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반정(하)

귀로(歸路)

by 이야기여행자

아재요! 이것 좀 봐요.”
“만덕이 아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대체 뭔 일이고!”
“얼른 좀요. 나 죽겠어요.”

이야기꾼은 서신을 읽고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손은 부르르 떨렸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질 못했다.

“만덕아… 이거 어디서 났냐?”
“됐고요, 내용만 알려줘요.”

이야기꾼은 안절부절못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내용이냐고요? 땅 얘기 맞죠?”

만덕이가 흥분해서 계속 재촉을 하자, 이야기꾼은 한 손으로 만덕의 입을 막고는 한 손은 자신의 입술에 쉿 하는 동작을 했다. 그리고는 문을 열어 밖을 한번 둘러보더니 오랜 비밀을 풀 듯이 낮게 속삭였다.


“이건… 거사 글이다.”
거사가 뭐요? 땅 준다는 말이어요?”

“이놈아!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을 왕위에 앉힌다… 이런 글이다. 이건 나는 본 적 없는 걸로 한다. 얼른 도로 가져다 놔라. 난 모른다!”

“에? 그게 무슨 말이어요? 장쇠한테 땅 준다는 거 아니에요?”

"이런 무식한 것... 이거 없어진 것 알면 니 모가지는 없는 것이여... 꼭 다시 가져다 놔야혀. 알것제?

만덕은 쫓겨나다시피 나와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다시 바로 앉아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털면서 중얼거렸다.

왕을 바꾼다니?
왕은 왕으로 태어나고 자신은 상놈으로 태어나는 줄만 알았는데.


‘장쇠는 양민이 되고 나는 그대로냐? 그놈은 땅도 생기고? 그래, 내가 뒤집어야겠구먼.’

아까 이야기꾼이 임사홍 대감부터 죽이려 한다고 말하고는 흠칫 놀라는 것을 만덕은 놓치지 않았다.

‘임사홍 대감댁은 예서 멀지 않지. 가서 말하면… 나도 양민 되고, 땅 받고… 언년이랑 장가도 가고…’

그는 이야기꾼 말대로 서신을 다시 쌀가마 밑에 깊숙이 넣고는 임사홍 대감댁으로 내달렸다.

‘그래. 왕을 바꾸면 안 되지, 암… 무릇 왕은 하늘이 주신 것인데, 그걸 누가 바꿀 수 있다는 말이더냐!’

비로소 내 이름대로 모든 게 술술 풀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숨도 차지 않았다.

머슴들에게 얻어맞는 만덕

“대감님!”

큰소리를 치며 문을 두드리자 한참 후 머슴 하나가 나왔다.

“뭔 일이슈?”

“대감님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얼른 뵙게 해주셔유.”

머슴은 만덕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매몰차게 말했다.

“우리 대감님은 천한 상놈은 안 만나시니 전할 말이 있거든 내게 말하슈”

“아니오. 중요한 얘기라 내가 직접 말해야 해유”

“아니. 이놈이. 나한테 말하라니까”

옥신각신하는 사이 통이 트기 시작했다. 불안이 목을 졸랐다.


“뭔 소란이냐?”
임사홍 대감이 직접 나왔다.

“이놈은 박원종 대감댁 머슴 놈인데, 대감님을 뵙겠다고…”

머슴이 설명하는 사이 만덕은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대감님! 큰일이… ”

만덕은 임사홍 대감의 소매를 붙잡았다.
퍽—.
주먹이 얼굴에 꽂히며 뒤로 나자빠졌다.

“천한 것이 감히 손을 대?”
“대감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요.”
“이런 상놈이! 여봐라! 이 놈을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려 보내주거라”
“대감님!! 안 돼요!!!”

그러나 말은 끝내 닿지 않았다.

임사홍 대감은 뒤를 돌아보며 다시 생각했다.

'저놈이 박원종 대감댁 종이렸다... 눈엣가시 같던 박대감을 이걸 빌미로 난처하게 만들어줘야겠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임사홍 대감은 슬쩍 웃었다.


만덕은 개처럼 맞고 마당 밖으로 내쫓겼다.
엉덩이는 다시 터지고, 머리엔 피딱지가 앉았다.

‘흥... 그래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상놈이더냐?.’

‘네놈도, 임금 놈도 태어날 때부터 귀하더냐?’

‘그래, 네놈들 모두 어찌 되든 나는 모른다.‘

만덕은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이미 해는 하늘 한가운데 높이 떠올라있었다.


그날 밤, 마을 어귀에서는

임금이 바뀌었다느니, 임사홍 대감이 칼에 맞아 죽었다느니 수군거림이 돌았다.

허나 만덕에게는 그런 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얄궂게도, 그의 온 신경은 맞아 터진 몸뚱아리의 욱신거림에만 쏠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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