더 발달됐을 것이다. 이때 인간의 뇌에서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고 이는 자제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줬다.


자기가축화는 인간의 전두엽 활동을 촉진하고 이는 자기통제와 만족지연을 발달하게 해준다. 인간의 자제력은 자기가축화의 가장 큰 축복이다.


레이달리오는 많은 투자자들에게 하는 조언으로 개방적 태도를 강조한다. 다양한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개방적태도는 공감에서 온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단순히 선한 영향에 그치지 않고 투자자의 만족지연과 자기통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인간의 자기가축화에는 양면의 모습이 있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될 경우 잔인한 사람이 된다.


무수한 정보가 쏟아지는 현 시대는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집단의 개수도 무한대로 늘어나게끔 만든다. 인간은 아주 작은 공감에도 사회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이는 곧 집단이 된다.


최근의 세태는 실로 팬덤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스포츠팀, 정치, 드라마, 자동차, 브랜드, 게임 그리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전세계의 가십거리에도 소속감을 느끼고 팬덤을 이룬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자극만 있어도 자신과 남들을 분류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을 누구보다도 선호한다. ‘우리’와 ‘그들’로 이루어진 움직임, 즉 집단주의는 사회생활에서 상수常數가 된다.”

-마이클 본드-


이만하면 팬덤의 어원이 광신도를 뜻하는 프나틱(fanatic)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과 반대되는 집단을 배척하고자 한다. 집단에 속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회적정체성을 느끼고 군중심리를 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최근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므로 역사적으로 수없이 나타나고 문제를 일으켜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다른 이유에서든 누군가는 혐오를 팔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미국의 정치는 민주당이 40년간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치열하게 논쟁했지만 퇴근후에는 함께 골프를 치거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이들의 화기애애함이 누군가에게는 연극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양당의 정치인들이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대화의 창구가 항상 열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 많은 법안의 발의와 민생을 돌보는데 도움됐다.


하지만 1995년 조지아주의 공화당원인 뉴트 깅리치는 40년간 지속된 민주당의 의회 장악을 깨기 위해 노골적으로 민주당과 반목하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그는 의회의 근무일을 단축해 많은 의원들이 워싱턴이 아닌 지역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끔 만들었다. 이는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과 사적으로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많은 의원들이 워싱턴이 아닌 지역구에 집을 마련하면서 사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만나는 일이 줄었다.


그리고 선거전략도 네거티브 전략으로 바꾸고 민주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여론전을 시작했다. 민주당과의 많은 협조도 모두 금지했다. 그리고 공화당은 의회 선거에서 40년만에 다수석을 차지했고 이는 깅리치 혁명으로 불린다.


공화당이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이제 미국의 정치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귀를 닫고 서로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자신들의 할말만 했다. 결국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하고 불만을 말하고 정책을 펼치자 당론이 고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조종하기란 참 쉽다. 알고리즘만 조금 바꿔도 그 사람의 생각까지 바꿀 수 있다.


다른 의견을 듣지 않게 된 미국의 의회는 서로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증오의 연쇄는 쉽게 끊기지 않는다. 뉴트 깅리치는 선거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민주주의는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 이제 여기에 혐오를 파는 자들이 나타난다. 혐오는 돈이 된다. 미디어의 경제적 가치는 결국 관심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보고 있느냐가 해당 미디어의 가치가 된다. 뉴스, 신문, 방송, SNS, 커뮤니티, 유투브 등등 다 마찬가지다. 조회수가 돈이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쏟아지는 모든 정보를 다 볼 수 없다. 주목필터라고 불리는 기관에서 정보를 쳐내고 몇몇의 정보만 받아들인다. 미디어는 이 주목필터를 뚫는 전문가들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뇌가 자신들의 정보를 소비하는지 알고있다.


자극적이고 혐오적이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더 많이 소비한다. 그래 그들은 돈이 되기 때문에 당신의 뇌를 혐오에 찌들게 만든다. 물론 다른 이유로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새력도 분명 존재한다.


기업들은 혐오와 갈등 그리고 수치심(마녀사냥) 비즈니스를 한다. 우리는 적나라하게 그런 정보들에 노출됐다.


단 한 번만으로 한쪽으로 치우쳐진다면 알고리즘은 한쪽 정보만 쏟아낸다. 당신이 더 많은 혐오를 하고 갈등을 일으켜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돼서는 나중에 따로 올릴 예정이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중요한 점은 당신이 투자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자기가축화다. 자기가축화는 당신의 뇌를 자극한다. 공감과 친밀한 유대감은 당신의 자기통제와 만족지연 그리고 자제력에 도움을 준다. 이것은 투자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태도다.


누군가 조장하는 혐오와 갈등, 그리고 집단적 린치에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이 또한 호모사피엔스가 생존하는데 도움이 될지언정 투자자에게는 불필요하고 투자를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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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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