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얼마나 사랑해? 술에 취한 H는 종종 나에게 묻는다. 그것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량화할 방법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은 이미 만취한 그녀의 화만 돋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나'에 대해서 대답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나를 찾아온다. 때로는 몇 가지 미사여구를 활용해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팽창하는 우주의 부피'나, 증가하는 '우주의 엔트로피'와 같이 과학적인 내용을 곁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답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은 둘째치고, 고찰해 보는 순간, 또는 표현하는 순간 그 사랑의 양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 전에는 그것이 사랑인지 알 수 없는 순간도 많다. 사랑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되도록이면 나의 사랑을 관측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따라서 사랑에 있어서 '얼마나'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랑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결국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태산만큼, 우주만큼, 무한대만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저 허울뿐인 말이다. 그래서 H의 질문에 내가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는지를 말해준다.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펜과 종이를 찾는다. 종종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선물한다. 네가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에는 맑은 계란 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인다. 새벽에 우리 집으로 오며 길이 너무 춥다고 울고 있는 너를 맞이하기 위해 택시를 탄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함께 볕을 쬐며 낮잠을 잔다. 담배를 참는다. 그리고 항상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어떻게'가 간단히 말할 수 있는 '얼마나'보다 좋을 때가 있다.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는 항상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