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미망과 광기 -찰스 맥케이-
"존 로는 사기꾼이 아니라 오히려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금융 전문가였으나 국민 전체의 탐욕을 헤아리지 못했다."
18세기 초, 유럽의 맹주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오랜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난 상태였다. 당시 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실의 재산과 국고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으며, 왕실이 진 부채에도 상환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왕실의 부채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불어났고, 국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 해도 높은 이자 부담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왕실의 재정을 구할 한 사람이 등장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금융가, 존 로였다.
1671년 스코틀랜드에서 금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 로는 어려서부터 금융을 접하며 성장했다.
그는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이 아니라 토지를 담보로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화폐 이론을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발행된 화폐의 가치는 나라 전체의 토지 가치를 초과할 수 없다."
이는 무분별한 화폐 발행을 막고,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당대 유럽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생계를 위해 도박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존 로는 단순한 도박사가 아니었다. 확률 계산에 능했던 그는 도박장에서 마치 현대의 퀀트 투자자처럼 수학적 전략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한 사건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여자 문제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고, 감옥에 갇힌 뒤에 탈옥했다. 그리고 그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유럽 대륙으로 도망쳐야 했다. 이후 그는 유럽 각지를 떠돌며 귀족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화폐 이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1715년, 루이 14세가 사망하고 그의 어린 아들 루이 15세가 즉위하자, 왕위 계승 1위였던 오를레앙 공이 섭정으로 프랑스를 통치하게 되었다. 막대한 부채로 파산 직전까지 몰린 왕실 재정을 해결해야 했던 오를레앙 공은 존 로의 화폐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는 존 로의 보고서를 검토한 후, 토지를 담보로 한 은행 설립과 국가 세금을 이 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로 납부하도록 하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제 존 로는 프랑스의 중앙은행과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원칙대로 지불 능력이 없는 화폐 발행은 불법이라고 못 박았다. 이 은행은 큰 성공을 거뒀고, 오를레앙 공은 존 로의 능력에 더욱 깊은 신뢰를 보냈다.
존 로는 다음 사업으로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루이지애나 지역을 개발하려 했다.
사람들은 그의 은행이 성공한 것처럼, 미시시피 회사도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 믿었다. 이 기대 속에서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는 끝없이 치솟았고, 프랑스 전역은 주식 열풍으로 들끓었다. 모두가 이 주식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심지어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거리에 나와 매수 기회를 노릴 정도였다.
당시 미시시피 주식은 15%의 가격만 지불하면 매수할 수 있었다. 즉, 신용거래가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프랑스 사회 전체가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자산을 팔아 미시시피 주식을 사들였다.
파리의 주식 광풍은 국경을 넘어 스위스 부동산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 집값이 오를 정도로 프랑스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파리의 인구는 30만 명 증가했고, 물가는 4배나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시시피 주식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불이 붙기 쉬운 목재가 널려있을 땐 뭐라도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버블이 커질수록 작은 충격에도 붕괴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시시피 버블도 마찬가지였다. 콩티 대공은 주식을 사고 싶었지만, 이미 매수 기회를 놓친 상태였다. 그는 불만을 품고 마차 가득 지폐를 싣고 이를 주화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이 사건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존 로는 이 사태를 보고 사람들이 지폐를 대거 주화로 바꾸기 시작하면 금과 은이 모두 고갈되면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 것임을 깨달았다.(*현대에서는 이를 뱅크런이라 부른다.)
그는 오를레앙 공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사람들은 지폐를 현금화하기 시작한 뒤였다. 국채, 지폐, 미시시피 주식이 모두 연결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면 모든 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은행으로 몰려가 지폐를 주화로 바꿔갔고, 존 로와 오를레앙 공은 이를 법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시장의 공포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모든 투자자들이 지폐를 팔아 금과 은으로 바꾸고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미시시피 주가는 폭락했고, 화폐 가치는 붕괴되었으며, 프랑스 금융 시스템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한때 프랑스를 구원한 금융 혁신가로 추앙받았던 존 로는 이제 폭도들에게 습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그는 궁 안에서 숨어 지내다 해외로 도망쳤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실수를 많이 저지른 것은 인정합니다. 나도 인간이므로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실수가 사악하거나 부정직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가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화폐 이론을 실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프랑스를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으며, 자신의 재산을 사적으로 축적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가 남긴 모든 토지는 몰수되었고, 그는 가난하게 생을 마쳤다.
존 로는 사기꾼이었을까, 아니면 이상을 실현하려다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금융가였을까.
그 답은 역사의 해석에 달려 있다.
2편에서 계속...
대중의 미망과 광기
-찰스 맥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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