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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은 상수, 수익은 변수

잘 잃어야 잘 번다 -톰 호가드-

by 폴리래티스


독서조각


“나는 불안, 정신적 균형의 상실, 감정적 애착, 그리고 원한이나 복수의 감정을 키우지 않고 패배를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조절해왔다.”

-톰 호가드-


우리는 고통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가?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라지만 행복한 삶을 산다고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당신은 하루 중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불행한가?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행복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고통이 상수고 행복은 변수다. 행복은 고통의 부재다.”


우리는 삶 속에서 언제나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다. 문제는 고통이다. 이를 해결하면 잠시 행복이 주어진다. 고통이 없는 삶에는 지루함이 찾아온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방해하는 두가지 요소로 고통과 지루함이라고 말했다. 둘 중 한쪽이 멀어지면 다른 쪽이 다가온다. 우리의 삶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이 두가지를 오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행복을 그토록 열망하는 이유도 삶의 대부분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과 지루함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복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고통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우린 고통과 지루함을 싫어한다. 그래서 회피하려고 한다. 고통을 피하는 방법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효율이라고 말한다. 실패는 고통스럽기에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은 지루하다. 지루함은 행복과 멀기에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현대인은 시행착오를 겪고 고통을 이겨내고, 지루함을 견뎌서 성장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검증된 방법을 따른다. 실패가 적은 방법을 찾고, 결과가 보장된 것을 원한다. 미디어는 돈 냄새를 잘 맡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을 미디어는 발전한다.


사람들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고, 요약본으로 드라마를 본다. 5분 남짓의 노래도 30초 미리 듣기로 결정하기에 많은 음악 제작사는 전주에 힘을 준다.


기승전결이 사라지고 있다. 한병철 교수의 말처럼 서사의 위기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가 고통을 피하고자 한다고 해서 고통이 피해가지 않는다. 다만 모른척할 뿐이다. 어린아이는 숨바꼭질 할 때 자신의 눈을 가려서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자신을 보지 못해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숨바꼭질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끝내 죽고 말듯이 인간도 낡은 사고의 허물에 갇히면 성장은커녕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고 만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고통이 두려워 삶에 안주하면 가변성을 잃는다. 베스트셀러 책만 읽는다면 실패할 확률은 적겠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인터넷 검색으로 맛집만 찾아서 다닌다면 실패는 없겠지만 남들이 만든 세상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실패를 마주했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 고통을 마주해본 적이 없는데 더 이상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과잉 보호하는 것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여럿 낳지 않고 한 명만 낳는 부모가 많다. 단 한 명의 자녀를 육아할 때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자라게 뒀을 때 (방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00명중 5명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대신 과잉 보호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두면 성장에 더 큰 가변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과잉 보호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아이의 건강문제부터 교육까지 넓은 것을 포함한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가변성보다 5%의 문제를 더 두려워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고통으로부터 원천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고통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고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투자자라면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투자조각


고통이 상수고 행복이 변수다. 투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손실이 상수고 수익이 변수다. 고통이 상수일 때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행복의 가치가 커지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투자자인 우리는 손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했을 때 수익의 가치가 커지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손실을 받아들이자.


중장기 투자를 계획하고서 매일 주가를 들여다보고 얻은 수익을 잃게 될까, 혹은 투자 초기에 손실을 보고 있다고 두려워한다.


“그는 어제의 매매 결과와 고통을 연관시키고 있다. 그는 지금 당장 이익을 거두고 있는 포지션을 정리함으로써 고통을 근절할 기회를 찾고 있다. 그가 이 추론을 정당화하는 방법은, 시장이 그의 포지션에 대해 주는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다.”


“시장이 하루 중이든 더 긴 시간에 걸쳐서든 하락 추세를 보일 때 개인투자자들은 주가의 저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위의 두 사례는 투자자라면 누구나 겪어 보거나 들어본 적 있는 사례일 것이다. 이런 일이 투자자에게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의 이유 “손실회피편향” 때문이다.


수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두려워하는 성향 탓이다. 극복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싶다면 없다. 당신에게 손실회피편향이 있다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손실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90%가 실패하는 투자 방법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은 실패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두려워하기에 회피한다. 이는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수익에 절대적으로 악영향을 끼침에도 말이다.


그럼 방법은 간단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 반대로 투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잃을 때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돈을 벌 때 두려움을 느낀다.”


반대로 생각하자. 돈을 벌 때 두려움 보다는 희망을 품자. 수익을 잃게 될까 두려워서 포지션을 정리하기보다 포지션을 더 크게 키우는 것이다. 반대로 돈을 잃을 때는 희망을 품지 말고 두려움을 느껴 바로 정리하는 거다.


그럼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익절은 항상 옳다. 벌고 있는데 왜 더 사냐? 팔아야 수익이다 등등..


한번 두 번은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현황을 본다면 손실회피편향을 이겨내는 편이 옳다는 것을 알 것이다. 투자시스템은 투자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손실은 100%에 한정되지만 수익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는 손실은 길게 가져가고 수익은 짧게 실현한다. 유리한 시스템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0번을 이겨도 한번의 실패에 많은 것을 잃는다. 반대로 한다면 10번을 실패해도 한번의 성공으로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말이다.


책 제목처럼 잘 잃어야 잘 번다. 손실은 상수다. 손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면 이례적인 투자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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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잃어야 잘 번다

-톰 호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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