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서 있는 당신에게
상담실에서 마주하는 어떤 웃음은 많은 걸 내포합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은 타들어 가는 속을 견디느라 메말라 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상대는 사춘기 자녀이고, 그 아이가 가진 다름을 알기에 차마 터뜨리지 못한 채 지어 보이는 일종의 항복 선언. 그 미묘한 것들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습니다.
"방에만 있어요. 배고플 때만 나와요."
엄마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던 그 손이, 이제는 문을 잠급니다.
예전에는 달랐다고 했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면 소리를 듣고 나와 인사하던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들어와도 조용합니다. 집 안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방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음뿐입니다.
"말하다가 짜증 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거든요."
처음에는 따라가서 달랬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오라고 불러도 봤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짜증을 내면 제가 더 크게 해야지 얘를 이제 누를 수가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누르려 할수록 문은 더 굳게 닫혔습니다.
"거절을... 그냥 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뭐 하자 그러면 싫다고 하는 게 그냥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엄마가 권유해서 명령조로 갈 수가 있잖아요. 명령조로 가게 되면 본인도 화가 나는 거죠. 그러면 돌발행동이 올라오기도 하고.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권유가 명령이 되고, 명령이 폭발이 되는 이 순환. 이것이 지금 많은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발달장애가 있든 없든,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그 닫힌 문 안에서, 아이는 자기만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어른보다 검색도 정말 잘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데서 조금 안 되는 거죠. 음악은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매일매일 싸우는 것 같아요. 매일 정말 쉬지 않고."
이 어머니가 말하는 "매일 정말 쉬지 않고"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싸움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 이 집에서 갈등은 하루도 멈춘 적이 없다는 이야기니까요.
이 시기 아이의 뇌는 완전히 다른 회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구는 더 확고해지고, 고집은 세졌으며,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원하게 됩니다. 디지털 기기는 그 아이에게 자신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자 또다른 소통의 창구입니다. 밖에서 제한을 걸수록,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걸 알아도 멈추기 어렵습니다. 가르치려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걸 압니다. 덜 간섭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닫힌 문 앞에 서면, 답답해져 오는 가슴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싸움의 방향을 바꾼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아이들이 우리를 맞출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지적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을 연구한 Beighton과 Wills(2017)는, 이렇게 방향을 바꾼 어머니들이 결국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갔다고 보고합니다.
닫힌 문은 언젠가 열립니다. 지금 당장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그 시기를 지나가는 동안, 당신의 에너지를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두셔도 좋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향해서. 그것이 아이의 문을 여는 것보다 먼저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당신이 거기 있기 위해.
아이의 방문이 닫혀있는 지금 이 순간, 당신 자신을 위해 열어두고 있는 문은 무엇인가요?
힐링인사이트 노수정이었습니다 :)
[참고문헌]
Mukherjee, S., & Beresford, B. (2025). 'Adolescence kicked in . . . and you need help again': A qualitative study of the experiences of parents of autistic teenagers with mental health difficulties or behaviours that challenge. Autism, 29(11), 2691–2702. https://doi.org/10.1177/1362361325135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