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부장 Jan 02. 2022

늘 부장의 직장 일기

입사 후  10,000일째 되는 날

94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6월 취업을 했다. 그동안 취업을 하기 위해 여러 군데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승률은 거의 반타작이었다. 어떤 회사엔 합격을, 어떤 회사엔 불합격이었다. 정확히 왜 합격했고 불합격했는지에 대한 기준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합격한 회사에 그해 6월 입사를 했다. 간절히 원했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전자업계에선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회사였다. 입사 후 본격적인 업무에 앞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다. 그룹 규모의 회사라 그룹 산하 여러 회사 신입사원들을 모아 한꺼번에 한 그룹 연수가 3개월여 진행이 되었고 그 연수를 마치면 본래 지원했던 회사에서 또 1개월 연수를 받았다. 몇 개월간의 연수를 마치고 마침내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TV 드라마에서 종종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깔끔한 복장을 하고 번쩍번쩍 한 고층건물에 있는 깨끗한 사무실 책상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하는 모습이 몹시도 근사해 보였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언젠가는 저런 회사에 한번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마침내 그런 회사에 취직을 했다. 


누군가 얘기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이런 말이 틀렸으면 했는데, 아뿔싸 그 말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났다. 3개월 업무 배우는 과정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실무를 하면서 이게 리얼한 회사 생활의 현실 이구나를  피부로 확 느끼게 되었다. 회사 업무를 하면서 발생된 어떤 문제는 어느 한부서의 실수로 발생된 문제는 거의 없다. 갑작스러운 고객의 요청 사항을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노출된다. 그래서 그 문제점을 찾기 위해 문제점을 가장 먼저 발견한 부서 담당자가 함께 해결점을 찾기 위해 회의 소집을 한다. 문제점을 발견한 그 부서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 문제점을 제기한 그 부서 담당자가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중심에 서게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참석한 타 부서 담당자는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회의실 자리만 메꾸고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견을 개진하면 그 일이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여기에서 소위 말하는 사일로 현상이 나타난다. 즉 그건 너의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다면서 서로 벽을 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신입으로 입사해서 1년 정도 회사를 경험한 직원이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첫 번째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두 번째 고민이 다가온다. 그것은 상사와의 갈등이다. 업무를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서 본인 의지로 어떤 일을 수행하면 서다. 몇 주간 밤늦은 시간까지 정성을 들여 만든 보고서를 나름 최선을 다해 만들어서 상사에게 제출했는데 상사는 여지없이 칼질(?)을 한다. 이 부분은 빼고 저 부분은 수정하고 나머지는 보완하라고 하고 보고서를 반려한다. 며칠 동안 고민해서 만든 보고서를 거의 걸레를 만들어 놓고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를 한다. 이 대목에서 또다시 퇴사에 대해 깊게 고민을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엔 장가도 가고 애기도 생기고 해서 가장의 무게를 느끼기에 참을 인자 세 개를 가슴에 새기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이제 세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첫 번째, 두 번째 위기를 무사히 참고 견뎌내면서 어느 정도 본인 업무에 나름 전문가 얘길 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다 보니 이 회사보다 더 보수가 좋고 근무 환경이 좋은 회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시기에 사업을 했던 또래 친구들이 큰 부를 이룬 것을 보고 상대적 열등감도 온다. 그래서 좀 더 큰 꿈을 꾸면서 이직 혹은 사업의 기회를 모색한다. 그러나 역시 현실은 만만치 않은 법. 이직한 친구들, 사업을 한 친구들 여럿 만나다 보면 이직 및 사업도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세 차례의 번민의 과정을 참고 견디면서 어느새 한 회사. 한  직장에서 10,000일째를 맞이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입사 후 딱 10,000일째 되는 날이다.     


필자가 과연 한 회사에 이렇게 오래 다니면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언뜻 생각하기에 잃은 것은 나의 주관적 판단의 결여, 건강. 그 반면에 얻은 것은 가정의 약간의 경제적 안정이라는 것이다. 한 꺼풀 더 들여다보면 나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장 깊게 와닿는다. 물론 이런 생각이 한 직장에 10,000일을 다닌 것이 후회스러웠다 라 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필자가 이 회사를 다니지 않았으면 과연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에 대한 의문도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에 되돌아본 10,000일의 회사 생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은 후배들에게 한 직장에 이렇게 오래 다니느니 차라리 보다 다이내믹 한 직장 생활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모든 판단의 기준은 본인 몫이지만 한 직장을 29년째 다녀본 늘 부장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전 07화 늘 부장의 직장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