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준 것보다 더 풍성한
코끝이 시큰해 온다.
눈시울도 붉어지고.
의무와 책임 그리고 양육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들,
그런데 실은 그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더 많았음을 느껴서다.
모르겠다.
이 감정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
고국에서 초등학교 생활에 적응될 때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국으로 이주하여,
8 품사를 한국어와 독일어로 외워야 했고,
문법을 익혀나가야 했으며,
매일 외국어로 일기를 써야 했던 아이들.
하교 후 여느 집 아이들처럼,
자신의 일만 돌보면 그만이었을 텐데,
이혼 후, 부재한 엄마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각자 구역을 나눠 청소하고,
돌아가며 설거지도 하면서
가사를 나누던 아이들.
외국생활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만 7년 이상 잘 적응해 주고,
건강하게 커준 아이들.
훗날 아빠가 외로울까 봐,
벌써부터 나를 걱정하는 아이들.
굵직한 일들로 분주할 때마다
진심 어린 응원으로 나를 지지하는 아이들.
.
내가 저들이었다 가정해 볼 때,
과연 아이들처럼 나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물음표만 찍힌다.
.
그럼에도 반복되는 일상과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사랑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수고를 칭찬하지 못했으며,
무에 그리 타박만 했던가.
참으로 절절하다록 미안하다.
.
그럼에도 아이들이 준 그 모든 선물과
사랑과 인내와 지지에
그저, 진심 어린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안을 뿐이다.
.
내가 너희를 지킨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나를 지켰음을
그리고 성장시켰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너희들 자체가 선물이었음도 깨닫는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Familie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