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조울증 동업자

워렌 버핏의 주주서한 -워렌 버핏-

by 폴리래티스


독서 조각


"시장이 단기적으로는 인기도를 가늠하는 투표소와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체를 측정하는 저울과 같다."

벤저민 그레이엄


당신에게 한 명의 동업자가 있다. 그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의 단점은 조울증이라는 불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이 동업자라면 얼마나 끔찍할까?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찾아와 사업 지분을 자신에게 넘기라며 가격을 제시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가 제시하는 가격이 기분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지 않은 점은 그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이다.


이런 동업자가 있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와 함께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에게도 장점이 하나 있다. 당신이 아무리 그를 무시해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같이 찾아와 가격표를 내밀지만, 당신이 응답하지 않으면 조용히 돌아간다. 아무리 오랫동안 무시당해도 실망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마켓이다.




미스터 마켓과 가치투자


워런 버핏은 그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스승의 투자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특히, 그레이엄과 가장 다르게 접근한 것이 장기투자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대공황 당시 큰 손실을 경험한 후, 자신이 잘못된 방식으로 투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후 "안전마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안전마진이란 회사의 청산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면 최소한의 리스크를 안고 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 다양한 지표를 개발했고, 이것이 오늘날 가치투자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레이엄의 가치투자는 철저히 숫자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기업이 가진 가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매수하고, 그 가치에 도달하면 매도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이와 달랐다. 그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하는 점에서는 스승의 방식을 따랐지만, 기업 가치가 회복되었다고 해서 주식을 매도하지는 않았다.


1997년 주주서한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찰리와 내가 장시간 보유하려는 것은 우리의 개성인 동시에 실적을 고려한 것입니다. 우리가 괴짜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거래에 집착하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에게 우리 태도는 야릇하게 비칠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기업이든 주식이든 사고파는 원자재로만 보니까요."


버핏은 "10년을 보유하지 않을 거라면, 10초도 보유하지 말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장기투자를 강조했다.


하지만 단순히 장기투자 자체를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업의 경제성을 분석하고, 경영진을 살펴보며, 가격이 적정한지를 검토한 후 매수했다. 즉, 기업의 실적과 경제성을 고려하여 장기투자를 했으며, 한 번 매수했다고 해서 무조건 장기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미스터 마켓을 이용하는 법


워런 버핏은 자신과 찰리 멍거가 장기투자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하면서, 그 비결이 벤저민 그레이엄에게서 배운 미스터 마켓 개념이라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친구, 조울증을 앓고 있는 동업자가 바로 미스터 마켓이다.


주가는 매일같이 오르고 내리며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인다. 주가만을 바라보며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미스터 마켓처럼 기분이 오락가락하며 조울증에 걸릴 것이다. 버핏은 이런 미스터 마켓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주가를 단기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오로지 기업의 실적만을 참고한다.


그가 말하길,


"투자의 성과는 변동성이 심한 주가가 아니라, 우리가 보유한 기업의 실적에 따라 결정된다."


즉, 미스터 마켓의 기분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만을 바라보는 것이 핵심이다.




미스터 마켓의 조울증을 기회로 활용하라


미스터 마켓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투자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호가를 제시하는 역할일 뿐이다. 결국, 모든 결정은 투자자가 내리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라면 미스터 마켓이 조울증이 심할수록 투자자에게 유리하다.


그가 기분이 극단적으로 저조할 때는 주식을 헐값에 매입할 기회가 되며, 그가 들뜬 상태일 때는 과열된 시장에서 빠져나올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당신이 미스터 마켓보다 사업을 더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와 거래해서는 안 된다.


투자의 성공은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AI 알고리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냉철한 사고를 유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투자조각




가격과 주식 투자


대다수의 투자자는 주식을 사고파는 근거로 가격을 가장 우선시한다. 하지만 가격은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심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투자자는 단기적인 주가 움직임에 따라 매매를 결정한다. 주식을 매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며, 매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가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물론 주가가 내려갈 때 매수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저점을 잡아 반등을 노리는 투자 방식인데, 여기에는 다양한 편향이 작용한다.




저점 매수와 편향


첫 번째로, 저점을 예측해서 매수하는 행위는 앵커링 편향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앵커링 편향이란, 초기 정보나 숫자가 기준점 역할을 하여 이후 판단에 영향을 주는 현상이다. 과거 주가가 어떤 수준이었는지에 집착하다 보면, 합리적인 분석 없이 "이전 가격보다 싸다"는 이유로 매수하게 된다.


또한, 주가 하락 후 반등을 기대하는 투자 방식에는 최신편향 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은 단순히 가격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주가 흐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주가가 일정 주기로 하락과 반등을 반복하는 종목은 대체로 변동성이 크고 거래량이 많은 주식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산업이나 테마에 속할 가능성이 크며, 더 넓게 보면 매크로적인 상승장에서 일시적인 조정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매매가 가격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레이딩을 하는 경우라면 상관없지만, 투자를 하고 있다면 이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주식 투자란 무엇인가


주식투자는 본질적으로 기업에 투자하는 행위다. 단기적으로는 주가의 변동성이 큰 영향을 주지만, 결국 장기적인 투자 수익은 기업의 실적에서 나온다.


조지 소로스의 재귀적 피드백 이론에 따르면, 주가의 방향이 먼저 나타나고 이후 기업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며, 대부분의 주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조울증 환자의 기분처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시장을 두고 벤저민 그레이엄은 미스터 마켓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시장의 가격은 대체로 옳다. 정보가 빠르게 반영되고, 투자자들은 비싸면 팔고 싸면 산다. 하지만 시장이 항상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비이성적인 움직임이 발생하며, 이러한 비효율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가치투자의 본질이다.




가치투자의 본질


가치투자는 종종 오해를 받는다. PER, PBR이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한다. ROE나 EPS가 일정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 성장주가 아닌 종목이어야 한다는 오해다. 하지만 이는 가치투자를 피상적으로 이해한 결과다. 가치투자는 단순히 누군가의 실수를 기다리는 것이다. 특정한 공식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이버 매트릭스를 들어봤을 것이다. 세이버 매트릭스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출루율과 장타율이 중요한 지표로 주목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두 지표가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다른 전통적인 스탯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기 때문에 이 스탯이 좋은 선수들의 몸값이 낮았다.


그러나 만약 현대에도 운영비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출루율과 장타율이 좋은 선수들만 영입한다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제는 이 지표가 중요한 요소로 인정받아, 출루율과 장타율이 높은 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치투자도 마찬가지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어떤 시점에서는 성장주가 저평가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시점에서는 특정 산업이나 테마가 저평가될 수도 있다. 특정한 지표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다면 언젠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스터 마켓과의 거리 두기


미스터 마켓이 좋은 친구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휘둘리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휘둘려 실수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투자의 본질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이용하는 것이다.


투자자는 가격이 아니라 회사의 성장성과 경제성을 봐야 한다. 워렌 버핏은 "충분히 좋은 경제성을 가진 기업이라면 어느 정도 비싼 가격에 사도 괜찮다"고 말했다. 경제성이 확보된 주식을 매수했다면, 이제 미스터 마켓과 거리를 둘 시간이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주가가 아니라 실적이다. 주가에 대한 걱정은 안전마진으로 해결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매일 주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실적을 분석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라도 매일 주가를 확인하면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귀를 막고 몸을 묶었던 것처럼, 때로는 주가를 보지 않는 것이 현명할 때도 있다.


워렌 버핏이 주주들에게 미스터 마켓과 장기투자를 함께 이야기한 이유를 투자자라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XL


워렌 버핏의 주주서한



*구독과 라이킷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15화집단지성과 집단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